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집에 다녀오신 어머니, 시골에서 기력 찾다

"앗다 죽것더라, 그랑께 밖을 내다 보믄 나가고는 싶은디, 나가믄 들올 수가 있어야재, 느그 성 나가 불믄 영락없이 징역을 살았어야, 참말로 죽겄더라, 석 달 동안 아파트에 꽉 갇혀갔고 꼼짝도 못했다. 언능 시골로 가자."

올해 85세인 어머니는 서울에 살고 있는 큰아들 집에서 잠시 계셨다. 어머니는 설을 쇠기 위해 올라간 막내아들인 내게 도저히 서울에서는 못 살겠다고 당장 시골로 내려가자고 당신께서 앞장을 섰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서울 생활동안 건강이 나빠 밤에도 잠을 잘 수 없었다며 시골로 내려오니 잠도 잘 오고 살 것 같다고 하셨다. 평생 농촌을 떠나지 않고 살았던 당신이 서울 생활에 적응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큰형께서 어머니를 모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기에 만류하지 않았었다.

시골로 내려오신 어머니는 서울에서 못 잔 잠을 주무시는지 며칠동안 잠을 주무셨고, 어느 날 기력을 찾으셨는지 병원과 아파트 노인당을 오가며 일상의 생활로 돌아왔다.

"앗다 살 것 써야, 그란디 으째 서울서는 그라고 아팠단야, 그랑께 서울서 그라고 생각했다. 인자 죽을랑께 이라고 아프제, 죽을라믄 시골 가서 죽어야제 그라고 너 오기만을 무지하게 기다렸어야."

팔십 노모와 함께 마늘밭에 갔다

아내는 어머니와 함께 고향마을 작은 밭에 마늘을 심었다. 나는 농사를 지으면 안 된다며 반대를 했지만 아내와 어머니는 고향마을을 찾아가 지난 가을 마늘을 심고 돌아왔었다. 어머니는 서울에 계시면서도 당신이 심어 놓은 마늘이 잘 자라는지 자꾸 전화를 하여 물으셨고, 마늘밭에 거름을 주어야 한다고 하여 아내와 나는 농협에서 요소 한 포대를 사서 마늘 밭에 뿌렸다.

오늘 예전의 기력을 찾으신 어머니께 학송 밭에 가시자고 운을 떼니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뜻이 고향 마을에 갈 준비를 하셨다. 지난 가을 마늘을 심을 때 고향 선배가 퇴비를 가져다주고 돈도 받지 않았다며 뭔가 인사를 해야 한다며, 큰형님이 주신 옷가지를 챙겨 앞장을 섰다.

어머니가 그토록 궁금해 하셨던 마늘밭으로 갔다. 어머니는 마늘밭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시며 우리 부부가 마늘밭을 잘 가꾸어 놨는지 살피시더니 "마늘이 별로 안 좋다. 으째 저 우에 마늘은 저라고 죽었다냐, 내가 있었으믄 다시 심었을 건디, 서울간 통에 저라고 돼 부렀구나" 하신다. 매년 큰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햇빛이 잘 비추지 않은 마늘밭 귀퉁이를 보시고 어머니는 한말씀을 하셨다.

"아야 마늘밭에 저라고 갓이 막 커블면 마늘이 채여서 못 큰다. 뽑아 부러라" 하시더니 당신께서 직접 파랗게 자란 갓을 맨손으로 뽑기 시작했다. 그러나 뿌리를 탄탄히 내린 갓은 좀처럼 뽑히지 않으려고 버티는지 어머니가 그만 엉덩방아를 찍고 뒤로 넘어졌다.

"앗다 인자 일 못 하겄어야."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어머니 곁으로 달려갔다. "어머니 그냥 놔 두시란께요, 옛날처럼 그렇게 몸을 쓰시면 안 된당께요." 그러나 어머니는 아내를 믿을 수 없었는지 놔두셨던 연장들을 하나씩 챙겨 보며, "여그따 놔 두믄 안 되겄어야, 집으로 가져가자" 하신다.

"농사는 아무나 진다냐"

"저놈의 나무를 죽여야 하는디." 어머니는 밭 옆에 서있는 큰 소나무를 향해 말씀을 했다. "엄니 뭔 소리여라." "저놈의 소나무 땜시 마늘밭이 저라고 힘아리가 없냐." "앗다 그란다고 나무를 죽여라, 저놈도 살라고 나왔는디, 냅둬부시오, 마늘이 좀 안 되믄 어쩐다요." "아야 그랑께 니놈은 농사를 못 져야, 농사는 아무나 진다냐" 혀를 차신다.

옛집에 도착한 어머니는 이곳저곳을 살폈다. "서울선 다시 못 오고 죽을란가 했는디, 이라고 집엘 왔네" 하신다. 주인이 살지 않은 빈 집은 아버지께서 손수 만들었던 돼지막사가 반쯤 쓰러져 흉물스럽게 놓여져 있었다. 그런 돼지막사를 보니 3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돼지막사를 정리하고 엉망이 된 마당을 청소하는 동안 어머니는 동네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다.

"앗다 아짐 오랜만에 왔소." 이주일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이웃의 만산아짐이 어머님을 만나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짐 으짜든지 건강하게 오래 사시오, 보내고 본께 그래도 산사람은 살 것어라, 만식이가 엄니 혼자 남았다고, 골목길에다 등도 달아주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갔어라, 죽은 사람만 불쌍하제." 어머니는 그동안 서울에 갔었다며 서울에서 무척 답답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나이가 들수록 노인들은 시골 살기를 갈망한다. 어머니도 서울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늘 서울에 왔으면 하지만 시골을 고집하셨다. 어머니가 평생 살았던 집에서 옛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며 즐거워하시는 걸 보니 어머님과 함께 옛집을 자주 찾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돌아오는 길에 이웃에 살며 어머니에게 늘 고마웠던 해산 아짐댁에 들렀다. / 마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