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S 폐지로 34만 명 쫓겨날 위기…돌봄부터 건설까지, 일손 끊기고 아이들까지 일터로

(올랜도) 김명곤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진한 임시보호신분(TPS) 프로그램 종료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플로리다가 전례 없는 다층적 위기에 직면했다. 노동력 공백은 물론, 소비 위축과 세수 감소, 복지·교육 인력 붕괴, 아동 노동 확산, 산업 자동화까지 연쇄적 충격이 퍼지고 있다. 정치권과 업계, 지역 사회가 한목소리로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연방 차원의 실질적 대응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TPS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놨고,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도 일부 보호 조치가 유지됐지만 전면 종료 수순은 되돌리기 어렵게 됐다. TPS는 주로 내전, 자연재해 등 위기 상황에서 미국에 임시로 체류 중인 외국인을 보호하는 제도다.

<사우스플로리다 선센티널>과 <뉴욕타임스> 등 다수 매체에 따르면, 플로리다에서는 베네수엘라 출신 약 25만 명을 포함해 총 34만 명 이상이 TPS 종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주로 니카라과, 아이티, 쿠바, 엘살바도르 등에서 온 이민자들로, 대부분 요식업·돌봄·건설 등 필수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WLRN에 따르면 이들 중 95%는 이미 취업 상태이며, 이들이 플로리다 주 정부에 납부하는 세금만 해도 연간 4억8590만 달러에 이른다. FWD.us는 TPS 보유자들이 미국 경제 전반에 기여하는 규모가 연간 210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건설·돌봄·교육·관광…'산업 붕괴' 현실화

노동력 공백은 산업 현장에서 즉각적인 혼란으로 나타나고 있다. 플로리다 전체 요양보호사 중 64%가 TPS 신분자였으며, 마이애미데이드 교육구에서는 교사 및 보조 인력 700여 명이 공석 상태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TPS 인력으로 채워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TPS 종료는 곧바로 학교 운영 차질, 요양시설 공백, 의료 서비스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번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공립학교에서 이미 보조 인력 부족으로 수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광업과 건설업도 타격을 받고 있다. 월트디즈니월드에서는 일부 베네수엘라 출신 캐스트 멤버가 무급 휴직에 들어갔고, 마이애미와 도럴 지역에서는 주택 매매 급증과 함께 소비 감소가 가시화되고 있다. ICE의 현장 단속 강화로 건설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과 공사 지연이 빈번하게 발생 중이다.

대체 전략은 '자동화' 또는 '아동 노동'…논란 가중

이 같은 노동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플로리다 주의회는 청소년의 노동 시간 확대를 포함한 아동 노동 허용 법안을 논의 중이다. 특히 14세 이상 청소년의 야간 근로 허용 등은 이미 지역사회와 인권 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가디언>은 이를 “이민자 추방의 부담을 아이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편, 자동화 역시 급부상 중이다. <에이인베스트>와 <테크크런치> 등 전문 매체는 농업, 호텔, 물류 등 분야에서 로봇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아이론 오엑스, 로커스 로보틱스 등 자동화 스타트업에 대한 플로리다 내 투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기술 전환은 장기적으로 구조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단기적 혼란과 비용 부담, 실직 우려 등도 함께 제기되며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 "구조적 전환 기로…연방 대책 시급"

경제 전문가들과 지역 정치인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이민 행정의 변화가 아니라, 플로리다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구조적 전환의 신호탄이라고 경고한다. 연방 하원의원 셰일라 셰르필루스-맥코믹은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사라지면 지역은 물론 전국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자 론 해트릭은 "2025년 7월 기준 플로리다의 노동 참여율은 57.8%로 전국 평균보다 낮다"며 "이민자 감소가 참여율 하락을 가속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H-2A, H-2B 비자 확대,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 강화 등 대체 이민 경로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그러나 연방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환점에 선 플로리다

플로리다는 미국 내 경제 규모 기준 4위 주로, 관광, 농업, 항공우주, 의료, 금융 등 핵심 산업 전반에 외국인 노동 의존도가 높다. TPS 종료는 단지 이민자 문제에 그치지 않고, 플로리다 전체 산업 구조와 경제 생태계, 나아가 사회 복지 시스템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력 공백, 세수 축소, 서비스 붕괴, 자동화 확산, 아동 노동 논란이 한꺼번에 진행되는 복합 위기 속에서, 플로리다가 어떤 정책적 선택을 할지는 향후 미국 이민정책과 경제정책 전반의 방향을 좌우할 중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