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수의 경세제민] '평등한 토지권' 보장 위해, 불평등 구조 타파 외면하지 말아야

(서울) 전강수 기자 = 7월 들어 이재명 대통령이 매우 인상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 세 가지가 두드러지는데, 첫째는 지난 4일 대전 타운홀 미팅에서 7년 이상 갚지 못한 5000만 원 이하 악성 개인 채무를 일괄 탕감하는 정책을 두고 "정리해주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둘째는 13일 개최된 세계정치학회 서울총회 개막식 연설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실질적 자유를 역설한 것이다. 셋째는 16일 세월호·이태원·무안·오송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의 만남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정부를 대표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유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깊이 의식하고 있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세 행사에서 대통령이 한 발언은 묘하게 성경 구절을 연상시킨다. 첫째와 둘째는 구약성경 <레위기> 25장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희년(쥬빌리, Jubilee)과 관련이 있고, 셋째는 구약성경 <사무엘 하> 21장에 나오는 기브온 사람들 이야기와 느낌이 비슷하다.

실질적 자유를 공포한 희년의 나팔

희년이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7년마다 지키던 안식년이 7번 지난 49년째의 다음 해를 가리킨다. 50년마다 한 번씩 다가오는 희년에는 요벨(Yobel)이라고 불리던 나팔을 불어 모든 국민에게 자유를 공포한다. 이때의 자유는 형식적 자유뿐 아니라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하는 실질적 자유였다. 모든 가족이 원래 분배받아 보유했던(그러나 모종의 사유로 팔아버렸던) 자기 땅으로 돌아가고, 가난해서 남의 종이 되었던 사람들은 해방되어 자기 가족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세계정치학회 기조연설에서 자유란 곧 경제라고 말했는데, 이는 바로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희년이 되면 공포했던 그 자유와 성질이 같다. 이 자유가 완전하게 실현되면, 50년이 지나는 사이에 약해져서 후퇴했던 사회의 평등성이 즉각 회복되어 불평등은 사라지고 활력이 되살아난다. 고대 이스라엘은 50년마다 사회를 완전히 리셋(reset)하는 장치를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채무탕감은 엄밀히 말하면 희년 규정이 아니라 안식년 규정이기는 하지만 희년이 안식년을 포함한다고 보는 신학적 해석을 감안한다면, 이 또한 희년의 범주에 넣어서 다뤄도 무방하다(제3세계 부채탕감 운동이 '쥬빌리2000'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고, 미국의 장기 연체 채권 소각 운동이 '롤링 쥬빌리'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 <사무엘 하> 21장에 나오는 기브온 사람들은 다윗 왕의 전임자 사울 왕이 민족주의적 열성에 사로잡혀, 보호해주기로 했던 옛 약속을 어기고 학살했던 자들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가장 뛰어난 성군이었던 다윗 왕은 기브온 사람들의 억울한 처지를 파악하고는, 그들을 직접 만나 요구가 무엇인지 물어보면서 자신이 그 요구를 들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을 만나서 사과하고 그들의 억울한 심정과 요구 사항을 들으려고 했던 이재명 대통령의 모습은 그 옛날 다윗 왕을 연상시킨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앞으로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을 어떻게 신원할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것은 틀림없다.

평등한 토지권 없이 실질적 자유는 없다

출발을 잘했으니 이재명 호는 앞으로 계속 순항할까. 기우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확신하기에는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사실, <레위기> 25장의 희년 규정에서 핵심은 각 가족이 원래 분배받아서 보유하던 땅을 그대로 회복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모두가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한 후, 취득한 토지를 지파별·가족별로 분배할 때 평등하게 하려고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내용이 성경 여기저기에 나온다. 그러니까 희년이 돌아와 원래 분배받아서 보유하던 땅을 회복한다는 말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평등한 토지분배 상태를 복원한다는 뜻이다.

토지가 실질적 자유의 토대라는 점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해방 노예들에게 '노새 한 마리와 토지 40에이커'를 받게 되리라고 약속했던 데서도 확인된다. 이 약속은 흑인 노예들에게 신분상 자유를 주더라도 땅을 주지 않으면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결과 해방 노예의 다수가 독립적인 삶을 이루지 못하고 옛 주인에게 돌아가서 사실상 노예의 삶을 이어갔다.

실질적 자유를 강조한 희년의 정신이 현대사회에서도 구현되어야 한다는 데 대해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방법이 문제인데,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땅 그 자체를 평등하게 분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땅에서 생기는 소득을 공적으로 징수해서 모든 국민이 똑같이 누리도록 하면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토지 그 자체가 아니라 토지에 대한 권리, 즉 토지권(土地權)을 평등하게 부여하자는 이야기다. 이 현대적 방법에 대해서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불후의 명저 <진보와 빈곤>에서 명쾌하게 설명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희년 정신에 부응하는 길을 향해 첫걸음을 떼면서도 그 핵심, 즉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그다지도 걱정하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바로 토지·부동산 소유의 불평등과 그로 인한 불로소득의 편중에서 비롯되는데도 말이다. 토지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하고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하는 것만이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고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을까.

"주택보급률 100% 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부동산문제는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수요와 부동산가격 불안정에 기인한 공포수요 때문에 발생합니다. 누군가의 불로소득은 누군가의 손실이므로 비정상적 부동산가격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입니다. (…)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부동산세 강화로 투기수요를 억제함과 동시에 무주택자들이 평생 집값 걱정 없이 적정한 임대료로 편안한 주거를 영위하도록 질 높은 장기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면 공포수요 억제에 효과가 클 것입니다."

주택 문제에 국한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로 정확한 해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불로소득 환수로 생기는 추가 세수는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 지급해서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할 수 있다. 깔끔한 해법이 이미 마련되어 있음에도 지금 이재명 대통령은 애써 이를 무시한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부동산세 강화는 아예 금기어로 취급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위에 말은 누가 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2020년 8월 9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던 말이다. 그러니까 몇 년 전만 해도 이재명 대통령은 모든 국민에게 실질적 자유를 충분히 보장할 방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을 정책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창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 정책은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로 불렸다.

이재명 대통령, 경기도지사 시절로 돌아가시라

'억강부약 대동세상(抑强扶弱 大同世上)'!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서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뜻이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이재명 대통령을 상징하는 정치 구호로 알려졌다. 앞에서 소개한 대통령의 세 행보는 분명 부약(扶弱)을 도모하는 것이다. 문제는 억강(抑强)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식의 반쪽짜리 정책으로는 불평등과 양극화의 해소는 요원해지고 대동세상의 실현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민주주의 발전과 실질적 자유의 실현도 중도반단(中途半斷)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조속히 5년 전 경기도지사 시절의 자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일부 약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정도에 머문다면, 끝까지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 지금은 짧디짧은 찬란한 시(詩)의 시절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곧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산문(散文)의 시절이 다가온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