적대관계였던 미 해군의 지원 '주목'... 해적 2명 사망

(서울) 김태경 기자 (오마이뉴스) = 지난 29일(현지 시각)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해적들에게 납치된 북한 선박의 선원들이 피랍 다음 날 미군의 도움을 받아 해적들을 격퇴하고 다시 배를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6자회담이 잘 진행중이지만 여전히 적대 관계인 미국이 북한 선박에게 도움을 준 것은 상당히 눈에 띄는 사건이다.

지난 2002년 12월 미 해군이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화물선 소산호를 나포해 조사하는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주 대상이 북한 선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은 더욱 각별해 보인다.

외신들에 따르면 지난 29일 22명의 선원을 태운 북한 선박인 MV 대홍단(MV Dai Hong Dan)호가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인근 해역에서 8명의 해적들에게 납치됐다.

외신들은 한 때 이 배가 한국 배인 것으로 보도했으나 곧 북한 배로 확인됐다. 참고로 대홍단은 북한 양강도의 감자 농사로 유명한 지역이다.

해적, 석방 대가로 1만5000달러 요구

대홍단호는 납치 10일 전에 모가디슈항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항구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정박 중이었다. 평화유지군이 모가디슈항의 선박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대홍단호는 너무 먼 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패디 안쿤다 대위는 "배를 납치한 자들은 아마도 이 배를 정박시키는 데 도움을 줬던 자들과 같은 사람들로 추정된다"며 "해적들은 처음에 석방 대가로 1만5000달러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30일 오전 바레인에 있는 미 해군 중부 사령부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국제 해사국으로부터 급전을 받았다. 북한 선박 대홍단호가 해적들에게 납치됐으니 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북한 선박으로부터 약 50해리(93㎞) 떨어져 있던 미 해군 전함 제임스 윌리엄스가 작전을 시작했다. 윌리엄스호는 우선 헬기를 현장에 급파해 상황을 살폈고 정오께 피랍 현장에 도착했다.

윌리엄스호는 무선 통신을 통해 해적들에게 무기를 버리라고 지시했다. 갑자기 나타난 미국 군함에 해적들이 당황하는 사이 북한 선원들은 해적들을 제압했고 조종실과 기관실을 장악했다.

북한 선원들은 이 때 숨겨뒀던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해적 2명이 사망하고 5명은 다시 붙잡혔다. 북한 선원 3명도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선원들은 윌리엄스호와의 교신을 통해 의료 지원을 요청했다.

미 해군 위생병 3명은 승선조와 함께 북한 선박에 올라 응급 처치를 했다. 그리고 중상을 입은 북한 선원은 치료를 받기 위해 윌리엄스호로 옮겨졌다.

북한 선원들, 숨겨뒀던 무기로 해적 제압

AFP통신은 소말리아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 선원들이 8명의 해적을 격퇴하고 다시 배를 장악했다"며 "현재 정부군이 현장에 급파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28일에도 한국인 2명을 포함한 23명의 선원이 탄 일본 선박 골드모리호가 납치된 것을 비롯해 현재 4척의 선박이 해적들의 수중에 있다.

한편 미 국방부는 해군이 북한 선박 구출에 도움을 준 것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미군이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국제무대에서 공개적인 군사활동을 벌인 것과 관련해 질문이 나오자 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은 "해적 문제는 흥미로운 문제"라면서도 "나는 그런 질문에 대해 답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