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금 인원 5만 6천명 넘어… 위생•의료•법적 보호 붕괴, 자살•탈출 속출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미국 전역의 이민자 구금 시설이 인권 사각지대로 전락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초강경 이민 단속 정책을 본격 추진하면서 구금 인원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로 인해 과밀 수용, 의료 방치, 법적 절차 무시, 정신 건강 악화 등 심각한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6월 15일 기준 이민자 구금 인원이 5만6천 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수용 한도인 4만1천 명보다 1만5천 명 이상 많은 수치다. 이 같은 급증은 트럼프 행정부가 설정한 ‘하루 3천 명 체포’ 목표에 따라 대규모 단속과 체포 작전을 전개한 결과다. <뉴욕타임스>는 구금 인원이 폭증하면서 ICE는 장기 구금 목적이 아닌 임시 수용 공간까지 활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감자들이 수일간 비위생적인 환경에 방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화장실 하나에 40명, 샤워도 못 하고 음식은 물로 넘겨

보스턴 인근에서 체포된 18세 브라질 출신 이민자 마르셀로 고메스는 ICE 사무소 지하 공간에서 6일간 구금됐다. 고메스는 한 방에 35~40명과 함께 있었으며, 화장실은 단 하나였고 샤워는 불가능했으며, 음식은 “물로 마시듯 넘길 정도로 형편없었다”고 <뉴욕타임스>에 전했다. 고메스는 그 짧은 기간 동안 7파운드의 체중이 줄었다.

이처럼 열악한 구금 환경은 다른 지역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워싱턴주 타코마에 위치한 노스웨스트 구금 센터에서는 수감자들이 운동장 이용이나 가족 송금으로 구매한 위생용품, 전화카드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는 자정 가까운 시간에 식사를 받는 등 기본 생활권이 무너지고 있다.

인권 변호사 알레한드라 곤사는 여러 수감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 자살 감시나 독방에 격리됐다고 밝혔다,

응급 상황도 급증하고 있다. 기술 매체 <와이어드>는 최근 ICE 구금소에서 발생한 911 신고가 2025년 들어 약 400건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 신고들은 자살 시도, 발작, 임신 합병증, 성폭력 등 심각한 문제들로 인한 것으로, 구금자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S.O.S 인체 구조 신호, 자살과 탈출까지… 법적 보호 무력화

이처럼 참담한 현실은 실제 죽음과 탈출로 이어지고 있다. ICE 발표에 따르면, 2025년 1월 이후 최소 10명의 구금자가 사망했으며, 그 중 두 명은 자살로 확인됐다. 마이애미에 위치한 크롬 구금센터에서는 수감자들이 운동장에서 사람들로 ‘S.O.S’라는 구조 신호를 만들어 외부에 절박함을 호소했다.

뉴저지 델라니홀 구금소에서는 수감자 네 명이 열악한 환경에 항의하며 탈출을 감행했다. 이들 중 일부는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었으며, 치료나 적절한 식사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었다고 변호인단은 밝혔다. 브롱크스 디펜더스의 변호사 그위네스 헤서에 따르면, 그녀의 당뇨병 환자 의뢰인은 필요한 식단과 인슐린 치료를 받지 못했고, 결국 혈당 쇼크로 쓰러졌다.

법적 절차는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뉴욕 변호사 앤 필스버리는 자신이 맡은 온두라스 출신 의뢰인이 ICE에 자진 출석하자 현장에서 곧바로 수갑이 채워졌으며, 이후 뉴욕에서 텍사스, 루이지애나, 오하이오 등지로 계속 이송됐다고 전했다. 필스버리는 “정부의 구금자 추적 시스템에서는 그의 이름이 사라지거나, 위치가 바뀌었다고 나와도 실제 전화해보면 ‘이미 이송됐다’는 말만 돌아온다”고 <뉴욕타임스>를 통해 밝혔다.

플로리다 습지 에버글레이즈에 ‘악어 감옥’

이와 같은 상황은 플로리다주에서 추진 중인 ‘앨리게이터 앨커트래즈(Alligator Alcatraz)’라는 구금소 계획으로 이어지고 있다. < AP통신 >에 따르면, 이 시설은 에버글레이즈 습지 한복판에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환경단체와 원주민 커뮤니티는 해당 계획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권 침해를 제도화하는 시도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편, 국토안보부는 이 같은 문제 제기를 일축했다. 대변인 트리샤 맥로클린은 “모든 구금자는 적절한 식사와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으며, 가족 및 변호사와의 연락도 보장된다”고 밝혔다. 민간 수용소를 운영하는 GEO 그룹 역시 "우리 시설은 연방 규정을 준수하며, 수용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수의 언론과 인권단체는 외부 감시가 제한된 상황에서 이러한 주장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이민법변호사협회(AILA)는 구금 중심의 이민 단속 방식에서 탈피해 커뮤니티 기반의 대안적 감시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법적 절차를 보장하면서도 구금 대신 정기 출석, 전자 모니터링 등을 활용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고 인도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민자 구금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편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는 ICE 이송 거부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며, 민간 위탁 계약을 재검토하거나 종료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미국의 이민 정책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