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나는 그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교인이었다. 나에게 교회란 모든 것이었다. 교회 건축을 하는 동안 나는 대학생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출석을 부탁한 후 교회로 와서 건축 일을 했다. 물론 지금의 관점으로는 옳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교회를 사랑했고,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던 시기였다.

나는 교회에서 하고 있던 성가대 지휘 때문에 군대도 연기하고 또 연기했다. 대학원을 다닌 후에 어쩔 수 없이 군대를 가야해서 선택한 것이 공군장교였다. 출퇴근을 할 수 있으니 교회엘 나올 생각이었다. 훈련기간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임관을 한 이후에는 교회에 출석했다.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매주 참석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일정 기간 성가대 지휘는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런 나의 근무지를 서울로 만들어주셨다. 다시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직이라는 암초가 있었지만 나는 대신 여러 번의 평일 당직을 서주는 대가로 주일 당직을 바꿀 수 있었다. 군대를 제대한 후 대우(주)에 취직했지만 그곳에 근무하면서 주일에 교회를 나갈 수는 없었다. 좋은 조건의 최상의 대우를 받았음에도 즉각 그곳을 그만두고 주일을 성수할 수 있는 교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른 교단의 신학대학원을 입학하기 전까지 교회에 충성했다. 내 젊음을 모두 교회에 바쳤다. 그런 내 열심을 하나님께서 보셨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인도하셔서 지금에 이르게 하셨다. 다니던 교회에 충성하던 시절 피아노를 가르치던 아내와 나는 우리의 힘만으로 분당에 48평 아파트도 장만하고, 가장 많은 십일조를 드리는 모범 신앙인이 되었다.(이제 나는 교회가 우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쌓아놓은 적지 않았던 재산이 내가 목표로 삼고 시작한 유무상통하는 교회로 인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는 무일푼이 되어 집에서 쫓겨났고, 나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어떤 일도 도모할 수 없는 목사가 되었다. 나는 목사가 되어 패가망신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머리 둘 곳이 없어 이곳저곳을 이사 다니며 말할 수 없는 설음 속에 살아야 했다. 무엇보다 번듯한 교회의 목사가 아니어서 누구에게 목사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목사가 되었다고 내게 존댓말을 해주던 친척들도 내가 그렇게 망한 후에는 편하게 다시 반말을 했다.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은 내게 일어난 세상의 대우를 상징하는 일이 되었다.

나는 작아지고 또 작아져야 했다. 내가 그렇게 가난해진 후 가장 먼저 내게 등을 돌린 것은 내 혈연인 형제들이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내 형제들은 나를 제외하고 자기들만의 모임을 계속했다. 물론 내가 목사가 되기 전에는 나도 거기에 함께 했다. 내 형제들은 한사코 자신들이 나를 버리거나 제외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환갑잔치를 하고 칠순, 팔순잔치를 하면서 내게 연락을 한 적은 없다.

형제들이 그럴진대 다른 사람들이야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처음에 몇몇 아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매달 약간의 돈을 보내주기도 했지만 아는 사람들이 보내는 돈은 얼마 가지 않아 끊어졌다.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몇몇 아내의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내 모든 아는 사람들은 내게서 끊어졌다.

내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런 관계의 단절과 그 결과인 외로움이었다. 가난해진 후 돈 못 버는 가장이 된 나에게 가장 힘든 것은 내 가족이었다. 그러나 내 가족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아내는 늘 내게 가장 힘든 걸림돌이었고, 돈을 못 버는 나를 쫓아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외톨이가 되었다. 그런 내게 큰 힘이 되는 사람들 몇몇이 등장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진주에서 교회를 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한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를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다. 어떻게 나를 아느냐고 했더니 내 글을 설교시간에 읽어왔다는 것이다. 무려 3년이나 그랬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사실과 그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기절할 만큼 감동했다. 일 년 후 그 교회에 방문했고, 먼 거리임에도 방학 때는 그 사람이 나를 찾아와 만났다. 이 일은 내게 정말 큰 기쁨이었고, 정말 큰일이었다. 더구나 내가 가장 어려움에 처한 시기에 이 사람이 내게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또 그 사람의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서 발인예배를 인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이 일은 내가 전에 경험했던 관계의 단절과는 종류가 달랐다. 나는 내 삶의 거의 모든 의미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충격이었다. 정말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아내에게도 이 일을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9개월이 흘렀다. 물론 그동안에도 다른 관계의 단절은 계속 이어졌지만 이 사람과의 단절은 다른 모든 관계의 단절과는 차원이 달랐다. 내 글을 거의 이십 년 가까이 읽었고, 내가 썼던 글의 거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그 사람이 나와의 관계를 단절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 도덕적 흠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게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 나를 찌르지 않는다. 다만 이 일을 통해 주님이 내게 가르쳐주시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어떤 일을 하시려는지를 생각할 따름이다. 내가 완벽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옳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내가 다른 어떤 판단을 받을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더도 덜도 아닌 나일뿐이다.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나 역시 그런 하나님을 사랑할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사람과의 관계의 단절이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아픈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모진 인생이다. 내가 오로지 추구하던 단 한 가지가 의미를 상실했다. 힘든 삶을 살았다. 내게 남은 감정은 그런 나를 버리지 않고 오늘날까지 사랑해준 내 가족이 고마울 따름이다.(그것도 주님의 보호하심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다. 이제 나는 완전히 nothing(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어제 작은 아이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빠 칠순에 원하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원하는 것이 없다. 나는 더 이상 무엇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아내는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도모할 수 없는 노인이 되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나 나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 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내 남은 삶이 야곱과 같을지 모세와 같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물론 나는 모세와 같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을 결정하시고 아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시다.

내 인생의 가장 아픈 일을 경험함으로써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온전히 내 모든 것이 되셨다. 그분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욥이 본 하나님을 보았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