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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통일
 
20년 개성공단의 산증인 "남과 북 기적의 공간이 사라진다"
[인터뷰] 김진향 전 개성공업지구 지원재단 이사장 "문재인 정부 때 재개했어야"


▲ 김진향 전 개성공업지구 지원재단 이사장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나 총선을 앞두고 남북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과 문재인 정부 당시 개성공단 재개가 이뤄지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서울=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 = 정부는 지난 1월 그동안 개성공단 관리·운영을 맡아온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지원재단)을 해산하고 청산 절차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이제 국무회의에서 해산을 의결하면 개성공단은 운영 전면 중단 8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에 북측이 제공한 토지와 노동력이 결합해 탄생한 개성공단은 남북교류협력의 새로운 장을 마련한 역사적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현대아산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공업지구개발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고,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12월에 첫 생산을 시작했다.

남북관계에 따라 부침을 겪긴 했지만, 개성공단은 천안함 사건 이후 단행된 5.24조치와 연평도 포격 도발 때도 문을 닫지 않았다. '일방적 퍼주기'라는 정치공세 속에도 개성공단은 한반도 긴장을 해소하는 안전판으로 기능했다.

한때 개성공단에는 5만4000여 명의 북측 노동자와 3000여 명의 남측 업체 관계자들이 함께 근무했다. 처음 18개에서 시작한 입주업체도 124개 업체로 늘어났다.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개성공단 조업을 전면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명분은 "개성공단 가동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이용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만 당시에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나왔다.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된 후에도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던 2017년 북한은 화성-14형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6차 핵실험을 단행해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핵 버튼'을 노골적으로 언급하며 서로를 위협했다. 한반도에 짙게 드리웠던 전쟁의 그림자는 2018년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서 극전인 반전을 맞이했다.

한 해 동안만 남북 정상이 세 차례 만나면서 남북간에는 급속도로 해빙분위기가 형성됐고,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도 곧 재개되리라는 희망적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북미-남북 관계가 냉각되면서 한반도의 봄날도 막을 내렸다. 그동안 산소호흡기로 간신히 연명하는 중환자 신세였던 개성공단은 윤석열 정부에서 사망선고를 받고 사라지게 됐다.

김진향 전 개성공업지구 지원재단 이사장은 개성공단의 20년 역사와 함께한 인물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대북정책 수립에 관여했고,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으로 대북협상을, 2017년 12월부터 2021년 8월까지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과 관리위원장을 지냈다.

김 전 이사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은 남과 북이 함께하며 매일매일 평화와 작은 통일을 만들어 냈던 기적의 공간"이라면서 "개성공단이 사라진다는 것은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김 전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개성공단 재개가 이뤄지지 못한 것은 "정책당국자들의 남북관계와 북한·통일문제에 대한 인식의 오류와 한계" 때문이었다면서 "총체적으로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가겠다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철학적 통찰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김 전 이사장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 7일 <오마이뉴스>에서 진행됐다. 김 전 이사장은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총선에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예비후보로 출마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만나면 바로 알게 되는 평화... 그 상징이 사라진다"


▲ 개성공단 가동 "중단"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1일 오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 출경 허가를 받은 입주업체 관계자 외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 유성호

- 정부가 지난 1월 초 그동안 개성공단 관리·운영 업무를 맡아온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지원재단)을 해산하고 청산법인을 세운다고 밝혔다.

"지원재단을 청산하겠다는 정부 내부방침은 진즉 결정됐고, 이걸 언제 발표하는가 하는 타이밍만 보고 있었다. 지원재단 해산을 의결할 국무회의가 곧 열릴 텐데, 국무회의에서 의결을 하는 순간 개성공단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 개성공단이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만약 언젠가 다시 시작하려면 남측은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을, 북한은 개성공업지구법 같은 법을 또다시 제정해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한 번 만들어 봤으니 아예 없었을 때보다 훨씬 쉽긴 할 것이다. 하지만 형식상 법·제도적으로 개성공단이 사라졌다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남북 평화의 상징이 사라졌다는 점일 것이다."

- 김 전 이사장에게 개성공단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개성공단이 우리에게 줬던 가장 확실한,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교훈이 하나 있다. 남과 북이 평화를 만들고 통일한다는 건 너무 쉽고 간단하다는 것. 사전에 서로의 법제도, 가치, 문화, 윤리, 도덕 등을 몰라도 '만나면 끝'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좀 더 알고 만나면 좋긴 하겠지만, 서로 잘 몰라도 만나면 된다는 것, 이건 어마어마한 발견이었다. 북측 사람들과 만나는 순간 '이들 역시 진심으로 평화와 통일을 원하고 있구나'란 사실을 바로 알게 된다.

