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소개] 시민 북펀딩으로 나온 <항일로드2000km> 출간 후기

(서울) 김종훈 기자 = 지난 22일, <항일로드 2000km> 이름의 새 책이 나왔습니다. 소회를 묻는 질문에 '더 잘 쓰지 못했기에 아쉬움은 남지만 더 잘 쓸 수 없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마음 다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다섯 번째 책인데, 처음으로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북펀딩이란 것도 해봤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선전했고, 덕분에 출간과 동시에 알라딘에서 종합베스트셀러 3위(역사·여행 분야 1위)라는, 다소 믿기 어려운 결과도 마주했습니다.

반응이 뜨겁기에 기쁘고 뿌듯합니다. 그러나 진짜 기쁘고 뿌듯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반응의 크기만큼 '이 책을 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고 또 싸운 지사들을 찾아 떠나볼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일어서입니다.

항일로드는 일본땅 나가사키를 시작으로 후쿠오카,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오사카, 교토, 가나자와, 도쿄, 치바, 미야기 등 10개 도시, 50여 곳의 현장을 다닌 이야기를 엮었습니다. 대부분이 지사들이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공간이거나 강제동원된 이들이 고통을 겪던 곳입니다. 또 관동대지진 이후 벌어진 학살과 원폭으로 숨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작은 위령비 하나 세워진 곳입니다.

물론 '항일'이라는 이름이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일부지만 제목만 보고 '이건 일본을 혐오하기 위해 만든 책 아니냐'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일본땅으로 지금 떠나라고, 그곳에 가봤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강조하고, 또 설득하는 책입니다.

36° 31′ 30.11″ N, 136° 40′ 17.9″ E... 이곳에 서봤으면 좋겠습니다

50여 곳의 현장 중 딱 한 곳만 꼽으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이곳을 고를 겁니다. 위도 36° 31′ 30.11″, 경도 136° 40′ 17.9″의 땅, 1932년 12월 19일 오전 7시 27분 천하영웅 윤봉길 의사가 순국한 곳입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광복 80주년을 맞은 2025년 현재도 술 한 잔 올릴 수 없는 금단의 땅입니다. 윤 의사가 순국했을 당시에는 일본군 제9사단이, 2025년 현재는 일본 육군 자위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위대가 해당 지역을 사격장으로 활용하고 있어 허가받은 인원을 제외하고는 한국인, 일본인 가릴 것 없이 접근이 제한됩니다(단, 부대 앞 개활지를 주말에 한해 민간에 개방).

솔직히 욕심 낸 적도 있습니다. 2018년 늦은 가을 처음 현장 방문했을 당시 큰 용기를 내서 군부대 앞마당격인 개활지를 지나 부대 출입구까지 도달했습니다. 앞으로 200여 미터만 더 가면 윤 의사 순국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눈 앞에 두고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철문으로 된 정문을 지나 자위대 부대 안으로 한 걸음 더 내딛는 순간, 총을 든 군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왔습니다. 하필 사격 훈련을 마치고 나온 그들과 윤 의사 순국지를 찾아 들어가는 제가 서로 마주쳤던 겁니다. 총을 든 군인들의 반응은 날카로웠습니다. 총을 겨냥하며 "누구냐? 어떻게 들어왔냐?"라는 말을 쏟아냈습니다. 영어로 "트래블러"라고 대꾸했습니다.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자위대 군인들, 이후는 예상한 대로입니다. 정중하지 못한 모습으로 부대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불과 2분 거리, 윤 의사의 순국지를 눈앞에 둔 채였습니다. 이후로 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윤 의사의 순국 현장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도 36° 31′ 30.11″, 경도 136° 40′ 17.9″의 땅, 책을 쓴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곳에서 천하영웅 윤봉길을 가슴에 새기며 여럿이 함께 술 한 잔 올리고 싶습니다.

1932년 12월 19일 오전 7시 27분의 의미

1932년 12월 19일 일제는 십자가 목재 형틀에 윤 의사의 양쪽 팔을 네 번에 걸쳐 묶고 눈을 헝겊으로 가렸습니다. 현장에 있던 간수가 무릎 꿇려진 윤 의사에게 유언이 있느냐고 묻자 윤 의사는 "사형은 이미 각오했으므로 하등 말할 바 없다"라고 했습니다. 오전 7시 27분 미간에 총을 맞고 13분 뒤인 7시 40분에 심장이 완전히 멎었습니다. 총탄이 이마를 정확히 관통해 피가 별로 흐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윤 의사의 마지막 모습은 2002년 일본 방위청(현재의 방위성)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보관 중인 <만밀대일기満密大日記>에 포함된 문서 <윤봉길 형 집행 건>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매장은 장례식을 치르기 이전에 실시하고 묘지의 위치는 극비리에 은폐할 것. 또한 매장지 등이 훼손되거나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중략) 특히 조선인과 사상적으로 편향된 인물들, 또한 불령분자의 동향에 대해 감시를 게을리하지 말 것." - 만밀대일기 중

