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 교회)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서의 말씀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이다. 나는 그 기사를 하나님 나라 이야기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하나님 나라가 되고 싶다. 내가 돈 없이 오랜 세월을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이유를 이제 나는 안다. 그 오랜 가난한 삶을 통해 나는 하나님 나라를 배우고 익혔다.

내가 가진 것이 있었을 때는 ‘공동의 소유’라는 말만 들어도 내게 거부하려는 마음이 들었다. ‘내 것’이라는 인식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청지기’라는 말을 잘도 한다. 그러나 그 말이야말로 어리석은 자가당착이며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청지기는 자신의 소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곧잘 자신의 소유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을 한다. 그런 고백을 드린 후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소유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동의 소유’라는 말을 들으면 즉각 그것을 거부한다. 그 순간 자신이 청지기라는 사실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며 그때에야 비로소 청지기라는 자신의 고백이 진실이 아니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아무리 들어나도 자신이 청지기여야 한다는 고민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는 자신이 더 낫다는 비교를 하고 자신이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나은 청지기라는 결론을 내린다.

나도 안다. 이것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발목을 잡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지나야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제자도 타령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은 바로 이 ‘공동의 소유’ 앞에서 망설이게 되고, 망설임만으로는 결코 예수의 제자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을 아무리 해보라. 아무 소용도 없다. 제자훈련은 제자가 되는 훈련이 아니라 제자로 착각하기 위한 훈련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어느 곳에서도 제자훈련을 마친 후에 사람들이 ‘공동의 소유’를 실천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들은 전보다 더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거나 신실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제자의 정체성과는 상관이 없는 말이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 즉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 여러 비유들을 사용하셨다. 위의 비유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잘 보라. 하나님 나라가 포도원 주인이다. 주인이라는 단어는 ‘주인의 사정’이라는 말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우리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장소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 말씀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사람(주인) 혹은 처한 정황(사람의 사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을 ‘몸소 하나님 나라’라고 부르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렇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하나님 나라가 된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말씀이 육화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씀대로 살아 말씀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말씀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곧 하나님 나라이며, 그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증인이 됨과 동시에 전도자 혹은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선교 혹은 복음전파는 오직 이 방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역사의 증언이기도 하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가 실종된 것은 그렇게 하나님 나라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그리스도교와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된 그리스도인들을 쫓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모든 그리스도교와 교회를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시 말해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교회는 더 이상 복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이 되었다.

하나님 나라가 된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열린다. 물론 공동체면 더욱 분명하겠지만 개인인 경우에도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진다. 하나님 나라인 사람이 하는 가장 첫 번째 일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지만 그 이전에도 하나님 나라는 드러난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예수님은 열두 제자 공동체를 만드셨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우리는 포도원 주인이 있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포도원 주인의 목표는 돈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인 포도원 주인이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포도원에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포도원 주인의 어리석음에 주목해야 한다. 포도원 주인은 오후 다섯 시, 즉 일이 끝나기 한 시간 전까지 일꾼을 구하러 장터로 나간다. 포도원 주인은 한 사람이라도 더 일꾼을 모으려 하였다. 얼마나 어리석은 사고인가. 한 시간 일할 사람을 구하러 장터로 가는 주인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우리는 여기서 오후 다섯 시까지 장터에 남아 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사람은 분명 핸디캡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일을 잘하고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 시간까지 장터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혹 그날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더라도 내일을 기다리며 돌아갔을 것이다.

나는 포도원 주인이 의도적으로 그런 사람을 일꾼으로 부르기 위해 장터에 갔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 함께 포도원으로 오면서 주인은 기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하루치 품삯을 주면서 행복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하고 있는 일이 다른 일꾼들의 눈에는 거슬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많이 일한 자가 더 많이 받아야 하고, 먼저 온 자가 먼저 받아야 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사고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것은 세상의 방식이었고, 세상의 가치관이었다. 포도원 주인은 그것을 뒤엎고 무력화시킨 것이다. 결과적으로 포도원에 평균이 이루어짐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다.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역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역전이 아니라 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됨으로써 모두가 평등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 물론 이 일은 세상의 사고와 가치관으로는 오히려 불합리하고 불의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는 세상의 사고와 가치관으로 보면 무질서하고 불의하게 보인다.

나는 하나님 나라인 사람들을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 하나님 나라가 되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싶다. 쉬워 보여도 어려운 일이다. 내 평생 그런 사람을 못 만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내 길을 간다. 그 길은 어리석은 자만이 갈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