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리 “다른 사람이 당신을 위해 결정할 수 없다”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프랑스 의회가 여성이 낙태할 자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4일 승인했다. 해당 헌법 개정안은 4일 표결에서 780대 72로 통과됐다. 이로써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낙태의 자유를 헌법이 보장하는 나라가 됐다.

낙태는 프랑스에서 이미 1975년부터 법으로 허용된 상태였다. 프랑스에서 낙태법은 지금까지 9번 개정됐는데, 그때마다 낙태에 대한 접근이 확대됐다. 많은 법학자는 낙태권이 프랑스에서 이미 실질적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됐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미 낙태가 합법인 프랑스에서 굳이 헌법에까지 낙태할 자유를 명시한 이유가 뭘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2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주 정부가 낙태를 금지하거나 축소할 수 있도록 하자 낙태권을 프랑스 헌법에 포함하겠다고 지난해 선언한 바 있다. 지난 몇 년 간 여성 낙태권을 없애거나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미국이나 폴란드, 헝가리 등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이런 경향에 대한 프랑스의 대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의회 표결 전 의원들에게 낙태권이 위험에 처했고, 결정권자들의 자비에 맡겨졌다면서 “우리는 당신의 몸이 당신 것이며 다른 사람이 당신을 위해 결정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모든 여성에게 보낸다”라고 말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낙태할 자유를 헌법에 넣는 것에 대해 프랑스 대중의 약 85%가 찬성했다.

지난 2001년 당시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엄밀하게 따지면 프랑스 헌법의 일부인 1789년 인권선언에 있는 자유에 대한 개념을 근거로 낙태를 승인한 바 있다. 참고로 AFP통신은 프랑스에서 한 해에 70만 명에서 80만 명의 여성이 낙태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번 프랑스 헌법개정안에 ‘낙태할 권리’가 아닌 ‘낙태할 자유’라는 용어가 들어간 것이 눈에 띈다.

원래 하원에서 낙태할 ‘권리’라는 문구가 들어간 헌법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상원에서 이걸 낙태할 ‘자유’로 수정했다. 그랬다가 마크롱 대통령 중재로 결국 ‘낙태할 자유 보장’이라는 문구를 넣기로 의회가 합의했다.

한편 의회 내 우파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헌법개정을 선거 목적으로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또 일부에서는 헌법개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불필요했고, 대통령이 좌파 진영의 환심을 얻으려고 이를 이용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프랑스 가톨릭 주교들은 이번 헌법개정에 관해 프랑스인들에게 금식과 기도의 날을 촉구했고, 로마 교황청은 인간의 생명을 뺏을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