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은 노인 뇌 건강에 긍정적 효과"

(올랜도) 최정희 기자 = 수십 년 동안 기술이 뇌와 웰빙에 해롭다는 경고가 이어졌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디지털 사회와 씨름해 온 첫 번째 세대의 노인들이 이제 인지 장애가 흔해지는 나이에 도달한 요즈음 기술과 뇌 건강에 관한 부정적인 견해에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비영리기관인 '카이저패밀리재단'의 <헬스 뉴>는 타자 수업에서 기술과 인연을 맺은 한 여성의 사례를 들면서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 했다.

완다 우즈는 종이 수표와 종이 지도를 쓰던 아날로그 시대에 성장했고, 고등학교에서 타자 수업을 들었다. 아버지가 타자 실력이 직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방과 후 근무자로 채용됐다. 이곳에서 우즈는 '워드 프로세서'라는 기계를 처음 접했다.

우즈는 1980~90년대를 거치며 IBM 데스크톱을 사용하고, Lotus 1-2-3, Windows 3.1도 익혔다. 가정에서도 자녀 교육을 위해 데스크톱을 들이고, 차가 고장 났을 때 도움을 못 받은 경험 후 휴대폰을 마련했다. 이후 스마트워치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요금을 내고 쇼핑을 하며, 디지털 캘린더를 쓰고 가족들과 단체 문자도 주고받는다. 그녀는 인공지능에도 거부감이 없다. 지난해 우즈는 구글 제미니와 쳇 GPT 같은 AI 챗봇을 이용해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떠나는 캠핑카 여행을 계획했고, 현재는 결혼 50주년 가족 크루즈 여행도 AI로 준비 중이다.

현재 덴버에서 노인이 기술을 배우고 최신 기술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돕는 기관에서 시니어 플래닛(Senior Planet)에서 일하고 있는 우즈는 "기술에 관여하는 것이 정보에 밝게 해준다"라며 은퇴할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

57개 연구 분석 결과 기술 사용자가 인지력 더 좋아

매체는 기술이 뇌에 해롭다는 수십 년간의 경고와는 의견을 달리하는 일부 신경과학자들의 의견과 특정 연구결과도 전했다.

베일러 대학교의 인지 신경과학자 마이클 스컬린은 "디지털 개척 세대에서는 일상적인 디지털 기술 사용이 인지 장애와 치매의 위험을 줄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듀크 대학교 신경인지장애 프로그램 책임자 무랄리 도라이스와미는 "기술이 항상 나쁘다는 기존의 관념을 뒤집는다"며, "신선하고 도발적이며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가설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스컬린과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의 신경심리학자 재러드 벤지는 50세 이상 성인(평균 나이 69세)의 기술 사용 효과를 분석했다.

이들은 컴퓨터, 스마트폰, 인터넷 또는 이들의 혼합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기술을 회피하거나 덜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인지력 테스트에서 더 좋은 점수를 보였고, 인지 장애나 치매 진단 비율도 낮았다고 밝혔다.

스컬린은 "보통 이런 종류의 연구에서는 결과가 많이 다르게 나오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Nature Human Behavior'에 발표된 57개 연구, 41만1000명 이상의 노인을 분석한 결과, 약 90퍼센트의 연구에서 기술 사용이 인지에 보호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기술이 인지에 해롭다는 우려는 주로 발달 중인 뇌를 가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나왔다. 스컬린은 "스크린과 디지털 기기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주의력, 정신 건강, 행동 문제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강력한 데이터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노인의 뇌는 덜 유연하지만 여전히 변화 가능하며, 중년에 기술을 접한 사람들은 이미 기초적인 능력과 기술을 습득한 상태다. 그 후 급변하는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웰 코넬 의대 노화·행동 연구소의 심리학자 월터 부트는 "성인이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의 결론은 그럴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런 분석은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는 없다고 매체는 전했다. 기술이 노인의 인지를 향상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인지 능력이 낮은 사람들이 기술을 피하는 것인지, 혹은 단순히 경제력이 기술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경심리학자 스컬린과 벤지는 건강, 교육, 사회경제적 지위 등의 변수들을 고려해도 디지털 기술 사용자들이 인지 능력에서 여전히 우위에 있음을 발견했다.

기술이 뇌에 좋은 이유는 도전, 사회 연결 기능

그렇다면 기술이 뇌에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스컬린은 도전을 먼저 거론했다. 그는 "이 기기들은 복잡하고 새로운 도전을 제공한다"라며 "포기하지 않고 좌절을 이겨내면, 인지적으로 유익한 과제를 수행하는 것과 같아진다"고 말했다.

또한 기술은 사회적 연결을 촉진해 인지 저하를 늦추고, 스마트폰의 알림이나 앱은 기억력 감소를 보완해주며, 쇼핑이나 은행 계좌 관리 같은 일상 기능 유지에도 도움을 준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전체 치매 환자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구 대비 치매 발생 비율은 낮아지고 있다.

연구자들은 흡연 감소, 교육 수준 향상, 혈압 관리 향상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치지만 기술 참여도 그 일부일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디지털 기술에는 위험도 있다. 온라인 사기나 허위 정보는 특히 노인을 표적으로 삼는다. 노인은 사기 피해를 덜 신고하지만, 실제 금전 손실은 젊은 세대보다 훨씬 크다.

또 하루 10시간씩 기기에 매달린다면 사회적 연결이 끊길 수 있다. 기술이 운동이나 건강한 식습관 같은 뇌 건강에 유익한 다른 활동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