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내가 알아서 잘 하겠다" 날선 신경전

(서울) 손병관 기자 (오마이뉴스) =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2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았다.

이 후보는 집권 가능성이 높은 제1야당의 대선후보이고 김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맞서 범여권의 결집을 촉구하는 '훈수'를 계속 해왔던 터라 두 사람의 이날 만남은 정치권의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는 것이 배석자들의 전언이지만, 대선이라는 정국 현안을 얘기할 때는 양자 간에 어색한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김대중: 금년 대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모범적인 대선이 되어야 한다.

이명박: 각하께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했으니 그런 점에서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나라당도 좀 도와달라.
김: (웃으면서) 한나라당이 너무 센데 (한나라당을 굳이) 도와줄 필요가 있겠냐?

이 후보는 "나는 호남 지역을 자주 가는데, 호남도 참 많이 변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한나라당이 너무 세다"는 전직 대통령의 말에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김: 이 후보의 (호남) 지지율이 높다고 신문에 났던데….
이: (여권) 후보가 아직 결정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이번에는 여야 간에 모범적인 정치로 정책 대결하는 대선이 됐으면 좋겠다.

김: 좋은 얘기다. 국민 수준이 그만큼 올라가고 있다.
이: 2002년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정치가 한 단계 성숙돼서 너무 각이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국민에 대한 서비스 경쟁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선거가 지역감정이 없어지는 선거 됐으면 한다.

"호남은 영남 대통령 뽑아" - "DJ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

김 전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호남은 이미 영남사람인 노무현 대통령을 뽑았다"고 말했지만 이 후보는 "그건 김 전 대통령 때문에 그렇게 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지난 대선에서 김심(金心)이 작용해 호남 사람들이 노 대통령에게 몰표를 던진 것이라는 뉘앙스의 말이었는데, 김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 경선이 매우 모범적이었는데, 본선도 모범적으로 치르고 싶다. 각하는 대통령을 하신 만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말아달라. 우리도 전직 대통령 모두를 잘 모시려고 김 전 대통령에게도 왔다"고 말했다.

자신이 한나라당 대선후보로는 이례적으로 범여권을 응원하는 전직 대통령에 대해 '각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깍듯이 예우를 하고 있음을 강조한 표현이었는데, 김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내가 알아서 잘 판단하겠다"고만 답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경선과 관련해 "금년은 굉장히 더웠는데 선거운동 하시느라고 힘들었겠다. (당내 갈등이) 아주 봉합이 잘된 것 같다"고 덕담을 했고, 이 후보는 "고생은 했지만, 박근혜 전 대표가 마무리를 잘 보여줘 잘 된 것 같다"고 화답했다.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낮은 단계'의 의견 접근을 이뤘다.

이 후보는 "6자 회담이 성공적으로 되어야 남북관계가 앞으로 술술 풀리게 될 것이다. 결국 제일 좋은 교류는 한국기업이 북한에 직접 투자하는 것인데, 핵 문제 해결이 전제"라고 말했고, 김 전 대통령은 "그렇다. 북한에는 중국기업이 들어가지 않나? 핵이 해결되면 다 될 것"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이 후보는 이어 "핵이 해결된 후 북한도 10년 안에 (1인당) 3천 달러의 소득을 얻도록 하는 게 내 구상이다. 핵문제 해결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데는 생각이 똑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통령측 핵심 인사는 "이 후보는 김 전 대통령과 자신의 대북정책이 똑같다고 몇 번이나 공감을 표시했고, 김 전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국민은 굉장히 좋은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고 밝혔다.

약 40분간 이어진 면담에는 김 전 대통령 측에서 박지원 비서실장, 이 후보 측에서는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과 임태희 후보 비서실장, 이동관 공보실장이 배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