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가족의 신학, 다섯 번째 이야기

(서울=뉴스앤조이) 정경일(전 새길기독사회문화원장)

세상 속의 예배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드리는 예배는 평화롭고 자유롭고 따뜻하다. 하지만 세상의 고통에서 거리를 둔 '그들만의 피난처' 같은 예배는 아니다. 또한 4·16 가족의 고통만을 이야기하는 예배도 아니다. 이들의 예배는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모든 이를 기억하며 연대하는 '사회적 예배'다.

4·16 그리스도인 유가족은 예배를 무척 중시하지만, 예배만 드리면서 10년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고, 종교의 차이, 종교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진상 규명 운동을 해 왔다.

지성 어머니는 지성 아버지와 함께 한동안 4·16TV 활동을 했고, 창현 어머니는 현재 가족협의회 대외협력부서장을 맡아 일하면서 4·16합창단 단장도 맡고 있다. 시찬 아버지, 시찬 어머니, 지성 어머니, 예은 어머니는 모두 합창단원이다. 예배팀의 4·16 가족은 한국 사회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가 연대해 왔다. 이들에겐 연대가 예배였다.

4·16 예배의 메시지

예은 어머니(박은희) / 그때마다 이슈가 있고 상황이 있잖아요. 함께 묵상할 성경 구절 찾는 게, 그런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찾으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 저희 이런 상황인데, 도대체 뭐라고 말씀하실 건가요? 이렇게요. 오늘 4·16생명안전공원 예배에서 묵상한 말씀도 '하나님이 진실을 찾고 계시다' 하신 것에 꽂혀서 고른 거예요.

(2024년 2월 4일 예배 묵상 본문은 예레미야 5:1-5 말씀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몸소 진실을 찾고 계시는구나, 하면서요.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사실 성경 구절 찾는 게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요. 이번에도 일주일 내내 못 찾고, 어젯밤에도 못 찾다가, 오늘 새벽에 붙들고 씨름해서 겨우 찾았어요. 저희가 매번 설교자를 초빙할 수 없으니까 성경 말씀을 가지고 함께 묵상 나눔을 하게 된 거였는데,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매달 예배할 때 애들 이름을 부르는데, 처음부터 한 건 아니고 몇 달 지나서부터 했어요. 달마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삶과 꿈을 읽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매번 아이들과 함께 예배드린다는 마음이에요. 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우리가 대신해야 하니까, 정말 이게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 애들한테 자꾸 묻게 되고요.

순서지에는 그때그때 상황 보면서 기도나 글을 넣는데, 이번에는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이 너무 꽉 막혀 있으니까 이태원 참사 피해자 부모님 발언을 넣었어요. 그런 준비를 하는 게 좋아요. 솔직히 교회 주보 만드는 것보다 우리 예배 순서지 만드는 게 더 좋아요. (웃음)

시찬 아버지(박요섭) / 저는 예배 전에 노래 틀어 줄 때, 오시는 분들 보고, 또 그날그날 느낌에 따라서 선곡을 바꿔요. 그냥 막 트는 거 아니거든요. 오늘 뭔가 힘을 주고 싶어서요.

지성 어머니(안명미) / 오늘 노래 좋았어요. 마음에서 기쁨이 나오는… 너무 감사했어요.

시찬 아버지 / 우리 예배는 완전히 새롭죠. 기존 예배의 틀을 완전히 깼으니까요. 처음에 오시는 분들은 조금 적응하기 힘들 것 같긴 해요. 우리는 찬송가나 CCM 같은 걸 전혀 틀지 않고, 예배 중에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니고, 4·16 아이들에 관한 노래를 부르니까, 예배드리는 사람들한테는 조금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틀을 조금만 깨면, 정말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가 무엇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하나님을 진짜 느낄 수 있는 예배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예배인 것 같아요. 그런 것이 기존 예배와 우리 4·16생명안전공원 예배의 큰 차이인 것 같아요. 그리고 엄마 아빠들이 각자 역할을 열심히 해 준다는 거, 내 일처럼 함께하는 분들이 있다는 거, 그게 좋아요.

사실 여기 어머님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모두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양의 설교를 듣고 자랐단 말이에요. 그래서 예배에 목사님들이 와서 설교하면 잘 안 와닿을 때도 있었어요. 위로라고 하는 말들이 우리에게는 가시같이 떨어지는 걸 너무 모르시는구나, 느낀 적이 많아요.

