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평양 동행취재: 손학규 도지사 북한에서 '모내기 전투' 참여

[평양 6월3일발 조선중앙통신] 손학규 도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남조선 경기도대표단이 3일 평양에 도착하였다. 비행장에서 정덕기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부회장 등 관계부문 일군들이 대표단을 맞이하였다. 녀성근로자가 도지사에게 꽃다발을 주었다.

북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로동신문> 4일자 4면 하단에 실린 기사다. 기사는 더 이어지지 않는다. 경기도 대표단이 평양에 왜 왔는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게 될 예정인지 등에 대한 내용은 없다. 다만 전날(3일) 손 지사가 이끌고 있는 남북교류협력대표단 100여명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찍은 기념사진만 눈에 띌 뿐이다.

사진 맨 뒷줄에 기자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고 한쪽에 비켜서 있다가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빨리들 서시라우요!"라는 북측 사진기자의 불호령에 놀라 얼떨결에 서고 말았다.

어쨌든 머리털 나고 처음 북한 땅을 밟아 본 기자로서는 '북측 선생'(그들은 '북한'이 아닌 '북측'을, '～씨'가 아닌 '선생'을 쓴다)의 호통 소리마저도 마냥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북측은 지금 '모내기 전투' 중

경기도 대표단은 지난 3일 오전 인천에서 아시아나항공 전세기를 타고 50여분만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은 간단했다. 비행기 문이 열린 뒤 남측이 미리 보낸 사진과 실제 얼굴을 대조해 보는 것이 전부였다. 대표단을 '특별 대우'하기 위한 이례적 조치라는 게 경기도측 설명이다.

열여덟 계단의 비행기 트랩을 내려와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6년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려 첫 발을 내디딘 곳이기도 하다. 그 때 김 전 대통령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대표단을 태운 차량은 평양-순안간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띄엄띄엄 나타나는 북측 차량 탓에 왕복 4차로는 시원하게 뻥 뚫려 있었다. 도로 주변 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한 논에 수십명씩 일렬로 늘어서서 손으로 모를 심고 있었다.

"요즘은 전 인민이 모내기에 총동원되고 있습네다."

북측 민화협 소속인 김 선생의 설명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군인, 학생, 직장인 등 전 인민이 모내기에 투입되는 '모내기 전투'를 벌이고 있다.

기자들이 탄 소형버스에는 김 선생 외에 이 선생, 또 다른 김 선생이 탑승해 기자들을 안내(감독)하는 역할을 맡았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허름한 주택과 주민들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집어들자, "이동 중인 차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돼 있습네다"라며 즉각 경고음을 울린다.

대표단을 태운 차량은 이미 평양 시내에 진입했고, 막 김일성종합대학을 좌측으로 끼고 돌고 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싫은 소리부터 한 것이 안됐던지, 김 선생이 기자들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KBS, <한겨레> 조사를 봤는데, 서울시장 후보 오세훈의 지지율이 몇 퍼센트까지 올라섰습네까? 5월 31일 전에 보니까 강금실 후보를 월등히 앞섰더랬지요? 대통령 후보로는 박근혜 대표가 가장 앞섰고, 그 다음이…, 4등은 정동영 의장 맞지 않습네까? 그렇지요?"

북에서 '간첩'으로 몰릴 뻔 하다

어떻게 알았을까? 차량이 9·9절(로동당 창당일) 거리를 지나고 있다는 김 선생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곁에 바짝 붙어 '이번에 남측에서 실시된 지방선거 결과도 알고 있냐?'고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답변이 술술 나온다.

"(광역단체장 선거결과는) 12대 2대 1대 1이 나오지 않았습네까? 전라북도 도지사는 열린우리당이 됐고, 민주당이 2곳이고, 제주도는 무소속이고, 어떻습네까? 맞지요?"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남측의 신문을 봤느냐고? 돌아온 답변은 "뭐 그런 것까지 알려고 그럽네까? 민화협 사업하려면 그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네까?"였다. 한 발 더 나간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았다', '한나라당은 어부지리로 된 게 많다' 그렇게 나오지 않았습네까? 인민들의 평가는 정확한 것입네다."

멀찌감치 피라미드 모양의 유경호텔 건축 현장과 돔 모양의 '정주영 체육관'이 보였다. 내친 김에 질문을 하나 더 해봤다. '북측에서는 남측의 지방선거 결과를 어떻게 봅니까?'

"그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네까? 그것을 말하면 내정간섭인데. 고저 이북은 이북대로, 남측은 남측대로 자기 할 일 하면서리…." 답변을 하던 김 선생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되묻는다. "그런데 혹시 그것에 대한 우리측의 반향을 알아오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왔습네까? 그렇습네까? 아니지요? 임무를 부여받고 온 것이 아니지요?"

너무나 진지하게 물어봐 질문했던 기자가 오히려 당황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는 기자의 답변을 몇 차례 더 확인하고 나서야 김 선생은 빙긋이 웃으며 평양 안내를 계속했다.

