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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연예/스포츠
 
박찬호·추신수·류현진... 한국 야구의 황금세대는 어떻게 탄생했나
[김은식의 야구야] 프로야구의 뿌리와 꽃, 어린이 회원

(서울=오마이뉴스) 김은식 기자 = 스포츠에서는 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같은 또래에서 한꺼번에 배출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흔히 '황금세대'라 불린다.

한국야구에서는 1973년생들이 가장 유명하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를 시작으로 박재홍, 염종석, 조성민, 임선동 등이 동갑내기이고 한 살 위인 정민철도 같은 학년으로 학교에 다녔다. 1973년생만큼은 아니라도 한 살 아래인 1974년생 중에는 손민한, 진갑용, 이병규, 박한이 등이 나왔고 그 한 살 아래 1975년생 중에도 김동주, 김재현, 심정수, 이호준, 조인성 등이 배출되었다. 모두 1990년대 부터 길게는 20년 이상 한국 야구를 대표해온 이름들이다.


▲ 한국야구에서는 1973년생들이 가장 유명하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를 시작으로 박재홍, 염종석, 조성민, 임선동 등이 동갑내기이고 한 살 위인 정민철도 같은 학년으로 학교에 다녔다. 사진은 박찬호 선수. ⓒ LA 다저스

그 이후로는 1982년생과 1987년생들이 유명하다. 1982년생 중에는 한국인 야수 최초의 메이저리거로서 한국야구사상 최고의 타자라 불리는 추신수를 비롯해 2000년대 후반 이후 10년 이상 국내 최고의 타자 자리를 다툰 이대호와 김태균, 그리고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사상 최고의 선수로 거론되는 오승환과 정근우 등이 있고 1987년생들 중에는 메이저리그의 정상급 선발투수 류현진을 비롯해 강정호, 김현수 등 전현직 메이저리거들이 여럿 배출되었다.


▲ 1982년생 중에는 한국인 야수 최초의 메이저리거로서 한국야구사상 최고의 타자라 불리는 추신수를 비롯해 2000년대 후반 이후 10년 이상 국내 최고의 타자 자리를 다툰 이대호와 김태균, 그리고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사상 최고의 선수로 거론되는 오승환과 정근우 등이 있다. 사진은 추신수 선수. ⓒ SSG 랜더스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재능과 노력과 운이 모두 따라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뛰어난 선수들이 유독 같은 해에 배출된다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환경과 경험에 주목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1970년대 초반 출생자들 중 걸출한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은 1982년에 벌어졌던 두 가지 사건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 해 봄에는 프로야구가 시작되었고, 가을에는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대표팀이 최종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극적인 8회 말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해 온 나라를 들끓게 했다.

그 두 가지 사건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야구에 빠져들게 만들었고, 특히 1980년대 내내 전국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흔히 '찜뿌'라고도 불렸던, 주먹으로 고무공을 치며 노는 약식 야구 놀이로 뒤덮이게 했다. 그런 환경에서 좋은 운동신경을 가진 많은 아이들이 야구부에 들어갔고, 박찬호와 박재홍 역시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보통 구기종목의 선수들이 전문적으로 그 종목에 입문하는 시기는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 사이인 경우가 많은데, 1973년생들은 그 해에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1975년생들은 1학년이었다.

'약속의 8회'에 잉태된 70년대생들의 전설
'신인 3인방'에 열광했던 80년대생의 꿈


그렇다면 1980년대 출생자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1990년대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복원된 직선제 대통령 선거 등이 이어진 정치의 시대였던 1980년대 말에 프로야구는 잠시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고 정치와 경제 환경이 안정되면서 다시 한 번 부흥기를 맞았다. 1990년 처음 300만을 돌파한 프로야구의 관중은 3년만인 1993년 400만을 넘어섰고, 다시 2년 뒤인 1995년에는 500만 명에 도달했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그 시대의 프로야구는 절대강자 해태 타이거즈의 건재 속에서도 국내 최대의 시장인 서울과 부산이 치고 나가며 이끌었다. 신인 3인방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의 거침없는 질주 속에 야생마 이상훈과 천재 포수 김동수가 중심에 선 LG 트윈스가 선봉장 역할을 했다면 서울 라이벌 두산 베어스는 그 LG 트윈스와의 신인지명 주사위 게임에 번번이 패하는 불운 속에서도 연습생 출신 김상진과 김민호를 주축으로 절정의 해였던 1995년 한국시리즈의 최종 승자가 되면서 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무렵의 야구 열기가 서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염종석과 박정태를 필두로 임수혁, 마해영, 전준호, 공필성 등이 '화끈한 부산 야구'의 전형을 만들었던 롯데 자이언츠와 그 모든 거대한 태풍들을 종종 찻잔 속의 회오리로 만들어버리며 한 해 걸러 한 해 씩은 우승을 거르지 않던 선동열과 이종범의 여전히 막강한 해태 타이거즈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하고, 화려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꼴찌의 대명사 태평양 돌핀스 마저도 아름다운 추억 하나는 만들었을 만큼 역동적이었던 그 시기에 부산 수영초등학교에서는 외삼촌 박정태를 바라보며 꿈을 키운 추신수와 그 친구 이대호가, 천안 남산초등학교에서는 김태균 어린이가 야구부 유니폼을 받아 들었다. 이상훈과 김상진이 선발 맞대결을 벌일 때마다 잠실야구장이 터져나갈 듯 하던 1995년에는 류현진, 강정호, 김현수 어린이가 역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2000년대 중반부터 차례로 프로야구 무대에 올라 전설적인 이름을 남기게 되는 그 소년들이 태어나던 무렵 프로야구가 출범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나이에 야구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부모님들이 어느 만큼 야구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린이, 한국 야구 최대의 팬 집단으로 떠오르다