시찬 어머니(오순이) / 우리 예배는 기존의 교회하고 예배 순서나 그런 것들이 다른 게 독특하죠. 설교도 목회자가 하는 게 아니고 우리 가족도 하고, 오시는 분들도 하고, 그러니까 목회자들도 와서 그냥 같이 예배드리는 거잖아요.

예은 어머니 / 모두가 주인공이죠.

시찬 아버지 / 이제는 목사님들도 나와서 얘기하시라고 하면 오히려 꺼리시더라고요.

예은 어머니 / 꺼리시는데, 나와서 말씀하시면 길어지셔.(웃음) 처음 시작할 때는 솔직히 조심스러웠어요. 이렇게 예배드려도 되나, 내 마음은 편하지만 혹시 기존 교회 다니는 분들이 오시면 괜찮을까, 자꾸 살피게 되더라고요.
창현 어머니(최순화) / 저는 저항의 의미가 확실하다는 게 좋아요. 기존 예배 형식을 따랐다면 똑같은 교회로 생각하고 이렇게 열심을 내지 않았을 텐데, 4·16생명안전공원 예배는 이 체제에 저항하는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고, 우리는 진상 규명을 끝까지 원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기존 교회에도 메시지를 내고 있는 게 좋아요. 예배라는 형식을 통한 행동이에요. 오늘 가족협의회 총회에서도 제가 예배팀도 끊임없이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함께 같은 말씀을 갖고 나눔을 할 때, 각각 다른 얘기를 하는데도 그 얘기들이 우리한테도, 서로에게도 위로가 되고 마음이 통하는 것도 참 신기한 것 같아요. 예배라는 형식이긴 하지만, 우리는 기독교 역사에서 뭔가 굵은 발자국을 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세월호 싸움에서도 기독인들이 낸 발자국이 굵게 표시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

시찬 아버지 / 너무 크게 생각하시는 거 아닌가?(웃음)

순영 어머니(정순덕) / 생명안전공원에서 예배드리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는다. 우리 아픈 사람끼리, 지금까지 함께해 온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같이 동행하고, 서로 위로받고, 그런 것 같아 좋아요. 한 보름 전인가, 제가 스가랴 6장인가를 필사하다, 그 말씀을 받았어요. 때가 있다, 기다려라, 인내하고 기다려라, 이루어진다.

예은 어머니 / 아멘!

순영 어머니 / 딱 그 말씀을 주신 것 같아. 그래서, 하나님 우리 생명안전공원이 진실이에요? 그렇게 여쭤봤어. 그렇게 마음에 확 오더라고….

시찬 아버지 / 참사 이후에 교회에 등록하셔서, (순영) 어머니는 받아들이는 것들이 저희하고 완전히 다르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말씀에 찌들었던 게 너무 싫어서 나오려고 하는데, 어머님은 말씀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새롭게 느껴져요.

지성 어머니 / 기존에 드리는 대로 예배를 안 드리니까, 이게 뭐지, 이런 생각도 처음에는 조금 들었어요. 근데 오로지 애들만을 위한 그런 예배나 기도회는 없잖아요. 내 교회에서도 그렇고요. 10년인데, 어느 교회가 그렇게 예배를 드려 주겠어요? 여기서는 끝까지 우리 애들을 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장소라는 거, 그게 다행이에요. 애들한테는, 이 예배의 일원으로 나도 참여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 애들을 더 진하게 추모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게 이름이 부르고, 사연을 말하고, 이런 것은 어디서도 안 해 주는 거잖아요. '304명' 우리 애들 '250명' 하면 와닿지 않는데, 애들 이름을 부를 때, 사연을 들을 때, 아이들에 대해 더 생각하게 돼요.

시찬 아버지 / 4·16생명안전공원 예배는 우리 아이들이 17살 사춘기 시절을 겪었던 것과 같은 예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사춘기 같은 예배를 드리고 있는 거예요. 왜냐면 사춘기처럼 다 새롭잖아요.

지성 어머니 / 예은 엄마는 예배의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전번에 그랬잖아. 어떻게 이렇게 다 깰 수가 있었어?

예은 어머니 / 참사 때 다 깨졌어요.

지성 어머니 / 신학을 해서 그런 것 같아. (예은 어머니는 감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예은 어머니 / 어디서 신학을 했느냐에 따라 다를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세월호 참사가 있고 나서 저는 제대로 신학을 한 것 같아요. 신은 무엇인지, 교회는 뭔지, 예배는 뭔지, 그런 게 다 새롭게 정리가 됐어요.

