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는 서양난의 자생력을 배워야

인생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대 수술을 받고 회복실에서 덩그머니 혼자 누워있다 한국 신문을 언뜻 읽은 적이 있다. 지금은 누구의 글인지, 제목도 내용도 기억할 수 없으나 '척박한 이민자의 삶'이란 귀절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미국을 풍요로운 땅, 기름진 땅, 혹은 대망의 꿈을 이룰 수 잇는 땅 등으로 표현하는데 그분은 왜 '척박한 땅'이라 하였을까. 어떤 의미에서 이 땅은 이민자에게 척박한 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척박한 땅이라 해서 정말 못사는 땅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집사람이 집에서 취미로 키우는 서양난 화분을 병실에 걸어놓고 간 것을 쳐다보면서 '자생'이란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세상 만물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였다. 서양난은 물을 자주 주면 공기층의 습기를 빨아들이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결국 죽는다고 한다. 수많은 서양난중에 어떤 종자는 뿌리가 한 점의 흙과 접촉하지 않고도 꽃을 피운다.

집사람이 몇년 전 집 앞 참나무에 서양난을 내어 놓을때 '정신이 이상해 진게 아닌가' 의심을 했었다. 저것을 적어도 20여불은 주고 사왔을 터인데 나무에 매달아 고사시키려는가? 그러나 금년봄에 그 서양란은 꽃을 피워 동네사람들이 구경하러 왔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정서적인 성숙도 등을 점검해 볼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대학에서 전공을 바꾸는일이 생겨도 충고를 해 줄 수 없어 모르는 척 해왔다. 이민이란 환경이 다른 곳으로 옮겨 놓은 나무와 같은 것이니, 뿌리를 깊이 내려 건강하게 살아 남으려면 자생능력을 갖게 해주는게 부모의 책임이라 생각했다. 척박한 외지에서 타인종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만 해 준다면 이민 1세대의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다.

네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던 날, 집사람은 생전 처음 술을 한 잔 마시고는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우리의 할 일은 다했다. 이제부터 잘 살고 못사는 것은 너희 몫이다. 엄마 아빠는 죽을때까지 너희들의 신세는 지지 않는다. 너희들은 눈도 귀도 입도 열려 있으니 세상속에 뛰어들어 살아 보아라. 세상은 만만치 않지만 그러나 노력한 만큼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라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5백 그루가 넘는 서양난을 자생하도록 키워온 집사람의 노력이 언뜻 보이는 순간이었다. / 송석춘 (올랜도 거주 동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