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방북 연기, 북 소극적 태도와 미사일 위기 겹쳐... "DJ 카드 버리기 쉽지 않아"

27일로 예정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김 전 대통령 방북협의를 위한 대북 실무접촉 수석대표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돌출 상황 때문에 지난 5월에 합의가 됐던 6월 말 방북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며 방북 연기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돌출 상황이란, 갑자기 발생한 북한의 미사일(혹은 인공위성) 발사 움직임을 말한다.

북한의 소극적 태도에 미사일 위기 겹쳐

방북 일정을 1주일 남긴 상황에서 두 가지 변수가 김 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우선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가 김 전 대통령의 방북 연기 결정을 불렀다. 남북한 양측은 그동안 두 차례(5월 16∼17일, 5월 29일) 실무 접촉을 통해 6월 하순 방북(3박 4일)에 의견 접근을 보았으나, 구체적인 방북 경로와 규모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지 못했다.

남북한이 방북 경로와 규모를 합의할 경우 방북을 준비하는데 최소한 물리적으로 1주일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김 전 대통령 측이 마지노선으로 잡아 놓았던 20일까지 3차 실무 접촉이 이뤄지지 않자 방북 연기라는 최종 결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결정적인 변수는 지난주부터 에스컬레이트된 이른바 '미사일 위기'였다. 미사일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김 전 대통령을 예방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워싱턴의 생각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정세현 대표와 정부 당국자 그리고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3인은 '마지노선'으로 정한 20일 오후 김대중도서관에 모여 '미사일 위기'에 대한 정세 판단과 함께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으로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발생한 현 시점에서의 방북은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김 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번 방북 계획을 포기하면서 상당히 낙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방북 계획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은 21일 자신의 방북 연기 입장을 공식 발표하기 위해 회견장으로 떠나는 정세현 전 장관과 최경환 비서관에게 "기자들에게 잘 설명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정세현 "비가 오면 햇볕도 나오는 것"

실제로 정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방북 초청은 여전히 유효하고 김 전 대통령께서도 여러가지 준비를 많이 해오셨기 때문에 실무 접촉(3차)을 위한 날짜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비가 오면 햇볕도 나오는 것"이라고 말해 비(미사일 위기)가 개면 실무 접촉을 재개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김 전 대통령 측 실무 접촉 대표인 최경환 비서관도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현 시점에서의 방북이 부적절하다는 것이지 그(연기) 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혀 낙관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김 전 대통령도 지난 6월 8일 6·15 공동선언 6주년 기념 만찬행사에서 "현재의 분위기는 전(1차방북 때) 보다 안좋다"면서도 "(이번 방북이) 민족의 장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마지막 봉사의 기회이자 오늘날 나를 키워주고 국회의원과 대통령 그리고 노벨평화상까지 안겨준 국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강한 의욕을 보였다.

한편 한 대북 소식통은 "현재의 경색 분위기는 북한 군부의 입김이 강한 탓이 크다"고 전제하고 "군부가 경의선 열차 방북을 강하게 반대해 육로 방북으로 조율되었는데 미사일 위기가 겹치는 바람에 방북이 무산되었다"면서 "그러나 북측이 'DJ 카드'를 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조성되는 '미사일 위기'는 근본적으로 미국의 대북 압박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대미용'이지, '대남용'이 아니기 때문에 북측은 조만간 DJ 방북 카드를 다시 꺼내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 김 당 기자(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