창현 어머니 / 만약 이 예배가 없다면 나는 그냥 기독인이 아니라, 완전 자유인으로 살아갈 건데, 그래도 이 예배를 정기적으로 참여하면서, 하나님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예배이기도 해서, 저의 기독인이라는 정체성을 항상 확인시켜 주는 예배인 것 같아요.

예배와 저항

창현 어머니 / 우리가 10년 동안 싸우고 있는 거잖아요. 이 정부의 세월호 대처 방식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는 거고, 정부가 내놓은 조사 결과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진상 규명을 해라, 진실이 뭔지 밝혀라, 계속 요구하고 있는데, 그런 싸움의 굵은 줄기로 기독인들이 계속 함께하고 있다는 거, 나도 거기에 속해서 함께하고 있다는 거,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예배가 엄마들의 거친 싸움보다는 약간 정제된 싸움을 계속 벌이고 있게 해 주는 것 같기도 해요. 같은 싸움이긴 한데, 거친 싸움이 아닌, 정당성을 성경에서도 확보하고 많은 사람한테서 동의를 얻어 가면서 싸움의 정당성을 확인해 주는 자리이기도 해요. 또 제가 제일 좋은 거는, 교회 안에 있을 때보다 세월호 싸움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고, 옆에 있어 주는 그 사람들이 거의 다 기독교인이라는 게 너무 놀라운 것 같아요. 하나님이 계신 거는 분명하고, 좋은 하나님을 본받아서 이 사람들이 우리 옆에서 이 싸움을 같이 해 주고 있구나, 그거는 너무나 확실한 것 같아요.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좋고, 또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

시찬 아버지 / 예배가 유가족으로서의 제 활동에 딱히 도움이 된 건 없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예배에서 귀한 사람들을 만나는 거니까 좋은 거지, 뭐 예배가 내 삶을 변화시켰다거나, 교회에서 간증하는 것처럼, 그런 일들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사람 만나는 게 좋고, 그분들이 주는 마음의 위로가 있어서 좋은 거죠. 저는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예배도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은 어머니 / 4·16에 관해서는 우리가 정부를 상대로 싸우기도 하고, 또 세상을 향해 싸우기도 하지만, 또 기독인으로서는 하나님과의 싸움도 남아 있거든요. 도대체 이거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하고, 그래서 내가 살아남은 날 동안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는 혼자서는 풀기 어려운 숙제들이잖아요. 근데 그거를 함께 기도하고 때로는 같이 탄식하기도 하고 소리 지르기도 하면서 조금 풀었어요. 그런 것을 같이할 수 있는 가족들이나 기독인들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됐어요. 저는 이런 예배야말로 원래 처음 예배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풀지 못하는 문제들, 있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그 무엇들, 나의 마음의 염원을 담기도 하고, 원망을 담기도 하고, 했던 거죠. 근데 그게 규모가 커지고, 제사장도 생기고, 음악이 있고, 뭔가 행위가 있고, 그러면서 복잡해졌는데, 저희는 굉장히 심플한 예배를 드리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게 진짜 처음의 예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시찬 아버지 / 지금도 복잡해요. 예수님 때는 더 간단했을 것 같아.(웃음)

예은 어머니 / 아무튼, 저한테는 그러네요.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세월호 활동이자, 또 하나님을 향해서, 교회를 향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고 답을 줄 것인가를 같이 묻고 찾아보는 여정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기독인이 제일 오래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거든요.

지성 어머니 / 4·16 예배는 저한테도 많은 변화를 줬죠. 만약 이 이 예배에 참석을 안 했더라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 분노, 이런 것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야 할지를 몰랐을 거예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을 예배드리면서 질문도 하고 얘기를 듣기도 하면서 조금씩 정리해 나갔던 것 같아요. 밖에서는 할 수 없는, 다른 교회에서는 할 수 없는 거를 깰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싸움을 하면서도 이루어진 게 없었을 때 굉장히 갈등이 오더라고요.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 부분은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해결하셔야만 하겠구나, 이런 느낌이 들면서. 하나님 앞에 의지해야 하는 부분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시찬 아버지 / 지성 어머니는 이렇게 생명안전공원 예배와 기존 예배 사이의 괴리감으로 갈등하신 적은 없어요?

지성 어머니 / 그렇게 갈등하지 않았어요. 생명안전공원 예배는 여기대로의 독특성이 있는 거잖아요. 교회 쪽은 또 거기서 제가 해야 할 것도 있더라고요.

