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주택가격 상승·원격근무 종료로 이동 장벽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미국 내 인구 이동이 팬데믹 이후 급속히 둔화되면서, 한때 이주자의 ‘블랙홀’로 불리던 플로리다와 텍사스 등 남부 주(州)의 순유입이 크게 줄었다. 높은 주택 가격과 금리, 재택근무 축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기존의 ‘선벨트(Sun Belt)’ 열풍이 식고, 일부 북부·중서부 ‘스노벨트(Snow Belt)’ 지역이 반사이익을 얻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하버드대 주택연구센터(Joint Center for Housing Studies·JCHS)가 6월 발표한 ‘2025년 미국 주택 현황 보고서(State of the Nation’s Housing)’에 따르면, 2024년 미국 가구 중 이사를 한 비율은 8.3%로, 1970년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에는 이주율이 9.8%였으며, 당시 이동한 가구 수는 약 1260만 가구에 달했다. 보고서는 “고금리와 주택 구매 비용 상승, 원격근무의 퇴조가 이주에 대한 심리적·경제적 장벽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특히 자가 소유자의 이동률은 2024년 3.1%로 떨어지며, 2023년(3.7%), 2019년(4.3%) 대비 현저히 감소했다. 주택을 이미 보유한 가구가 대출금리 부담과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해 기존 주택을 처분하거나 새 주택을 구입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남부 유입 붐 '급락'… 플로리다·텍사스 하락세 두드러져

이 같은 이동 둔화는 플로리다와 텍사스처럼 코로나19 이후 수많은 미국인이 몰렸던 남부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플로리다의 국내 순유입 비율은 2019년 6.5에서 2022년 14.2까지 치솟았으나, 2023년에는 8.2로 급락했고 2024년에는 2.7로 내려앉았다. 텍사스 역시 2019년 4.2에서 2022년 7.4까지 상승했다가 2024년 2.8로 감소했다. 이 같은 수치는 하버드대 보고서와 함께 미국 부동산 중개 플랫폼 레드핀(Redfin)의 최근 분석에서도 확인된다.

레드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텍사스 주요 도시인 댈러스·휴스턴·샌안토니오·오스틴으로 유입된 인구 수는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예를 들어 댈러스는 3만5000명에서 1만3000명으로, 휴스턴은 3만9000명에서 2만1000명으로 줄었다. <휴스턴 크로니클>은 "고온다습한 기후와 물가 상승, 부동산 시장 과열이 텍사스 이동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그간 ‘떠나는 지역’으로 불렸던 캘리포니아와 뉴욕의 순유출은 다소 줄었다. 하버드대 보고서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국내 순유출 인구는 2023년 34만4000명에서 2024년 24만 명으로 약 30% 감소했다. 뉴욕 역시 2022년 29만6000명에서 2023년 17만7000명, 2024년에는 12만1000명으로 감소했다. 이와 관련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U-Haul 데이터를 인용해 “캘리포니아는 5년 연속 U-Haul 차량 유입 순위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주 감소 원인… 금리·집값·근무환경이 모두 영향

새롭게 주목받는 지역은 ‘스노벨트’로 불리는 북부와 중서부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최근 “사람들이 더 이상 선벨트를 선호하지 않는다”며, 미주리, 오하이오, 일리노이, 위스콘신 등에서 인구 유입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남부의 기후 리스크와 높은 주거비, 북부의 상대적으로 쾌적한 여건과 저렴한 비용이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주택 구입 부담이 있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의 중위 주택가격은 2019년 1분기 31만3000달러에서 2024년 1분기 42만6800달러로 36%가량 상승했다. 2025년 1분기에도 여전히 41만6900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7% 수준의 고정금리 대출이 더해지며, 주택 구매를 고려하던 중산층 가구가 이동 결정을 미루게 되는 구조다.

이주 동기의 변화도 뚜렷하다. 팬데믹 동안 원격근무 확대에 따라 대도시를 떠났던 근로자들이 다시 사무실 복귀를 요구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도심 순유출은 점차 줄고 있다. 하버드대 JCHS에 따르면, 뉴욕시 등 고밀도 도시 카운티의 순유출은 2024년 기준 전년 대비 17% 감소했다. 교외 지역으로의 순유입도 16%, 중소 도시·비도시 지역으로의 유입은 각각 12%, 31% 감소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순유입 규모는 여전히 팬데믹 이전보다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인구 이동 구조가 단순한 유행이나 비용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과 도시구조 전반의 변화에 맞물린 구조적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제 미국의 도시성장은 국내 이주보다 국제 이민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