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0일, 이광철의 기록⑪] 조국사태_세 번째

(서울) 이광철 기자(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10월이 왔다.

9월 전반기 내내 검찰과 언론,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합동공세 속에서 조국과 문재인 정부는 수세에 몰렸다. 조국이 법무부 장관이 되고서도 상황은 반전되지 않았다. 윤석열 패거리들은 현직 법무부장관의 주거지를 무려 17시간이나 압수수색했다. 청와대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우리가 집권세력이 맞는지 참담했다.

9월 후반 반전이 찾아왔다. 9월 16일 서초동 대검청사 앞에서 벌어진 '조국수호, 검찰개혁' 촛불집회가 그것이었다. 9월 28일에 집회측 추산 200만여 명이 집결했다. 9월 23일 조국 자택 압수수색의 가혹함, 그리고 9월 25일 밤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 들고 자택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조국의 뒷모습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 서초동 집회는 조국 사태의 양상을 바꾸었다. 이 집회를 계기로 '(조국의) 공정의 배반, 위선'이라는 프레임과 '(윤석열의) 검찰개혁 저항 및 이를 위한 조국 일가 도륙'의 프레임이 비등한 세를 형성했다. 윤석열이 이 집회에 대하여 "검찰청 앞에 수만 명씩 와서 폭력성 시위" 를 했다면서 "과거 같으면 사법처리 대상"이었다고 격하게 반응한 것도 당시 이 집회가 윤석열 패거리에게 매우 위협적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국도 이 서초동 집회가 자신을 살렸다고 말했다.

이런 반전의 계기를 갖고 10월을 맞이했으니 우리로서는 조국을 지키고 윤석열의 난을 진압해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쉽지 않았다. 조국이 버틸 수 있을지. 관건은 세 가지였다. 첫째, 10월 14일로 예정된 법무부 국감 등 국회 국감 일정, 둘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 등 국정운영동력의 진폭, 셋째, 가족들 및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가 그것이었다.

조국이 장관에 계속 있으면 이들을 인질삼는 수사는 더욱 더 가혹해질 게 뻔했다. 가족들만큼은 아니지만 진실을 말하는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 역시 가혹했다. 단국대 장영표 교수, 부산대 의전원 노환중 교수, 동양대 장경욱 교수, 김경록씨 등이 감당해야 할 고통은 그 삶 전체가 부서질 정도였다. 수사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것은 중계방송식 언론보도였다. 매일매일 모든 언론의 첫 보도가 조국이었다. 당사자들의 극심한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 정부의 다른 국정과제 추진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 한 달 이상 계속됐다.

다시 정경심이 불려간 날, 조국은 사직을 결심했다

10월 3일 개천절, 반조국 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렸다. 10월 5일 조국수호 집회가 서초동에서 열렸다. 힘과 힘이 격렬하게 부딪혀 여론이 출렁였고,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율의 낙폭이 눈에 띄었다. 조국의 고뇌는 깊어져 갔다. 검찰은 10월 3일, 5일, 8일 정경심을 소환했다. 10월 3일 5촌 조카 조범동을 구속기소하였고, 10월 4일 친동생 조권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각되자 다시 청구하여 기어이 구속시켰다. 다시 정경심이 불려간 8일, 조국은 마침내 사직을 결심했다. 13일 일요일 고위당정청 회의에 참석하여 검찰개혁 방안을 발표한 것이 법무부장관으로서 그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14일 사직을 예정했다.

나는 지금도 이 10월 13일을 잊지 못한다. 일요일 근무여서 오후 4~5시경 청와대를 나섰다. 집 근처에 도착하여 허름한 순댓국집에 들어갔다. 구석진 곳에 홀로 우두커니 앉았다. 순댓국집 안 TV는 조국으로 떠들썩했다. 저들은 내일 있을 조국의 사임을 모르는 채 조국이 언제까지 버틸까 하면서 시시덕거렸다.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술을 시켜 한 잔을 들이켰다.

취임 때부터 단명할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래도 그가 이 난관을 뚫고 보란 듯이 윤석열 무리들을 제압하고 검찰개혁을 완성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억울했다. 윤석열 패거리 같은 보잘것없는 자들에게 조국을 내어 준다는 것이 분했다. 그와 그의 가족들이 한없이 불쌍했다. 그를 지키려고 발버둥친 지난 45일간의 나와 나의 동료들이 애처로웠다. 이 시간 대통령의 마음은 또 어떨지, 고통을 견디고 있을 대통령의 이를 다문 표정이 떠올랐다. 숨을 죽여 한참을 울었다.