순영 어머니 / 생명안전공원 예배는 마음 아픈 사람끼리 같이 연대하니까 좋아요. 마음이 좀 우울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 같이 묻고, 얘기하고, 일도 풀어 가는 게 좋더라고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예배라면 찬송가는 불러야 하지 않나….(웃음)

시찬 아버지 / 저는 워낙 교회에서 찬송가나 CCM을 목록화해서 그날그날 예배에 맞는 것들을 계속 틀었거든요. 근데 우리 예배에서는 가요도 틀었는데 '가요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네'라고 느껴요. 꼭 찬송가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 형식 속에 꼭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요.

지성 어머니 / 저는 예은 엄마처럼 우리 예배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참여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억지로 와서 있는 게 아니라, 평생을 드려 왔던 예배이기 때문에 이질감이 없었어요. 내가 이 예배에 참석하기 전에 4·16TV에서 1년을 일하면서 거기 묶여 있었는데, 예배를 쳐다보면서 '저 예배의 자리, 내 아이들을 위한 예배의 자리에 내가 가야 하는데' 그런 마음을 가진 적이 있어요.

시찬 어머니 / 저는 생명안전공원 예배는 항상 애들이 함께하는 예배니까, 그런 마음으로 갔던 것 같아요. 내가 애들과 한 달에 한 번 같이하는구나, 그런 의미가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음도 좋고, 우리와 마음을 함께한 분들을 많이 만나니까 좋고….

예은 어머니 / 우리가 예배를 주관하게 된 건 사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어요. 왜냐면 처음에는 외부에서 교회들이나 단체들이 많이 움직였는데, 중간에 정권 바뀌고부터는 발을 빼고 흩어지니까, 저희가 주도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제가 예배 때 찬송가를 거의 넣지 않는 이유는, 그게 다 우리 아이들한테 많이 들려줬던 거잖아요. 근데 그 찬송가 대부분이 지켜 준다는 약속, 복 준다는 약속, 그런 게 너무 많아요. 또 '바다'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와. 그래서, 바다 이야기 나오는 거 빼고, 지켜 주겠다는 약속도 빼고, 축복한다는 약속도 빼고, 그러다 보면 남는 게 없죠. 너무 없어요. 찬송을 못 고른 우리 잘못이 아니고, 찬송을 잘못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복을 비는 신앙, 그런 게 살아가면서 필요하긴 하지만, 제일 가슴 아픈 것 중 하나가 우리 아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걸 믿었을 거라는 거예요.

시찬 아버지 / 배 안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예은 어머니 / 그게 너무 미안해. 그 찬송들이 애들을 그렇게 가만히 있게 만들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아이들한테 설교하거나 가르칠 때, 교회 다닌다고 모든 불행이 너희들을 피해 가지는 않는다, 다듬어서 얘기해요.

창현 어머니 / 그건 그래….

예은 어머니 / 그 순간에 그냥 앉아서만 기다리는 게 진짜 신앙은 아니다, 그 순간에도 너희가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봐야 한다….

시찬 아버지 / 배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그 마지막에 기도하는 영상이 있거든요. 기존 교회 시선에서는 그게 맞아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다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언젠가 우리한테 그걸 해줄 거라는 기대감으로 기도하는 거요. 그런데 우리가 참사를 겪고 나서 보니까, 너무 얼토당토않은 기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아이들이 지금 기도가 급한 게 아닌데, 나와야 하는데, 행동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다 해 주실 거라고 우리가 애들한테 주입식 기독교 교육을 해오지 않았나…. 그 결과물이 그 영상 속에서 보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되게 마음이 안 좋았거든요. 우리가 저렇게밖에 못 가르쳤구나, 아이들한테 미안해요.

예은 어머니 / 나는 요나 이야기가 제일 싫었어. 애들도 고래 배 속의 요나처럼 그 안에서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을까….

창현 어머니 / 저는 그것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당시까지는 아이들이 기도하는 것, 그게 옳다고 생각했고, 어쨌든 간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거, 그것까지 부정하면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시찬 아버지 / 아이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우리가 잘못된 최선을 가르쳤다는 거에 대한 부모로서의 자책감이 드는 거예요.

창현 어머니 / 부모의 문제지.

시찬 아버지 / 그렇죠, 우리 어른들의 문제예요. 결국은.

예은 어머니 / 애들은 문제가 아니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시찬 아버지 / 저도 그런 뜻은 전혀 아니에요. 우리 어른들의 잘못에 대한 자책감, 우리가 너무 무지했다는 거, 그런 거죠.

