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올랜도 독자) = 오랫만에 이민 초기 이야기를 업데이트 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고자 한다.

내가 미국에 자동차 정비공으로 취업 이민와서 10만불이란 거금을 아무런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준 미국인이 있었다. 바로 '베어리 모터(Beary Motor)' 사장이다. 그는 보통의 경우처럼 '돈을 갚지 못하면 어떠한 조치가 가해진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도 요구하지 않았고, 두번씩이나 나를 찾아 와서 "자동차 정비에 필요한 장비들을 모두 가지고 가서 스스로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해 보라"고 했다.

내가 이곳에 취업 이민와 6년간 일한 공장은 프론트 앤드(front end) 전문 공장이었다. 나는 그동안 야간에 기술학교에 나가 자격증도 받았고, 어느 차종 어느 부분 분해 조립 순서와 시간, 그리고 필요한 공구 등을 대개 암기하려고 노력한 헤드 메캐닉이었다. 시급은 높이 받았으나 두명이나 백인 아이들을 헬퍼로 두고 실습교육을 시킬 때였는데, 고용주는 화장실과 사무실 청소를 나만 시키는 것이었다. "네가 깨끗이 청소를 하니 좀 수고해달라"고 하면서.

1년여만에 집사람에게 '어느 분이 10만 달러 넘는 장비를 가지고 가서 네 공장을 스스로 해보라고 하는데 성공하지 못할까 겁이 난다'고 털어 놨다. 집사람은 "당신이 매월 15만원 월급(당시 한국군 소장 월급이 5만원이었음)을 현대 자동차에서 받아다 주던 당시 내가 당부한 말을 듣지 않고 다섯 아이들 교육 보험에 들어 전부 날린 것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만, 당신은 손님에게 바가지 씌우지는 않을 것이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정비해 줄 사람이니 절대 망할 일은 없을 것이아니냐"라면서 "10만 달러치 장비들이 모두 새것이고 쓸만한 것이냐"라고 물었다. 이곳에서 아이들 대학을 다 마치게 하려면 무슨 용단을 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도 최대한 도울 것이니 시작해 보라고 하였다.

결국 남의 땅을 빌려 스리베이의 작은 정비공장을 지어 1981년 6월 18일 '송스 휠 얼라이닝 & 브레이크(Song's Wheel Aligning & Brake)' 공장문을 열었다. 그러나 오픈 전날 밤에 흑인 4명이 공장 밖에 설치한 장비를 밤중에 훔쳐가는 바람에 망연자실했다. 10년이 지난후에서야 훔쳐간 그 흑인이 나에게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흑인에게 시킨 사람은 동족이었다. 가슴아픈 과거 얘기다.

2년 전 이곳의 유명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기 직전에 자원 봉사자 백인 노인에게 미국 이민와 살아온 내 얘기를 했다. 얘기를 다 들은 그는 "당시 10만 달러면 돈이 많은 사람에게도 푼돈이 아니다. 베어리 모토는 그때 망해가는 회사였다. 어느 누군가가 너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1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했다.

회사가 싫다고 사표 쓰고 나간 놈에게 10만 달러란 거금을 투자한 기업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민생활하면서 '내가 작은 사업이나마 스스로 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상상조차 하기가 겁이 난다. 집사람은 가끔 '당신이 작은 공장을 스스로 운영하지 못했으면 우리 아이들 대학을 몇 놈이나 졸업시켰을까. 아마도 한 놈도 못시켰을 것이다'라고 혼자말을 하곤 했었다.

나는 30여년간 작은 정비공장을 운영하면서 단 한번도 한국 신문이나 어디에도 내 공장을 소개한 적이 없으나, 한해 국세청에 많은 액수의 세금 보고를 할 정도로 비즈니스는 성업을 이루었다.

5년 만에 10만 달러를 다 갚았던 날, 나의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현대정공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연하장이 왔다.

내가 6개월간 울산 공장에 내려가 현대에서 맡은 중요한 국가사업을 성공시키고 울산공장에 한밤중에 직원들과 올라 오면서 "내일 우리 회식합시다. 수고들 많이 했습니다"라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울산 공장에 돌아오니 상사는 퇴근도 않고 있다가 "송과장, 미안하지만 저 신차를 몰고 내일 아침에 정몽구 소장님에게 귀대신고를 해주시오"라고 하는 바람에 정몽구 소장을 만났다. 그때 처음으로 그의 어린 아이 같은 얼굴 모습을 보았다.

이제 정몽구 회장님께 이 말씀을 드려야겠다.

회장님이 연하장을 보내셨을 때 무슨 마음으로 보냈는지 나는 전혀 생각도 못 했습니다.

1959년 12월 제가 한국 공군병장일때 일리노이주에 있는 미공군기술학교에서 특수차량정비 교육을 받을 때 미 공군 병장과 같이 오클라호마주에 사는 한국전 참전 노병의 한국 온돌방 구경을 갔습니다. 그 노병은 "한국은 언제인가 잘 살게 될 것이다"라면서 자신은 한국 온돌방에서 "늙어 마음편이 살 수 있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는 미국 격언대로 살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늙고 병들었으나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많은 책을 마음껏 사서 읽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의 10만 달러 덕입니다. 비록 나의 오른손 하나의 지문이 닳아 없어졌지만.

당신이 1970년 어느날 저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네가 오늘부터 새 정비과장이야. 잘해봐!"라고 하고는 사무실을 나갔습니다. 이사님이 직장생활에 필요한 상식을 교육시켜 주셨으나, 정비과 돌아가는 꼴을 보자니 공군 수송부대는 그래도 양반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어떻게 하면 정비과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금 미국 격언대로 늙어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