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이십 년도 더 된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나는 빵집을 열었던 한 목사님의 기도를 기억한다. 그 기도 가운데 하나는 만일 자신이 빵집에서 일하는 사람을 괴롭게 하거나 살기 힘들게 한다면 자신의 빵집을 망하게 해 달라는 항목이 있었다. 당시 그 내용은 내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빵집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그렇게 명시해 놓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런 내용을 보아도 더 이상 놀라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신기하게 생각하거나 고맙게 생각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종업원을 위해 빵집을 열거나 운영하는 것이 목적인 빵집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인 사람의 사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져 비난의 대상이 된 박원순 시장도 내가 존경하던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노숙자들이 주무시는 시청역 바닥에 열선을 깔기도 했고, 오세훈 전 시장이 열었던 영어 카페를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카페로 만들기도 했다. 비록 그가 빼 박지 못할 성범죄에 연루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내게 아직도 큰 아쉬움이 남아 있다.

세상에는 이처럼 약자들의 편에 서거나 약자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다.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약자들의 편에 서거나 약자들을 위함으로써 자신도 약자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힘 있고 가진 자들의 편에 서야 자신의 입지가 공고해진다는 사실은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다.

내가 오래도록 이상하게 생각해온 현상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자의 편에 서는 일이다. 약자들의 연대는 어렵다. 약자들이 연대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 선거제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약자들이 오히려 가진 자의 편을 드는 모순된 현상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발견하게 된다.

왜 약자(가난한 사람)들은 강자(부자)들의 편을 드는가?

물론 예전에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낙숫물 효과’가 실제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고 있다. 나는 그런데도 왜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가진 자들의 편에 서는가를 관찰하고 그 이유에 주목해왔다.

나는 그 이유를 근본적으로 인간이 힘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발견했다. 약자들은 가진 힘이 없다. 그것이 처음부터 약자들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패거리들이 없다면 세상에서 어떤 일을 도모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이 고민이 될 수는 있지만 막상 선거에서 표를 찍을 때는 될 사람을 찍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회가 개인이 아닌 사회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힘을 추구하도록(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구나 약자들의 연대는 실제로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그것은 허공 속의 메아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언가 실질적인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결과적으로 힘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개인 자체가 힘을 추구하는 존재인데다 사회는 그런 개인들을 부추기는 것이다.

나는 힘을 추구하고 약자들의 연대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사회가 후진국 사회의 특징이라고 믿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가 전혀 선진국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어쨌든 전에는 가난한 사람도 능력이 있다면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고시에 패스하면 사회 지도층이 될 수 있었고, 사업을 하거나 장사를 해서도 돈을 벌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가진 자의 대열에 합류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공고한 계급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명목상의 왕족이나 귀족은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이 있던 시대보다 더 강력한 계급이 암암리에 존재한다. 그래서 계급이 다른 사람은 결혼을 해도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 조금만 주의하거나 관찰해보아도 이런 현상은 확연하다.

이것은 능력주의를 능가하는 능력주의다. 능력주의가 개인주의와 결합되어 역사 속에 유래가 없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아무리 능력주의와 개인주의의 폐해를 지적해도 꺼떡도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아무리 비합리적인 자유를 주장하고, 거짓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그것들이 반복적으로 공약(空約)임이 드러나도 그에 대한 다른 대안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현장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한다. 그것은 맘몬의 강력한 통치의 결과다. 강력한 맘몬의 아우라가 우리 사회 전반에 드리워졌고, 맘몬의 강력한 통치가 자연스러운 곳이 되었고, 그것은 더욱 강화되어 가고 있다.

이것이 영적인 사실임을 깨달아야 할 그리스도인들마저 이 사실을 외면한다면 더 이상 희망은 없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하나님이냐 돈이냐를 선택하는 문제임을 망각한 그리스도인들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히 자선을 행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은 근본적으로 사회를 뒤엎는 일이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주님처럼 대하는 것이야말로 사회 변혁의 근본적인 동력임은 물론 온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편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자선으로 축소 환원해서는 안 된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예수님처럼 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회를 뒤엎는 것이며 모두가 평등한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어내는 첩경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교회는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빨갱이나 종북으로 정의한다. 그렇게 된 이유 역시 명확하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교회가 맘몬의 통치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무리 성서를 말하고 복음 전파를 자신들의 지상최대의 과제라고 주장해도 이 사실을 묵과한다면 그들의 결과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맘몬의 통치이며 그들이 궁극적으로 예배하는 것 역시 맘몬이다.

그래서 내가 만나고 싶은 하나님 나라인 사람은 단순히 교회를 같이 할 자매와 형제가 아니라 오늘날 맘몬의 통치를 받는 우리 사회를 전복시키고,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개인일 수 없다. 그가 누구이건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사회는 물론 온 세상을 향한 구원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 원칙은 단순하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예수님처럼 바라보고, 예수님처럼 대하는 것이다. 그들은 불쌍한 자선의 대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흠숭해야 할 존귀한 분들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 오늘날 복음은 허공 속에 묻힌 그 약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