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 김선주 목사(길위에교회) = 또 모자란 짓을 했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모자란 짓은 그치지 않고 이어지니 인생이란 평생 모자란 짓의 연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자란 사람이라서 당하는 모욕과 수치심을 이겨내려니 그 또한 사람이 모자라서 마음에 잘 담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이 그렇습니다.

오늘 아내와 함께 예전에 목회하던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시골에서 목회할 때 마을 사람들과 살갑게 지냈기 때문에 그곳은 제2의 고향과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울적할 때 가끔 아내와 함께 남몰래 살짝 다녀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두어 달 전에 마을 사람이 보내준 감자 바구니(콘티)를 가져다 줄 겸 바람을 쐬러 그 마을에 들렀다가 돌아 나오는 길에 예전 목회하던 교회에 들렀습니다.

우리가 떠나온 뒤로 벌써 목회자가 3번이나 바뀌고 교인들도 다 떠나고 노인 대여섯 명만 남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나오는 길에 있는 교회에 들러 잠깐 기도하고 담임 목사님 있으면 인사나 하고 올 참이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담임 목사님을 만나게 되면 뭔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의논해 보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제 부임한지 2주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시골생활이 어설프고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를 하고 나오면서 아내는 교육관에도 가 보자 합니다. 그곳은 내가 온 몸을 갈아 넣어서 지은 곳이기 때문에 아내는 그곳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교회에 돈이 없어 이곳저곳 후원금을 받아왔지만 택도 없는 비용 때문에 내가 늘 몸으로 뛰어들어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업자에게 뒤통수를 맞아 꿍꿍 앓을 때도 나 혼자 아팠습니다. 그라인더에 아랫배가 갈려 크게 찢어졌을 때도 교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나 혼자 상처를 싸매고 땀방울을 쏟아야 했습니다. 생활비 40만원을 받아서 공구를 사고 부족한 공사비를 채우고 하다 보니 시골 목회 8년 만에 채무만 2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그래도 교육관 때문에 교회가 행복했습니다. 늘 문을 열어놓고 다니며 누구라도 언제든지 와서 쉬었다 가라고 개방했습니다. 교회 안 다니는 이웃 마을 아이들까지 교육관에 들어와서 놀다가, 잠자다가, 영화를 보다가,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와 과일 들을 맘껏 먹고 갔습니다. 방학이면 교회는 아이들로 왁자지껄한 동네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우리 자식들 못 멕이는 것들까지 사다가 냉장고에 쟁여놓고 내가 없더라도 언제든지 와서 맘껏 먹고 맘껏 놀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도 8년 동안 도둑맞은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 없는 새에 마을 사람들이 푸성귀며 과일이며 곡식 같은 것을 끊이지 않고 갖다 주어 풍족했습니다.

내 전임자인 목사님 몇 명도 나 없는 교회에 와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가곤 하였습니다. 나는 그것이 당신들이 목회할 때를 회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대한 애정이면서 동시에 당신들의 젊은 시절이 투영된 장소에 대한 애정일 것입니다. 그분들의 소중한 삶의 한 부분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나는 그것을 전혀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사람 없는 심산유곡의 외딴 교회에 사람 하나라도 찾아와 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우리도 시골교회를 막상 떠나오고 난 뒤 그런 회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 눈에 띄지 않게 살짝 다녀오곤 하였는데, 어떤 때는 교인들 귀에 들어가 서운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감자 바구니를 살짝 갖다주고 돌아 나오다 교회에 들러보았습니다. 교육관에 설치된 에어컨은 내 카드로 24개월 할부로 산 것이고 냉장고는 12개월 카드 무이자로 산 것이고 닥트 환풍기는 대전 중앙시장에 가서 직접 제작하여 온 것이고 입구에 있는 옷장은 이웃교회 목사님 내외가 와서 땀방울을 쏟아가며 짜 준 것이고, 현관문은 업자가 속을 썩이는 바람에 내가 직접 달다가 연거푸 실패를 하며 울화통을 삶아먹은 것이고, 에어컨 설치를 위해 3상 전기를 가설할 때 전기 쇼크로 요단강을 건너갔다 왔고... 구석구석 손때가 묻고 마음 가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었습니다. 아내는 그것들을 보면서 옛날의 그 시간들을 회상하며 은혜와 감동에 젖었습니다. 교인들과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이며 손때묻고 정들었던 공간을 둘러보며 그 시절의 은혜와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CCTV에서 누구세요, 라고 묻는 소리가 났습니다. CCTV를 보고 구체적인 얘기를 하는 게 뭐해서 전에 여기 살던 사람이라고만 말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인사하고 자세히 이야기 나누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0여 분 뒤에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왔습니다.

“당신이 김선주 목사입니까?”
“네.”

“방금 교회 왔다 가셨지요?”
“네”

“아무도 없는 교회에 왜 함부로 들어옵니까?”
“왜 아무도 없는 교육관에 들어가 살림을 들여다보고 그럽니까?

”왜 상식에 어긋난 일을 하십니까?“
”왜 도의에 어긋난 일을 하십니까?“

“아,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말로 사과한다고 하면 다 되는 겁니까?”

“그러면 제가 어떻게 사과해야 마음이 풀리시겠습니까?”
”이거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목사님 마음이 정 그러시다면 법적인 문제도 제가 감수하겠습니다.“
”고소하란 말이지요? 어떻게 목사가 고소하라고 말할 수 있어요?“

”지금 목사님이 먼저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는 너무 흥분해서 속사포처럼 마구 쏘아댔습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훈계하듯 소리쳤습니다. 앞뒤 없이 고성으로 갈겨대는 그 소리를 듣고 옆에 있던 아내가 놀라서 얼굴이 파래집니다. 이런 경우 논리적으로 이치를 따지게 되면 개싸움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압니다. 목사의 품격, 아니 인간의 품격을 잃지 않기 위해 그의 말을 충분히 들은 후에 나는 최대한 축약된 말로 대답했고 재차 사과했습니다. 나중에 통화 기록을 보니 13분 동안 그는 일방적으로 쏘아댔고 의도치 않게 통화녹음 앱이 작동되어 재생해 보니 나는 13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분을 풀지 않고 혈기를 쏟아내며 나를 범죄자 취급하였습니다.

아내는 너무 놀라서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하였습니다. 나도 충격이 너무 커서 심장이 울렁이고 구토 증세까지 나타났습니다. 중간에 약국에서 청심환을 사 먹었지만 심장이 떨리는 증세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집으로 오는 내내 울음을 그치지 못했고 나도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당한 모욕과 수치 때문이 아니라, 그 목사님 아래서 혹여라도 교인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생각하니 그게 너무 아팠습니다. 내가 그 교회 부임하기 전 목회자도 그런 성격이었던 사람이라 교인들이 상처받고 다 흩어졌었는데, 그 일이 다시 반복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조카뻘밖에 안 되는 어린 후배 목사에게 수모를 당한 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게 아니라, 이 땅의 교회에 희망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 나를 수치스럽게 하였습니다. 대형교회는 대형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성한 구석이 없어 보이는 건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겠지요.

그 충격과 함께 다가온 또 하나의 충격은 사랑하는 고향을 잃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나의 진짜 마음의 고향인 교회까지 잃을까 걱정입니다. 참 많이 아픕니다. (<미주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