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캄보디아가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하나하나는 모두가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이다. 감금과 폭행과 고문은 그 일의 기본이다. 손가락을 자르거나 안구를 적출하는 등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는 말이 필요 없다. 요구대로 안 하면 손가락을 자른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산 채로 눈을 뽑아낸다. 이런 고문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곳에서 도덕이나 신체의 자유 따위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만다. 한 마디로 인간이 인간인 한 폭력에 저항할 수 없다. 인류 역사는 바로 그러한 폭력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누가 가장 큰 힘을 가지는가. 이것이 역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며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러한 폭력이 항상 평화라는 옷을 입는다는 사실이다. 폭력은 결코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 폭력은 언제나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운다. 항상 누군가의 ‘탓’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 이유가 돈이지만 노골적으로 돈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돈을 대신하는 평화가 폭력의 이유가 된다. 그런 경우의 평화가 내세우는 것은 대부분 인습적 지혜를 따르는 것으로 그것은 질서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말하는 질서는 곧 기득권을 의미한다. 그래서 힘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평화를 이유로 정당하게 폭력을 행사한다.

작금의 트럼프 정권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핵무기 전쟁이 아닌 관세 전쟁을 일으켰다. 그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인 노골적인 착취행위다. 그럼에도 누구도 그러한 그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더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런 그가 끊임없이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벨상 수상을 결정하는 노벨위원회가 분명히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곳이 인습적 지혜를 무시하는 곳도 아니기에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여전히 열려 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폭력이 항상 평화의 옷을 입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가 이 사실에서 명심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폭력으로 이루어지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 ‘폭력의 옷’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폭력의 옷’으로서의 평화는 대상을 달리하여 이어진다.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예수의 위대성을 발견한다.

예수는 체제전복적인 사상을 체제전복적인 방식으로 가르치고 그것을 스스로 실천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십자가에 달림으로 그 일에서 실패했다. 십자가는 분명 실패의 상징이다. 그것도 가장 비참한 실패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성서는 그 사실을 승리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셔서, 뭇 사람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골 2:15)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승리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폭력으로 이루어지는 질서인 평화를 평화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폭력으로 이루어지는 평화를 평화로 이해한다. 비폭력으로 이루는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현실에서는 폭력을 추구한다. 나는 비폭력 평화를 주장하는 베리건 신부가 비행장의 담을 넘어 그곳에 세워져 있던 전투기를 망치로 두들겼던 사건의 기록을 기억한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베리건 신부는 비폭력 평화를 그 순간 망각한 것이다. 그만큼 폭력을 극복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폭력을 포기하고 기꺼이 십자가에 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비폭력으로 이루는 평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맞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의 순수성을 지키고, 그리스도교의 존속을 위해, 무엇보다 효율적으로 그리스도교를 유지하기 위해 조직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그 순간 평화의 종교여야 할 그리스도교는 폭력의 종교가 되고 말았다. 그리스도교 역사가 마녀사냥, 종교재판, 식민지 정복과 같은 폭력을 선택한 것은 그리스도교가 조직이 되는 순간 예수의 복음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는 더 이상 승리가 아니라 다시 패배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예수 자신의 숭고한 희생으로 더 이상 희생양이 필요 없는 시대를 열었을 뿐이다.

걸핏하면 송사를 일삼거나 폭력적인 대응으로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그리스도의 평화(비폭력으로 이루는 평화)가 아니라 로마의 평화(폭력에 의한 평화)를 평화로 아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인식을 드러낸다.

이러한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현실이 얼마나 참람한 것인지를 아는 이들은 없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나 미사에 참여하여 설교를 듣거나 성사에 참여하는 것을 그리스도교로 알고 있다. 그들은 복음이 체제전복적인 사상이며, 그것도 체제전복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뒤엎어야 한다는 사실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세상의 질서에 편승하여 돈을 벌어 교회를 유지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가르치고, 그래서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뒤엎는 것이 질서를 파괴하는 유해한 일로 판단하게 만드는 곳이 되었다.

나는 이것을 ‘그리스도교의 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폭력의 세상에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의 선봉이 되었다. 누구도 캄보디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을 개인의 일탈로 생각한다. 그것은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며 특히 기반이 없거나 신용불량자와 같이 수렁에 빠진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라는 이해를 수용하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폭력에 희생되어도 그것이 평화의 복음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예수는 체제전복적인 사상을 체제전복적인 방식으로 가르치고 그것을 스스로 실천했다. 그 결과는 참람한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수많은 예수들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며 새로운 나라를 보여주는 공동체들의 건설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복음을 구원타령으로 만들어 체제에 순응하는 폭력적인 그리스도인들로 만들었다.

그들은 설교나 성사를 媚藥을 먹으며 죽음 이후의 천국을 사모하게 되었다. 폭력적인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완전히 망각한 것이다. 현실종교이어야 할 그리스도교를 죽음 이후의 종교로 만든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시작되어야 할 하나님 나라를 죽음 이후에 가는 곳으로 만든 것이다.

AI로 세상은 더욱 돈이 이끄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것은 세상이 더욱 폭력적인 될 것임을 의미한다. 캄보디아 사태는 캄보디아와 같이 후진사회에서 벌어지는 일탈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질 비참한 전 지구적 현실의 예고편이다. 트럼프가 추구하는 미국이 바로 그런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가장 번영한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 수가 이십오만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라.

바야흐로 폭력의 전성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물론 돈 세상의 도래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또 다른 한 축은 비폭력 평화의 복음을 간직해야 할 그리스도교의 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