그렇다면 한국 야구가 처음 일본 야구에 일격을 가하며 아시아선수권 우승컵을 쟁취했던 1963년이나 니카라과에서 사상 첫 세계대회 우승을 달성했던 1977년은 어땠을까? 1963년을 전후해 야구에 입문했던 어린이들 중에는 1970년대 초반 고교야구의 열풍을 주도했던 남우식, 김봉연, 장효조 등이 있었고 1977년 세계제패의 소식에 열광하며 야구에 입문한 세대로는 박정태, 김기태, 정민태, 양준혁 같은 이들이 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이전 세대를 능가하는 뛰어난 선수들이 배출되었다는 점 외에도 그 수가 뚜렷이 많았고, 또 선수 만이 아닌 엄청난 규모의 또래 팬 집단과 함께 등장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차이를 낳은 중요한 요인 하나가 프로야구단들이 출범 초기에 공을 들인 어린이들을 향한 적극적인 투자, 특히 '어린이 회원' 제도였다.

1982년 프로야구 창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젊은이에게는 낭만을, 국민에게는 여가 선용을' 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중심적인 전략으로서 각 구단에 어린이회원 모집을 권유해 야구소비층의 세대적 확장을 꾀했다.

초등학생들은 연회비 5천 원을 내고 어린이회원에 가입하면 구단 점퍼와 모자, 구단 로고가 새겨진 각종 기념품, 팬북, 야구장에 들어갈 때 40%의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회원증 등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어린이 회원 모집은 대단한 관심을 모았는데, 무엇보다도 선물의 가치가 대충 계산해도 연회비의 두 배 이상은 될 정도로 푸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 연고 구단인 MBC 청룡의 경우 1만 명을 정원으로 책정하고 회원 모집을 시작하자마자 3만 여 명이 몰리면서 TV를 통한 공개추첨방송을 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린이회원에 가입시켜주겠다'며 회비 5천 원 씩을 뜯어내고 가로채는 사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할 정도였다.

또한 OB 베어스는 5만 명, 삼성 라이온즈는 7만 명의 어린이회원을 모집했는데, OB는 첫 시즌에 우승하자 5만 명의 회원에게 보낼 선물 값으로만 1억 5천만원을 추가로 집행했다. 원래는 야구용품을 보내려고 했지만 '공부와 연관된 것을 달라'는 부모들의 전화가 이어지자 '연필꽂이로 쓸 수 있다'는 명분으로 유리컵 세트를 보냈는데, '가입한 구단이 우승하면 추가 선물이 있다'는 사실은 채 굳어지지 않은 다른 구단 어린이회원들의 팬심에 동요를 일으키기도 했다.


▲ 어린이회원 견학 OB 베어스가 어린이회원들을 이천의 훈련장으로 초대했다. 간판선수 박철순이 입구에서 환영하고 있다. ⓒ 두산 베어스

하지만 어린이회원 선물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입는 것과 같은 디자인으로 제작된 모자와 점퍼였다. 오늘날에는 구단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구매한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가는 것이 흔한 일이지만, 1980년대에는 어린이회원에 가입 선물로 받는 것을 제외하면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구단의 모자와 점퍼를 입고 있다는 것은 그 구단의 어린이회원 가입자라는 의미였고, 그 팀의 열성적인 팬이라는 의미였다. 당시 초등학교 교실에는 어린이회원임을 과시하기 위해 매일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쓴 채 등교하는 아이들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국야구의 역사에서 어린이가 중심적인 팬 집단으로 대두한 것은 1982년 프로야구 창설 이후가 처음이었다. '아저씨들의 공간'이었던 야구장이 '가족의 공간'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 역시 그 때였다. 그 무렵 어린이 회원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쓰던 아이들은 이제 40대 후반을 넘어 50대로 접어들고 있고, 십 년에 한 번 쯤은 돌아오는 '위기의 시대'에도 여전히 저녁 6시 30분이 되면 어느 곳에서든 스마트폰으로 각 구장 점수판을 조회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역연고제가 창설 초기 프로야구의 빠른 흥행을 가능하게 했다면, 어린이회원 제도는 프로야구가 한 세대를 넘어 안정적으로 성장해갈 수 있었던 핵심적인 요인이 됐다. 고교야구와 실업야구가 가지지 못한 어린이 팬층을 확보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으며, 그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시간동안 프로야구도 함께 성장해갈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또 한 번의 절정기를 넘어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프로야구는 다시 한 세대 뒤를 바라보며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다. 어린이회원이 아니라도 점퍼와 모자를 얻을 수 있고 야구가 아니라도 영웅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많아진 시대. 심지어 초등학교 교실에서 야구 좋아하는 아이가 선망이 아닌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오늘날. 야구단은, 선수는, 앞 세대 야구팬들은 어린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주고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베풀어야 할지.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 어린이 팬들의 열광과 우려 어린이 회원 제도에 힘입어 프로야구 경기에 어린이 관중이 몰려들자 당대의 언론들은 여러 우려를 쏟아냈다. '동화를 읽을 시간도 없이 야구에 몰두한다'는 것과 '야간 경기 관전 후 귀가길 안전이 우려된다'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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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22년 7월 11일, 월 7: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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