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이라는 이름의 '침묵', '지향'이라는 이름의 '편향'… 그 사이에서

(올랜도) 김명곤 기자 = "아무개 기자는 정치 편향적이야." 혹은 "저 기자는 너무 줏대가 없어."

언론계 안팎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전자는 기자가 특정 이념이나 진영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이고, 후자는 스스로의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무색무취하다는 지적이다. 얼핏 상반된 평가처럼 보이지만, 이 두 가지 모두 언론인의 '가치관'에 대한 오해와 기대가 뒤섞여 있다.

전자의 비판은 언론인의 '가치 지향적 보도'를 정치적 편향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될 수 있다. 반면 후자의 지적은 기자의 '가치 중립적 태도'를 무기력하거나 소신 없는 태도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연 언론은 언제나 완전히 중립적일 수 있을까? 혹은 특정 가치를 드러내는 보도는 곧 편향된 보도일까?

'가치 지향'과 '가치 중립'이라는 두 축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이 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전달할 것인가를 둘러싼 깊은 고민과 연결돼 있다.

언론의 '객관성'은 흔히 '양쪽 말을 다 들었다'거나 '사실만 썼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이해되지만, 실제 언론 보도는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사안을 보도할지, 어떤 표현을 쓸지, 어떤 사진을 배치할지 모두 기자의 판단이 반영된다. 이 판단의 바탕에는 항상 크고 작은 가치관이 작용한다.

전통적 객관성의 이상과 학자들의 접근

전통 저널리즘에서 '객관성(objectivity)'은 언론의 핵심 규범으로 자리 잡아 왔다.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고, 기자 개인의 감정이나 판단을 배제한 채 정보를 전달한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가치 중립'은 특히 20세기 미국 저널리즘에서 신뢰성과 전문성의 기반으로 강조됐다.

미국 언론학자 마이클 셔드슨은 <뉴스의 발견: 미국 신문의 사회사(Discovering the News, 1978)>에서 "객관성에 대한 믿음은 '사실'에 대한 신념, '가치'에 대한 불신, 그리고 이 둘의 분리를 향한 헌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객관성이 단순한 취재 방법이 아니라, 언론이 신뢰를 얻기 위해 스스로 만든 사회적 장치라고 본다.

또한 언론학자 월터 리프먼은 <여론(Public Opinion, 1922)>이란 고전적 저작을 통해 언론은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복잡한 현실을 해석하는 '인식의 틀'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닌, 사실에 대한 해석이 여론을 만든다"고 지적하며, 기자가 정보의 해석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객관성 비판과 새로운 이론

하지만 객관성이 과연 완전히 구현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어떤 기사를 쓸지, 어떤 순서로 보도할지, 어떤 제목을 달지 같은 편집 결정들은 이미 그 자체로 '가치 개입'을 포함한다. 즉, 보도에서 완전한 가치 중립은 이상일 뿐, 현실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목표다.

스티븐 J. A. 워드는 <저널리즘 윤리의 발명(The Invention of Journalism Ethics, 2015)>에서 '실용적 객관성(pragmatic objectivity)' 개념을 제안했다. 그는 <인간적 얼굴을 한 객관성(Pragmatic News Objectivity, 1999)>에서 "객관성은 절대적 중립이 아니라, 정당한 사실 검증과 균형 감각, 다양한 시각을 수용하는 자세"라고 설명한다.

워드의 주장은 '객관성=중립'이라는 오랜 통념을 비판하고, 기자도 적극적인 판단과 해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단, 이 해석이 독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실 확인과 가치 판단의 정당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가치 지향 저널리즘의 확대

1960~70년대 이후 등장한 옹호 저널리즘(advocacy journalism) 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인권, 소수자, 기후 위기, 사회적 약자 등 특정한 공공 가치에 기반해 보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편향과는 다르며, 오히려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식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시어도어 L. 글래서는 <양심의 수호자들: 탐사 저널리즘과 공적 덕성(Custodians of Conscience, 1998)>에서 "기자가 철저히 중립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대신 공공의 도덕적 가치에 기반해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옹호 저널리즘은 객관성과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공공의 정의 실현이라는 더 넓은 객관성 개념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자가 누구의 편을 드느냐보다, 어떤 원칙에 따라 누구를 위해 보도하느냐이다.

중요한 것은 '가치의 방향'과 '투명성'

결국 언론이 가치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가치에 기반해 보도하는가와 그 기준이 독자에게 얼마나 명확하게 전달되는가가 핵심이다. 언론은 정치적 중립이 아닌 '공적 신뢰'를 기반으로 삼아야 하며, 이는 선택의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진보냐 보수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론이 추구하는 가치가 '사익'이 아닌 '공익'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다. 최근 한국 언론계에서 보수의 대부로 알려진 조모 원로 기자와 정 모 기자가 전통적 진보층의 신뢰를 쌓는 이유이기도 하다. '편향적'이라는 낙인과 '줏대 없다'는 비난 사이에서 언론은 단순한 이미지보다 깊이 있는 자기 성찰을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사와 콘텐츠가 쏟아진다. 언론이 어디에 서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기자가 자신의 보도가 어떤 가치관과 판단에 기반했는지를 독자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저널리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