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사고로 죽은 친구 가족 이야기

중환자실 문 밖의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침통한 얼굴로 앉아 있었습니다. 가끔 화장실에 가거나 담배를 피우려고 일어서기도 했지만 자리를 뜰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환'이와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하루 전날, 우리는 환이의 엄마와도 작별을 했습니다. 환이의 작은 누나는 사고가 나면서 바로 절명했고, 큰 누나는 크게 다쳤습니다. 그날은 환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환이네는 보통 주말이면 시골 할머니댁에 자주 갔습니다. 그날은 환이의 아빠가 일 때문에 서울에 있었고 환이 엄마는 세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3월이 시작되는 첫날의 늦은 오후, 환이는 다음날의 입학식을 기다리고 있었을 테지요. 집에 가면 새로 준비한 책가방과 학용품이 녀석을 흐뭇하게 하고, 자기 키만한 책가방을 어깨에 메보며 앞니 빠진 합죽한 입으로 씨-익 어색하게 웃었을 환이. 사람들은 환이의 그 모습을 이제 마음으로만 그려볼 뿐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늘 똑같았고 차창 밖의 풍경은 이제 봄기운을 타고 스멀거렸습니다. 세 남매는 저들끼리 조잘대며 깔깔거리다 슬슬 졸음이 온다 싶었을까요. 그런 찰나, 정말이지 컴퓨터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드라마 같은 데서나 나옴 직한 광경이 순식간에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평화롭게 국도를 달리던 환이네 차 앞으로 방어할 틈도 없이 중앙선을 넘어 마구 달려온 자동차는 '악마'였습니다.

숱하게 들어왔던 '음주운전' 사고였습니다. 게다가 그 운전자는 무면허에 보험도 들지 않았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자동차도 남에게 빌린 것이었습니다. 자동차를 빌리고 술을 먹었는지, 술을 먹고 자동차를 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자고 그 사람은 술을 먹고 운전을 했을까요?

아무리 실제상황이라도 사건 사고를 전해주는 '뉴스'를 통해 듣거나 보는 건,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이상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그런 일들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뉴스는 전달하기에 바쁩니다. 우리는 잠시 보고 들었던 뉴스를 끄고 나면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피해를 주거나 당한 사람들은 김아무개씨, 이아무개씨 등으로 불리고, 환이네 엄마도 O 아무개씨로 뉴스 한 편에 머물렀지만, 설마 환이네일 줄은 몰랐습니다.

사고가 나기 이틀 전에는, 친구의 승진 턱을 내는 점심모임이 있었습니다. 미리 약속이 된 것이었고 대전과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거의 빠짐없이 모여들었습니다.

환이 엄마는 환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갈 땐데도 한글을 다 못 깨쳤다고 걱정했습니다. 자기 이름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 이름에 들어간 한글은 어떻게 이해를 했는지 그 글자는 확실하게 안다고 하자, 사람들이 다들 자기 아이의 경우를 들어가며 다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날은 고등학생과 중학생, 초등학생, 그리고 늦둥이로 이제 세 살배기가 된 아이까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저마다 또래들끼리 한 상을 차지하고 즐겁게 먹고 마셨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질 때는 누군가 따뜻한 봄날에 또 만나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래왔고 그 친구들 모두 다시 만날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소식에 펄떡거리는 가슴으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불현듯 환이 엄마와 나누던 그때의 얘기는 우리에게 유언으로 다가오고, 세 남매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있는 모습들은 특별히 행복한 순간으로 떠오릅니다. 그 행복 어디에 이런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는지 미련한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중환자실 문이 급하게 열리고 환이의 상태를 알리는 간호사의 말에 잠자코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습니다. 환이의 아빠가 들어가고 이어서 환희의 친척들과 우리가 뒤를 따랐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환이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리고 발가락도 따뜻했는데, 잠에 곯아떨어진 것 같은 환이의 여린 얼굴이 창백합니다.

"아니, 한 번 오시지, 왜 자꾸 전화만 하세요."

전화를 해서 자기 엄마를 바꿔달라고 하면 환이란 녀석은 꼭 이렇게 말했습니다. 녀석의 능청스러운 말이 금방이라도 들려올 듯합니다. 그때 나는 정말 전화만 하지 말고 한 번 갔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환이를 빙 둘러 서 있는 사람들은 환이의 숨소리가 띄엄띄엄 불규칙한 간격으로 벌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숨죽여 흐느꼈습니다. 환이의 아빠는 환이와 얼굴을 부딪치며 속삭입니다. 새끼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지키는 아비에게 답하듯 환이의 표정은 순한 아기 같습니다. 잠시 후 환이의 외삼촌이 환이의 살짝 떠있는 눈을 쓸어주었습니다. 환이의 고모가 휘청하며 울음에 절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환이야. 엄마랑 잘 가거라…."

세 사람의 영정은 환이네 거실 벽에 걸렸던 가족 사진입니다. 하얀 국화꽃 안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은 너무나 밝아 서러워 보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환이네 세 식구는 친척들과 동료, 친구들과 함께 화장터로 향했습니다.

가파른 산 중턱의 화장터에 이르자 바람이 쌀쌀합니다. 한겨울 바람처럼 윙윙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처럼 들립니다. 예기치 않은 한순간의 사고가 이미 고인이 된 세 식구는 물론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원통하고 절통합니다.

환이의 엄마와 누나가 화장장으로 들어가고 난 다음, 우리는 흰 장갑을 나눠 끼며 검자주빛 융단에 덮여있는 환이의 관을 운구했습니다. 세차게 불던 바람이 점점 멎고 사람들은 무심한 풍경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이제 다시 이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환이네 세 식구, 그 친근한 얼굴과 웃음소리, 함께 했던 시간은 이제 우리 기억 속에서만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는 순간, 남아서 살아가야 할 환이네 두 식구가 있었습니다. 환이의 큰 누나와 아빠입니다. 차츰 의식이 회복되면서 그때를 기억하는 환이의 큰 누나는 아직 말을 못하고, 불안정한 눈으로 묻습니다.

"엄마와 동생들은 지금 어디 있어요?"

우리는 어떻게 그 아이를 만나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