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 교회) = 사람들은 이런 말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늘 사람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사람이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닌 존재를 의미한다.

연민이나 긍휼도 좋다. 그것을 말하는 종교학자들은 많다. 그것을 공감이라는 단어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피상적일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깨달음으로 의미가 있지만 실제로 그런 연민이나 긍휼이나 공감은 생각보다 어려운 단어다. 인간은 그만큼 가변적인 존재이며 착각이나 합리화의 달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권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감염되는 오만 증후군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의미 있는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오만 증후군에 감염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감의 능력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버클리대 심리학과 교수 켈트너 교수는 20년 간 연구를 통해 연구대상에게 권력을 줄 경우 그들이 마치 정신적 외상을 유발하는 뇌 부상을 당한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연구대상들은 더 충동적이 됐고, 위험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졌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할 능력이 하락했다. 영국의 외무부 장관이었던 신경학자 오웬과 그의 공동저자 조나단 데이비슨은 2009년 브레인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서 이 장애를 ‘오만 증후군’(Hubris syndrome)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증후군을 "권력자, 특히 굉장히 성공적으로 특정 기간 동안 큰 견제 없이 권력을 누린 지도자에게 생길 수 있는 장애”라 정의했다. 권력은 환자의 공감능력을 모두 죽이는 종양과 같으며 오만 증후군의 14가지 의학적 증상에는 남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 매우 떨어지는 현실성, 침착하지 않거나 무모한 행동, 무능함의 표출 등이 있다고 한다"

개인주의와 능력주의가 가장 중요한 두 기둥인 세상(특히 신자유주의체제)에서 ‘오만 증후군’은 오히려 성공의 상징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특히 세상의 정치가들과 재벌들에게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지는 직업군으로 나는 성직자들을 꼽는다.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막론하고 성직자 혹은 그 비슷한 목사들은 가장 중증의 ‘오만 증후군’ 환자가 된다.

'오만 증후군'은 어느 순간 감염된 환자를 신으로 만든다. 역사를 보라. 모든 황제들은 스스로 신이 되거나 신의 아들이 되었다.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는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인 신들이다. 권력을 장악하기도 전에 신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거나 일반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직업군이 성직자들과 목사들이다.

오만 증후군에 감염된 사람들이 세상을 장악하면 그곳은 자연스럽게 "희생의 체제"가 된다. 희생의 체제 속에서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은 물론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 세상은 가장 먼저 그런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한다.

모든 문명이 "희생의 체제"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명심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그것도 하나를 돌보아야 한다. 그런데 성직자나 목사들이 오만 증후군에 감염된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도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그것이 구조적인 틀이 되었다면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렵지 않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종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약간의 변화를 맞았지만 건재하다. 아마도 세상 끝날 까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 대접을 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약간의 구제나 자선마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권력을 소유하거나 부를 지닌 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실천할 수 없다.

오래 전 일이다. 나는 한 고아원을 드나들게 되면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그곳에 데리고 갔다. 가기 전에 사람들은 고아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그곳을 방문한다. 그러나 그곳을 방문하여 그곳 아이들이 지내는 장소와 시설, 먹고 마시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자기 집보다 형편이 낫다.”는 말과 함께 도울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한다. 그들에게 없는 부모의 사랑 때문에 그들이 자기 자녀들보다 더 나은 상황에서 양육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 이유를 발견했다. 특히 가난해지게 해주십사는 기도를 드리다 마침내 내가 땡전 한 푼 없이 집에서 쫓겨난 후에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작아지는 길이다. 헨리 누엔 신부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인은 하향의 길을 가야 한다. 자끄 엘륄은 그런 나에게 비능력이라는 비책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도달한 곳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나는 인간의 존엄을 살려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김연경의 말대로 사람들에게 “사람 연기連記”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가 나머지 인생 동안 주력해야 할 일이다. “사람 연기”는 단순히 합리적이기만 하지 않다. 오히려 비합리적인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것은 더 확실한 “사람 연기”다.

부득불 내 이야기를 한다. 나는 지난번에 늘 깎는 미장원에 머리를 깎으러 갔다 사람이 많아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냥 집 앞에 있는 다른 미장원에서 제 값(만천원)을 주고 머리를 깎았다. 내가 깎으러 갔던 미장원은 삼천 원이었다. 초보 미용사들이 머리 깎는 연습을 하는 곳이다.

만천 원짜리 이발을 하면서 나는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누가 그런 대접을 받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대접을 받기를 원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비싸게(?) 머리를 깎았다는 말을 듣고 딸들과 아내는 잘 했다면서 이젠 그런 곳에서 머리를 깎으시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곳에서 나는 ‘사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이전의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깎았다. 비용이 올라서 사천 원이 되었지만 그곳에서 머리를 깎은 후 나는 내 마음이 편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다.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목표 내지는 삶의 방식은 내가 아니라 다른 이들로 하여금 '사람 연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준 돈으로 양담배를 사서 긴 담배를 피우면서 오만한 표정을 짓던 여성노숙자를 기억한다. 그것은 돈 낭비가 아니라 제대로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것이다.

돈을 벌어야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이런 일을 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돈이 없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돈이 없어지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작아진다. 그리고 그렇게 작아지면 비로소 사람이 보인다. 그렇게 사람이 보일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님을 섬길 수 있게 된다.

"사람이 보이는가?"

늘 이것을 확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가장 큰 은혜는 사람이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