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결정... 수사경찰 가혹행위·고문 시인

(서울) 이철우 기자 (오마이뉴스)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송기인)'는 6일 '신귀영 일가 간첩사건'에 대해 "고문 등으로 허위자백을 받아 기소 및 유죄판결을 했다"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또한 "위법한 확정판결에 대해서는 재심 등 상응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국가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찰 "간첩사건은 강압수사가 관례"

이번 결정에 따르면, 경찰은 조총련 간부로 단정한 신아무개씨에 대해 내사를 벌이다가 증거를 찾지 못하자 치안본부장이 승인한 공작계획에 따라 신귀영씨 등 친지 4명을 강제연행해 수사하면서 가혹행위를 했다.

진실화해위는 직접 수사했던 전직 경찰관 6명이 대체로 불법감금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전했다.

특히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전직 경사는 "대공 사건은 연행 순간부터 불법적인 방법이 동원됐다"며 "구속영장도 발부받지 않고 장기간 구속수사를 진행했고, 신귀영 씨 사건도 2달 이상 구속수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80년대는 간첩사건하면 강압수사가 관례였고 피의자들이 조사실에 들어오면 몽둥이 찜질이 기본이었다"며 "물고문·통닭구이 등도 했고, 이 사건을 수사할 때도 모든 수사관들이 강압수사를 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결과, 경찰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조총련 간부'로 지목된 신아무개를 전혀 조사한 바 없으며, 신아무개씨가 조총련 간부라는 것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신아무개씨가 조총련에 속해있지만 단체 간부를 지낸 적은 없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사건판결문에서 나온 간첩활동 관련 서점 위치, 버스노선, 전화번호부 배부처 등도 사실과 불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며 "고문 등으로 허위진술을 하여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1980년대는 간첩 사건 대다수를 차지하던 남파 간첩이 급격히 줄고, 월북친척·납북귀환어부·외국방문자·재일동포 관련 간첩사건이 양산되는 특징을 띈다"며 " 이 시기 간첩 사건 피해자들은 인적·물적 기반이 취약한 소수자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로 반공정책의 희생양이 되기 쉬었다"고 밝혔다.

앞뒤 안 맞는 판결문, 그러나 재심은 '아직'

이 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뒤 민주화 열기가 확산되던 지난 80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조작된 간첩사건의 하나.

당시 외항 선원이던 신귀영 씨 등 4명은 60~70년대에 일본 항구에서 조총련계 친지를 만났다는 것을 이유로 강제연행됐다.

이들은 결국 "재일교포이며 조총련 간부로 지목된 신아무개씨의 지령을 받아 65년에서 79년까지 군사기밀을 탐지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각각 징역·자격정치 3~15년형을 선고받았다. 특히 신귀영씨는 15년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신귀영씨는 지난 95년 재심청구를 하여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에서 잇따라 재심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고문으로 허위진술 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재심결정을 뒤집었다.

신귀영씨 "재심청구해 고문 경찰관 죄 묻겠다"

한편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신귀영(71)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진실은 언젠가 꼭 밝혀지지만 그것이 일찍 밝혀지느냐, 아니면 늦게 밝혀지느냐의 문제가 있다"며 "1980년 경찰에 끌려가 15년 3개월 21일만에 자유의 몸이 됐는데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져 기쁘지만 허무하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내 혼자 애들 셋 키우랴, 구명운동하랴 온갖 고생을 다했기 때문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가슴 속에 항상 묻어두고 산다"며 힘든 시절을 회상했다.

신씨는 "대공분실에서 어찌나 몽둥이로 맞고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는지 지금도 가끔 악몽을 꾸고 후유증 때문에 걷기도 힘이 든다"며 "출소 후 억울함을 풀려고 2차례나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속이 탔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문을 당할 때는 경찰관이 사람으로 안보이고 작은 짐승을 잡아먹으려는 큰 짐승이자 저승사자로 보였었다"며 "이번에 진실화해위에 스스로 고문을 했다고 인정한 경찰관은 용서하고 만나볼 생각도 있지만 나머지 경찰관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신씨는 "아직도 진실규명 결정이 믿어지지 않지만 마음을 다잡아 이달 중에는 법원에 세번째로 재심청구를 하겠다"며 "법대로만 재판이 진행된다면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믿고, 우리 일가족을 고문했던 경찰관들을 법정에 세워 끝까지 죄를 묻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