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포스트 >지, 한국의 온라인 문화 실태 다뤄

(탬파) 김온직 기자 = 미국의 유력지가 최근호에서 한국의 온라인 문화와 게임 중독에 대해 심층 보도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최근호에서 한국의 젊은 세대의 삶을 규정하는 환경으로 고도로 발달된 온라인 게임 문화와 학업지상주의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극단의 조합을 함께 거론하고, 한국 학생들은 온라인 게임으로 입시 스트레스를 푼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안소니 파이올라 통신원의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학업스트레스 탈출' (When Escape Seems Just a Mouse-Click Away) 이라는 제하의 서울발 기사의 발췌 분이다.

지난해 게임중 10명 사망...PC방 50시간 앉아 있다 사망한 청년도

세계 온라인 게임문화의 중심인 한국에서는 지금 전염병처럼 번지는 온라인게임 중독에 대해 전문가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02년에 한국 정부가 '게임중독 치료센터'를 연 이래 수많은 사설 정신과 클리닉들이 생겨났고 지난달에는 '게임중독 핫라인'(긴급 구조 전화)까지 개설됐다.

지금 한국에서 9세 어린이부터 30대까지의 젊은 세대 중 2.4%는 온라인 게임 중독증에 빠져 있고 10.2%는 거의 중독 직전에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온라인 중독에 빠지면 수면부족과 일상생활의 지장, 현실감각의 상실 등을 가져오고, 게임을 하지 않으면 퇴행성 우울증의 금단현상에 시달리게 된다. 심지어는 게임중독으로 죽기까지 하는데 작년 한해 동안 한국에서 컴퓨터 게임 중 사망한 사람은 10명으로, 이는 지난 2001~2004년의 4년 동안 2명이 사망한 데서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들의 사망원인은 의자에 장시간 앉아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혈액순환 장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것은 좁은 좌석에 앉아 여행하는 비행기 승객이 겪는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과 비슷한 것이다. 작년 대구의 한 PC 방에서도 28세의 젊은이가 50시간 동안 한자리에 앉아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다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둔 적이 있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젊은이들의 게임중독증은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사회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인터넷 보급망을 가지고 있고 치열한 대학입시경쟁으로 청소년들이 학업에 대한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한국이야말로 인터넷 게임중독의 진원지라고 말한다. 경쟁적 학업 환경과 부모들의 강요로 방과후에도 4-5시간씩 과외수업을 받아야 하는 이 보수적인 국가의 청소년들에게는 마약이나 섹스 대신 온라인 게임이 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20살 김명(가명)군은 대학입시에 실패한 후 재수중인데 부모의 공부 성화에 못 견뎌서 자신의 능력을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인 온라인 게임에 빠져들게 되었다. 온라인게임에서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상대방과 '역할놀이'(Roll-playing)를 통해 몇 시간이고 흥미진진한 대결을 벌이기 때문에 쉽게 중독된다. 김군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라면만 먹으면서 넉달 동안이나 두문불출 게임에 몰두한 결과 체중은 10파운드나 늘고 자신이 마치 게임 속의 한 인물인 것 같이 느껴지는 이상 증세를 겪게되면서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해 병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미국 일본 등 에서는 닌텐도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을 이용한 개인 비디오게임을 많이 하지만 한국에서는 인터넷에 접속 온라인 게임이 주류이다. 온라인게임은 그 내용이 무궁무진한 데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접속하여 겨루며 즐기기 때문에 한번 맛들이면 더욱 자제하기가 어렵다.

미국의 편의점 만큼이나 널려 있는 한국의 PC방

한국에서 온라인게임 분야가 뜰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나라가 세계 제일의 인터넷 국가이기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인터넷 연구소인 텔레콤페이퍼에 따르면 일본인의 45%, 미국인의 30%만이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비하여 한국에서는 세계 최고 속도의 접속망을 통하여 인구의 약 70%가 인터넷을 상용하고 있어서 온라인 게임을 위한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셀폰을 가지고 온라인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더 익숙한 풍경은 어둠침침 칸막이가 된 실내에서 옆 사람과 한마디 대화도 없이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을 마주보고 귀를 때리는 전자음과 함께 총과 칼과 주먹을 사용하며 적을 공격하는 데에 열중해있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PC방이다. 미국의 편의점 만큼이나 곳곳에 널려있는 것이 한국의 PC방인데 담배연기 가득한 이곳에서 사람들은 한시간에 1불하는 입장료를 내고 죽치고 앉아 밤낮없이 게임에 몰두하는 것이다.

한국정부의 온라인 게임문화 장려 정책 또한 게임중독증의 심화에 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정부는 지난 2000년에 '세계 사이버 게임 대회'(World Cyber Games)를 창시하여 현재 67개국이 참여하는 대회로 키웠다. 한국에서는 게임만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게이머들이 각종 국내외 대회로부터 년 10만 불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등 선망의 대상이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에서 사람들은 가상 화폐를 사용하여 게임속 구성원이 착용하는 의상, 소지하는 무기 등을 마음대로 바꾸어 자신을 닮은 분신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또한 게임 속 세상에서 소용되지만 구하기 힘든 희귀 품목들은 심지어 게임의 세계 바깥에 있는 하이테크 온라인 시장에서도 사고 팔 수가 있다.

하루 평균 5시간을 PC방에서 보내는 올해 31세의 웹디자이너 문성훈씨도 온라인 게임에 사용하려고 가상의 칼을 한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서 800불을 주고 구입했다. 그는 "이렇게 게임으로 혼자 스트레스를 푼다. 타인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사회적으로 문제될게 없다"고 말한다.

공부는 하기 싫고, 온라인 게임에서는 '무적의 투사'

그러나 정신과 의사들에 의하면 게임중독은 사회적 문제이다. 서울에 사는 14세의 김모군은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아버지로부터의 과중한 공부압박을 견디지 못해 PC방을 들락거리며 조금씩 온라인 게임을 즐기다 결국 게임중독에 빠지고 만 케이스이다. 그는 영어책 한 권을 던져주며 "통째로 다 외우기 전에는 잠도 자지 말라"고 지시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차라리 공부 대신 컴퓨터 게임을 즐기기로 했다. 그러다가 게임에 한발 한발 깊숙이 빠져들었던 것이다.

김군은 지금 정신과 쿨리닉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 때로는 인생의 오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어서 김군의 부모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었지만, 김군이 PC방에 가려고 친척들에게까지 돈을 뜯으러 다닐 정도로 중독이 심각해지자 할 수없이 김군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것이다.

김군의 어머니는 "아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학교성적은 떨어지고... 그러나 온라인 게임에서만은 자기가 무적의 투사가 되니까 그 맛에 빠져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중독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그 폭력성이다. 온라인 컴퓨터 게임은 대부분 폭력물이어서 이에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사람의 성격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진 박사는 "컴퓨터 게임에 중독 되어 삶과 죽음의 차이에 무디어진 한 학생이 동생이 게임을 방해하자 망치로 때려 숨지게 했다"는 충격적인 일화를 소개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어린이들이 스트레스 해소 목적으로 게임을 즐긴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부모들이 게임을 못하게 막을 때 폭력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이 바로 게임중독의 초기 신호"라며 자녀들의 행동 변화에 대해 부모들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