윤봉길 의사의 사형과 매장이 극도의 비밀 속에 이뤄졌다는 점은, 일제가 그의 죽음이 조선인 사회에 미칠 파장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보여줍니다. 일제는 왜 윤 의사를 의거가 일어난 상하이도, 생애 마지막 한 달을 보낸 오사카도 아닌, 이곳 가나자와까지 이송해 사형을 집행했을까? 비열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가나자와는 일본군 9사단의 사령부가 위치한 도시입니다. 9사단은 1932년 상하이 사변에서 일본군의 핵심 축을 담당한 부대입니다. 앞서 발생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앞장서서 한반도를 유린한 부대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9사단을 이끌던 우에다 겐키치 중장은 윤 의사 의거로 한쪽 다리를 잃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니 가나자와로 압송하여 사형을 집행한 것은,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 중장의 개인적 복수이자, 한반도를 유린한 9사단 차원의 집단적 복수를 이루고자 함입니다.

하지만 진짜 의도는 따로 있습니다. 당시 상하이 사변을 이끈, 일제의 '군신'으로 불리던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사망했던 시간(오전 6시 27분께)에 맞춰, 심지어 1시간 차이가 나는 중국과의 시차까지 고려하여, 윤 의사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장군의 사형을 통해 우리는 이미 경험했습니다. 당시 일제는 안 의사의 사형집행을 이토 히로부미 사망 시간에 맞춰 집행했습니다. 이를 정확히 22년 9개월이 흐른 윤봉길의 사형집행 때도 적용한 겁니다.

밟히고 또 밟힌 14년의 세월

일제는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노다산 공동묘지에 암매장했습니다. 그런데 암매장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당시 일제가 윤 의사를 암매장한 곳은, 쓰레기 처리장으로 가는 좁은 통로였습니다. 무슨 의미일까? 1946년에 윤 의사 유해가 발굴되기까지 무려 14년 동안, 공동묘지를 찾는 인원들이 윤 의사가 묻힌 땅 위를 밟고 지나다니도록 한 겁니다. 일제는 윤 의사가 죽은 뒤에도 모욕하고 또 모욕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까지 했나? 윤 의사의 의거로 사망하거나 다친 인물들은 말 그대로 일제 군부와 정계를 이끄는 핵심이었습니다. 군신이라 불린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비롯해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지 등이 사망했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 중장은 한쪽 눈을 실명했습니다.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 중장은 다리를 절단했고, 주중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는 오른발이 잘렸습니다.

현장에서 오른발을 잃은 시게미쓰는 훗날 1945년 9월 2일 미국의 전함 미주리호에서 열린 일본제국의 항복 조인식에 외무대신 자격으로 참석해 항복 서명을 한 당사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일제는 그의 유해조차 편히 쉬게 두지 않았던 겁니다. 윤 의사의 유해는 형법 절차가 무시된 채 비밀리에 묻혔고, 아무 표시도 없어 위치조차 알 수 없는 평평한 땅, 심지어 쓰레기 처리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암매장됐습니다.

1945년 광복이 됐고, 고국으로 돌아온 백범 김구는 가장 먼저 윤 의사의 유해를 수습하도록 재일거류민단 소속 박열과 이강훈 지사 등에게 요청합니다. 윤 의사의 유해는 1946년 3월 6일 임시정부 유해발굴단과 재일본조선인연맹 소속 청년들에 의해 발굴될 때까지 무려 햇수로 14년, 날수로 4826일 동안 모욕을 당했습니다. 윤 의사는 1946년 6월에야 고국으로 돌아와 효창원에 잠들었습니다. 백범은 삼의사 묘역 아래 향기가 백대에 걸쳐 흐른다는 뜻의 '유방백세流芳百世'를 새겼습니다.

지난 25일 오후, <항일로드2000km> 출간 나흘째 되는 날, 휴가를 내고 효창원을 찾았습니다. 윤 의사 영전에 술 한 잔을 가득 부은 뒤 책을 올렸습니다. 윤 의사의 무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는 윤 의사가 떠난 일본땅 그곳에서 술 한 잔 반드시 올리겠다"고. 이 책을 본 당신도 언젠가 윤 의사가 순국한 그곳에서 천하영웅 윤봉길을 새기며 술 한 잔 올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책에 기재했습니다. 싸우고 또 싸운 윤봉길과 지사들을 기억합니다. 대한독립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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