술잔을 거듭할수록 주권자의 직접 위임을 받은 선출권력을 안하무인으로 휘젓는 저 임명권력의 패악질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생각이 바뀌어갔다. 조국 사태가 터진 이후 나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헌법 제1조 제1항(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과 제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을 읊조리고 되뇌였다. 이른바 조국흑서 5인방 중 한 명인 권아무개 변호사는 나를 두고 나치의 부하인 괴링에 비유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연성파시즘에 빠져 들었다고 분개했다.

윤석열 정권 시절 내내 김아무개 회계사, 진아무개 교수, 서아무개 교수, 강아무개 기자 등 나머지 흑서 4인방을 주목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사실상 조력했다. 문재인 정부가 연성파시즘, 전체주의이면 윤석열 정권은 그 100배 이상일 텐데, 이들은 거기에 대해서 눈감았다. 이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조국의 위선을 질타하는데 여념이 없던 진보인사들을 보면서, '민주공화국은 누가, 어떻게 지키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조국 사태 진행 중에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이태경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거시적 안목과 전략적 인내심이 없는 진보, 사안의 경중과 완급과 선후를 모르는 진보, 한 사회가 걸어온 경로의 무서움과 사회세력 간의 힘의 우열이 가진 규정력을 인정하지 않는 진보, 한사코 흠과 한계를 찾아내 이를 폭로하는 것이 진보적 가치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는 진보는 무익할 뿐 아니라 유해하다..."

버텨준 조국이 고맙다

10월 14일 월요일이 되었다. 오후 2시 조국 장관의 사임 소식이 보도된 직후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보좌관회의가 열렸다. 민정비서관인 나는 그 회의의 배석자였다. 대통령은 "조국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개혁을 희망했지만 꿈 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습니다"라고 토로하면서 "검찰개혁과 공정의 가치는 우리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이며 국정 과제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그 두 가치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 국민의 뜻을 받들고 부족한 점을 살펴가면서 끝까지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합니다"라고 말했다. 다치고 상처를 입어도 계속 나가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또한 우리의 숙명적 소임인 것을. 대통령의 말씀에 마음의 신발끈을 다시 단단히 묶었다. 법무부 장관 부재 중에 민정수석실은 검찰개혁의 사령탑이어야 했다.

사직의 변에서 밝힌 대로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 곁에 있으면서 위로하고 챙기고자" 모든 것을 내려놓은 조국은 이제 야인이 되었다. 그의 앞에는 더욱 더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 정경심은 구속기소되어 징역 4년이 선고되었고, 자신은 서울대 교수직에서 파면되었다.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일시나마 구금되었다가 2019년 마지막 날에 불구속 기소되었다. 유재수 감찰무마건에 이어 딸의 장학금, 아들의 변호사 사무실 인턴(이건으로 최강욱 의원까지 기소되었다), 오픈북 시험까지 기소의 대상이 되었다. 딸 조민은 의전원에 이어 대학 학부 입학마저 취소되어 고졸자가 되었다. 그리고도 기소되었다. 그 시간을 그와 그 가족들은 온전히 감내하고 버텨냈다. 조국과 그 가족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자리를 빌려 처절한 마음으로 한 가지 기록해 둘 것이 있다. 민정수석일 때 조국을 보필했던 동료들이 있다. 차마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 없었지만, 조국과 그 가족이 풍비박산이 난 2019년 이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윤석열 패거리의 인간사냥에서 그가 가족과 지인들을 지키기 위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너무나도 걱정스러웠다. 우리는 시간나는 대로 그와 함께 하기로 하였다. 어느 명절 때 온 가족이 부재중인 집에 우두커니 홀로 있다가 우리를 맞이하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나는 조국이 멸문지화의 상황에서 죽지 않고 끝내 감내하고 버텨냈다는 오직 그 한 가지만으로도 그에게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하다. 그가 2024년 총선 국면에서 누구의 신세도 지지 않고 오직 자력으로 687만 국민들의 마음을 얻어낸 것도 이런 극도의 시련을 이겨낸 그의 불굴의 의지를 국민들이 평가해 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조국이 내세운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강렬한 구호에 윤석열이 자폭성 계엄으로 광포한 치세를 스스로 종식시킨 것도 헤겔이 말한 '이성의 간지'가 아닐까 싶다.

최근 조국에 대한 사면 논란이 뜨겁다. 어떤 결론이든 이재명 대통령의 판단을 존중한다. 당연하다. 다만, 윤석열 무리의 인간사냥으로 조국과 그 일가가 지옥과 같은 형극의 길을 견뎠고, 지금도 견디고 있는 중이라는 점, 조국과 그 가족이 둘러 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같이 나누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평범한 일상의 회복이 윤석열 내란의 종식을 상징하는 한 장면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만은 사면권자인 이재명 대통령께 간곡하게 말씀드리고 싶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