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풍자 콘텐츠로 공세 강화…단기 성과 가능성 vs 장기 부메랑 우려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민주당이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을 정치 무대에 다시 꺼내 들었다. 그간 '품격 있는 비판'과 '헌정 질서 수호'를 내세우던 전통적 메시지에서 벗어나, 인터넷 밈과 조롱형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는 우파식 선동 전술을 실험하고 있다. 목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지지층 사이의 균열을 확대하는 것이다.

조지아주 민주당 하원의원 행크 존슨은 최근 인스타그램에 기타를 치며 부른 개사 노래 영상을 올렸다. 가사에는 "엡스타인은 자살했다네/그걸 믿으면 눈 먼 거지"라는 구절이 들어 있었다. 트럼프의 '엡스타인 문건' 미공개를 직설적으로 비꼰 것이다.

뒤이어 반(反)트럼프 성향의 공화당 조직 '링컨 프로젝트'는 AI로 만든 풍자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영상 속 인형 캐릭터들은 트럼프, 엡스타인 등 실존 인물을 희화화하며, 엡스타인 전용기와 트럼프의 사생활을 암시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캘리포니아주 개빈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와 엡스타인 사진을 니켈백 노래 가사 밈 형식으로 X(옛 트위터)에 올렸고, 민주당계 정치자금 조직 ‘하우스 메이저리 PAC’은 ‘GOP 엡스타인 심프 명단’을 공개하며 공화당 의원들이 정보 공개에 반대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또 매일 “트럼프가 엡스타인 문건을 공개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만 답하는 계정 ‘@TrumpEpsteinBot’을 운영 중이다.

단기 효과와 장기 위험

정치권에서는 이를 트럼프식 메시지 전술의 '역이용'으로 본다. 트럼프가 직설, 조롱, 밈을 무기로 대중의 주목을 끌어온 만큼, 민주당도 같은 방식으로 반격하면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엡스타인 사건은 일부 MAGA(트럼프 지지) 진영에서 ‘권력층의 은폐’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트럼프가 후보 시절 약속했던 문건 공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지층의 배신감을 자극할 수 있다. 이 경우 민주당은 보수 진영 내부 균열을 유도하고, 젊은층과 정치 무관심층에게도 ‘온라인 문화에 능숙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심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시나리오도 있다. 외부의 조롱은 종종 결집을 강화한다. 트럼프 지지층이 이번 공세를 ‘정치적 모욕’으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더 강하게 트럼프를 방어할 가능성이 있다. 밈 중심의 공격은 중도층에게 ‘저급 정치’로 비칠 수 있으며, 사건 피해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관심을 가린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도 크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의 이미지 손상만 남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며 효과가 반감되는 '혼합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대선 초반에는 트럼프에 부담을 주지만, 반복되는 밈과 풍자가 유권자 피로감을 높이면 메시지가 희석된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전략 갈등이 불거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트럼프 타격’과 ‘민주당 이미지 손상’이 서로 상쇄돼 선거 전체 판세에는 제한적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정책보다 이미지 전쟁

이번 전략 변화는 민주당이 유권자에게 매력적인 정책 대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드러낸다. 고상한 가치와 원칙보다 상대의 약점 공격에 집중하는 것은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정치 논의를 ‘쇼’로 전락시킬 위험도 크다.

민주당의 이번 실험이 일시적 선거용 무기인지, 장기적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자리 잡을지는 오는 대선에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