인민문화궁전 앞에 도착해 잠시 쉬다가 우연히 이 선생과도 얘기를 나누게 됐다. 이 선생은 차 안에서 기자들의 촬영을 제지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옛날보다는 남측 기자들이 까달구 붙는 게 없어졌시요"라며 살짝 웃어 보인다. 까달구 붙는다고? '까다롭게 군다'의 북측 표현이다.

과거에는 남측 기자들이 평양에 오면 일부러 가난하고 못사는 모습만 취재를 해서 남측으로 돌아가 보도한다는 것이다. 이 선생은 "평양이라고 모두 좋을 수만은 없지 않겠습네까? 좋은 것만 촬영하기도 부족할텐데…"라며 "이제는 그런 것 찍어가도 (남측에서) 안 통할 겁네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당곡리 논에 심어진 '남북협력'

한강에 있는 밤섬처럼, 양각도 호텔도 대동강 한 복판에 서 있다. 호텔에서 식사를 마친 대표단은 다시 버스를 이용해 시범 모내기를 할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멀찌감치 서 있던 방송차량에서 북한가요 '반갑습니다'가 흘러나왔다.

당곡리 들판에는 경기도와 함께 남북협력 사업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는 100ha(30만평) 넓이의 논이 펼쳐져 있었다. 김영일 당곡리 인민위원장(남측의 이장 격)은 대표단을 마을에서 400여미터 떨어진 논으로 안내했다. 대표단을 위해 모내기를 하지 않고 남겨둔 1000여평 정도의 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밀짚모자를 쓴 손학규 지사가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올리고 앞장섰다. 80여명의 대표단도 손 지사를 따라 논으로 들어갔고, 못줄 앞에 나란히 서서 한 포기 한 포기 모를 심기 시작했다.

남측의 광역자치단체장, 그것도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이 공무원 등과 함께 북측 논에서 모를 심는 장면은 분단 이후 처음이라는 점 말고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20여분이나 지났을까? 아직 심어야 할 모가 많이 남아 있었지만, 대표단은 논을 빠져 나왔다. 써레질되어 있던 모를 전부 심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모를 내려놓은 손 지사가 이번에는 이앙기에 올라타고 논을 질주했다. 경기도에서 당곡리에 지원해준 이앙기다. 손으로 모내기를 하는 다른 마을과 달리 당곡리는 이 이앙기를 이용해 대부분의 모내기를 마친 상태다.

경기도는 농업기술원 전문가들을 교대로 상주시키며 당곡리 주민들에게 볍씨 싹을 틔우고 모종 기르는 법을 전수했다. 북측은 땅과 인력을 제공했다. 논에는 남측의 '오대벼'와 북측의 '평도15호'가 절반씩 심어졌다.

김영일 인민위원장은 "말도 통하고 뜻도 통하는 한 민족이라 쉽게 친해지고 좋은 기술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학규 지사는 "이렇게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대표단이 마을을 빠져나올 때는 북한가요 '다시 만납시다'가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조선일보> 기자와 <평양신문> 기자의 술 대결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공연을 관람한 뒤 호텔로 돌아온 대표단은 북측 민화협에서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기자들이 따로 앉은 테이블에 김 선생이 합석했다. 우연치 않게 김 선생 오른편에 <조선일보> 기자가 앉았다.

낮에 점심식사를 하면서 마셨던 '대동강 맥주'는 남측의 카스와 맛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녁 만찬에 나온 '룡성 맥주'는 하이트와 맛이 비슷하다. "대동강 맥주는 가스를 주입시킨 것이고, 룡성 맥주는 가스를 주입시키지 않은 것입네다." 김 선생이 두 맥주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해줬다.

술이 한 잔씩 돌자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김 선생이 옆에 앉은 <조선일보> 기자에게 술을 권하더니,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붓기 시작했다. "<조선일보>하고 <평양신문>하고 누가 더 (술이) 센가 한번 해봅세다." <평양신문>은 실제 북측에 존재하는 신문이 아니라 김 선생이 즉석에서 만들어낸 신문이다. <조선일보> 기자도 물러서지 않았다.

김 선생은 "<조선일보>가 반민족적 신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네다. 그런데 거짓말을 많이 합네다. 진실만을 보도해주시라요"라며 "쭉 냅시다"라고 제안했다. '원샷!'을 하라는 말이다. 손 지사가 기자들이 앉은 테이블을 찾아온 바람에 <조선일보>와 <평양신문>간의 술 대결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만찬이 끝나고 호텔 밖으로 나왔더니, 언제 나왔는지 김 선생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남측에서 보수세력이 더 세지고 있는 것 압네다. 우리는 열린우리당이니 한나라당이니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습네다. 북남간에 교류협력이 잘 되어야 하지 않겠습네까? 선구자인 기자 양반들이 보도를 진실되게 잘 해줘야 합네다."

김 선생은 "내일 일정에 대해 토론을 한 번 해봅시다"라며 다른 선생들을 데리고 호텔 방으로 올라갔다. 처음 바라보는 평양의 밤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 최경준 기자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