예은 어머니 / 그러니까 언니 말의 요지는 구하지 않은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거지. 근데, 가만히 있게 소리친 그 사람들도 문제지만, 그 말에 대들 수 있는 애를 키웠어야 하는 건데, 그게 너무 미안한 거지.

시찬 아버지 / 어른들이 이기적으로 살고 있구나, 우리 세대가 되게 반성해야 한다니까요.

창현 어머니 / 우리 예배에는 대표 기도가 없잖아요. 근데, 없는 게 어느새 자연스럽게 돼 버렸고, 기도가 없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이 예배에 참석하기로 한 그 마음부터가 기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를 향한 마음, 발걸음들, 그 모든 것이 기도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예은 어머니 / 묵상할 때도 기도하는 거 아니었어? 그 순간에 우리의 감각이 영적으로 열리는 거니까.

시찬 아버지 / 구글 같은 회사에서도 직원들한테 일부러 명상하는 시간을 갖게 하잖아요. 거기서 새로운 것들이 나오니까. 신앙도 저는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거든요. 기존 교회의 틀에서는 생각을 못 하게 계속 휘둘렸지만, 우리는 묵상을 하면서 조금씩 생각을 정리해 왔지 않나 해요.

지성 어머니 / 저는 우리 아이들한테도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방학 때는 학원도 쉬게 한 적이 있어요.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

이날 대화를 시작하며 함께 읽고 묵상한 성서 본문은 로마서 12:1-2 말씀이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로마서 12:1-2)

시찬 아버지 / 창현 어머니는 산 제물로 드렸어요. 머리 빡빡 깎고….

창현 어머니 / 아, 지금도 하고 싶어요. 참고 있어.(웃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게 뭘까…. 본래의 나로 제대로 사는 것, 남들이 심어 놓은 기준이 아니라 본래의 나로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께도 영광이고 예배가 아닐까 싶어요. 본래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게 알고 싶어요.

지성 어머니 / 나도 오늘 날이 꾸물꾸물하니까 '그래 나는 어떤 사람이지' 그 생각을 했어요. 내 모습이 정리가 안 되더라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날씨가 문젠가.(웃음)

창현 어머니 / 산 제물로 드린다는 말이 너무 좀 잔인한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 의미는 아니잖아요.

예은 어머니 / '제물'이라는 말에 하도 참사 초기에 상처를 받아서요. 우리 애들이 뭐 나라를 위해서 바쳐졌다는….

창현 어머니 / 좋은 말로 다가오진 않았어.

예은 어머니 / 저한테는 그냥 살아 내라, 그런 뜻으로밖에 안 들려요. 죽지 말고 살아 있어라. 저는 참사 이후 예배는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거, 그거라고 생각해요.

시찬 아버지 / 예배라는 형식은 구약시대, 신약시대, 근대에 다 달라졌잖아요. 그래서 '어떤 예배 형식이 맞다'고 저는 주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그게 맞다면 하나님이 절대 못 바꾸게 못을 박아 놨겠죠. 그게 아니고 시대에 따라 변했다는 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시대에 따라서 변하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바꿔 말하면, 우리가 생명안전공원에서 드리는 예배라는 형식도, 어쩌면 하나님이 보시는 시각에서는 굉장히 합당한 예배들일 수 있죠. 그 안에 찬송이 없든, 대표 기도가 없든, 설교가 없든, 그게 중요하지 않으시겠다는 생각은 들거든요. 너희 마음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갈구가 있고, 하나님에 대한 느낌이 있고, 그게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이지 않을까 해요.

시찬 어머니 / 참사 전에는 그냥 말 그대로 내 몸을 예배 시간에 산 제물로 드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예은 어머니 / 우리가 자식을 먼저 보내고, 자식이 어딘가로 지금 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끈을 늘 이렇게 붙잡고…. 그러니까 자식이 있는 그 위치에서 나를 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교회에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선을 분명하게 긋잖아요, 죽음과 삶이라는 경계를 확실하게. 근데, 이렇게 자식을 먼저 보내고 나니까 이 선을 분명히 그을 수가 없어요. 여기에 있는 끈을 붙들고, 그쪽 세계와 이쪽 세계를 같이 살고 있는 거예요. 또 유가족은 2014년이랑 2024년이랑 두 개의 시간을 살고 있어요. 유가족은 두 개의 시간, 두 개의 공간을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에요.

지성 어머니 / 저는 산 제물로 제사를 드린다는 거는, 지금 상태에서 더 깊이 내 마음과 몸을 드리는 것, 내 영혼을 드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머리로 알았던 거를 이제는 마음으로, 내가 정말 실천하려는 거예요.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드리고 싶다, 그래요.

창현 어머니 / 그래서 지성이에 대해선 해결되었어요?

지성 어머니 / 나는 해결은 하나님한테 맡겼어. 내가 이 땅에서 해결할 일은 따로 있지만, 이제 아이에 대한 부분은 하나님한테 맡겼어. 지금도 기도해요. 하나님, 이 아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소서. 내가 하나님 안 믿으면 뭐 하려고 여기 있어, 나 여기 안 있어.

시찬 아버지 / 전에는 천국 가려고, 예수 믿고 구원받으려고, 하나님이 주신 복 누리려고 하는 신앙이었다면, 지금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그냥 시찬이 만나려고 하는 거…. 그래서 천국을 놓을 수 없고, 하나님을 놓을 수 없어요. 만약 시찬이 만난다는 게 보장이 안 된다면 저는 다 버릴 수 있거든요. 다 필요 없거든요. 내가 지옥을 가든 천국을 가든 저는 그거 중요하지 않아요. 하나도 안 중요해요.

예은 어머니 / 유가족의 신앙을 비슷한 성격으로 묶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쌓아 온 신앙의 연륜이나 경험치들이 다 다르니까요.

시찬 아버지 / 누가 맞다 틀리다는 아니니까요, 절대로…. 저희야 뭐 이해 못 할 게 뭐 있어요? 자식 잃은 부모들인데….

지성 어머니 / 그래, 그걸로 뭉쳤지.

시찬 아버지 / 그게 같아서 뭉친 거지, 그분 성격이 좋아서, 그분 삶이 좋아서 뭉친 건 절대 아니에요.(웃음)

창현 어머니 / 진상 규명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기독인들이 할 수 있는 게 예배인데, 그게 모일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준 것이기도 하니, 예배를 내버리지 말고 가져가야 할 것 같아요. 세월호 싸움의 한 방편으로.

시찬 아버지 / 예배에 대해 각자 느끼는 게 다른 거 같아요. 어떤 분은 진상 규명, 어떤 분은 거기서 만나는 사람의 중요함, 어떤 분은 예배 자체의 중요함, 다 이렇게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순영 어머니 / 저는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드리는 게 아닌가 해요.

예은 어머니 / 맞아, 각자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나한테 하나님이 주신 그 성격과 그 성품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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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학 대화에서 충분히 나누지 못한 경험 중 하나가 서울에서의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기도회다. 그리스도인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서울 광화문광장, 청와대 앞 효자동 입구 등에서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기도회, 예배, 단식 농성을 이어 갔다. 그리스도인 유가족도 언제나 적극적으로 함께했고, 2019년부터는 광화문광장에서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월례 기도회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세월호참사를기억하며연대하는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모임이 생겨나 여러 세월호 진상 규명 그리스도인 활동을 책임졌다.

촛불 혁명 후 기대했던 문재인 정부의 진상 규명 노력은 지지부진했고, 유가족의 고소·고발에 대해 검찰 특별수사단이 무혐의 결론을 내리는 등 진상 규명은 더욱 어려워졌다. 실망하고 분노한 유가족은 치열하게 싸웠고, 4·16 그리스도인도 힘을 모았다. 2020년 가을과 겨울 사이, 청와대 앞에서 30일 릴레이 단식기도 및 노숙 농성을 했고, 2021년 사순절 기간 동안에도 같은 곳에서 연속 단식기도, 피케팅, 매주 목요 기도회 등 강도 높은 집중 행동을 했다. 이처럼 팬데믹 기간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애도와 연대를 멈추지 않았고, 지금은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관 앞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월례 목요 기도회를 이어 가고 있다.

서울 기도회의 특징 중 하나는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컬 그룹이 함께했다는 것이다. 복음주의 쪽에서는 성서한국의 임왕성 목사와 송지훈 사무국장, 교회개혁실천연대 이헌주 목사가, 에큐메니컬 쪽에서는 촛불교회 김준표 목사, 고난함께 전남병 목사, 그리고 4·16생명안전공원 예배팀에서 내가 실무팀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늘 기도회 테이블을 만들고 크고 작은 돌발 사태를 해결해 준 최헌국 목사, 코로나 기간 동안 촬영 및 방송을 맡아 준 향린교회 김균열 집사 같은 이들이 헌신했다. 고통 앞에서 신앙과 신학의 차이는 사라졌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