정말 애석한 것은 대북 정책 결정단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걸 체험적으로 겪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통일이나 평화를 관념으로만 생각한다. 개성공단에 근무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문제가 있으면 그냥 만나 보라고. '만나서 대화해 보고, 밥 한 끼 같이 먹어보고, 술 한잔 나눠보면 다 풀리더라'고. 개성공단은 이런 사실을 그곳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에게 실증적이고 체험적으로 가르쳐 줬다."

-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고 있었다가 없어지는 것이 역사적으로 보면 더 어려워진 상황 아닌가 싶다.

"맞다. 하지만 별로 걱정 하지 않는다. 우리가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 건가'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북정상회담 같은 탑다운 방식을 생각한다. 난 오래전부터 이제 이런 방식은 이미 더 이상 유효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고 봤다. 일단 북측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앞으로 그런 회담 자체를 안 할 거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좋은 방법은 그냥 많이 만나는 것이다. 여권 들고 중국이나 일본 여행 가듯이 북한도 그렇게 만나면 된다. 특별히 남북 당국이나 정상 간에 어떤 합의나 선언을 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오고가며 만나게 되면 삽시간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평화적 남북관계 복원의 불가역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건 금강산 관광하고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 봇물을 터트리면 된다."

-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있는가.

"'하노이 노딜' 직후인 2019년 3월 중순에 이런 내용을 청와대에 문서로 보고했다. '(하노이 노딜을 통해) 미국은 북측과 관계 개선을 안 하기로 했고, 이제 남북이 남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대북제재와 무관한 인적교류 딱 하나 밖에 없다'고.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은 인적교류를 전면적으로 하자는 데 합의했다. 금강산 관광은 제재와도 아무 관계없으니 그냥 다시 재개하면 됐다. 그런데도 그걸 하지 않다가 타이밍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에 망연자실한 입주업체 직원들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1일 오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직원들이 물품을 싣고 복귀하는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인식의 오류와 한계 때문이었다. 총체적으로 남북관계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풀어갈 건가 하는 큰 그림을 그릴 통찰과 철학적 인식이 없었다고 본다. 인식의 오류와 한계가 정책 실패를 만들었고, 더 나아가서는 '애초부터 할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남북이 평화적 관계로 가는 것을 미국이 반대하는 건 지난 70년 동안의 상수였다. 미국이 대놓고 남북협력을 지지하고 성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 때도 그랬고 노무현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한반도 평화체제 담당관으로 일했기 때문에 협상 내용을 잘 알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대놓고 개성공단을 반대하면서 안 된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보내 미국을 계속 설득했다. 미국은 개성공단 착공식조차 연기시키려고 했는데, 그래도 노 대통령은 '이건 우리의 주권이다. 평화를 만드는데 개성공단 방식만큼 좋은 게 없다'고 밀어붙였던 것이다."

- 개성공단 재개 문제를 놓고 정부관계자들과 대립하기도 했던 걸로 알고 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 초기 마스크가 부족해 난리가 났을 때, 방송에 나가 한시적으로라도 개성공단 재개하면 마스크 부족 문제는 금방 해결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날 밤에 정부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음날부터 나가지 말라고 하더라. 그래도 계속 떠들겠다고 했더니 또 다른 인사가 전화를 해서 '진짜 이러지 말라'고 했다. 요약해 보면 '미국이 반대하고 싫어하는데, 왜 자꾸 그러느냐'는 것이다. 내가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 '미국의 반대가 무서운 거냐. 아니면 스스로가 개성공단 재개를 반대하는 거냐'고."

- 일각에서는 개성공단을 북한의 '달러 박스'라고 비판했다.

"뻔한 거짓말이다. 적대적 분단 체제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세력들에게 개성공단은 눈엣가시였다. 뭐라도 꼬투리를 잡아서 공단 문을 닫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북측 노동자들에게 주는 임금이 달러 박스라느니, 북한 정권의 돈줄이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다.

2004~2005년 개성공단 초창기에 북한 노동자가 연장근무, 야근·특근까지 하면서 월 6만 원을 받았다. 일요일 4일 중에 이틀 휴일 근무까지 한 노동자에게 고작 6만 원 월급 주면서 이걸 퍼주기라고 하는 인간들은 정말 사악하지 않은가.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기업인들도 북측에 대량 살상무기 개발 자금을 공급하는 사람들로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어야 했다. 얼마나 억울했겠나. 피눈물 나는 이야기다."

"정부, 총선용으로 장난 치는 순간... 선거 자체가 없어질 수도, 경거망동 말아야"

-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경의선 육로를 북한이 방벽으로 차단하고 도로 옆으로 지뢰를 매설한 사실을 최근 군 당국이 파악했다. 최근에 김정은 위원장은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공언한 가운데, 해외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는 '북한이 전쟁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측의 태도 변화에는 전제가 있다. '민족성이 완전히 사라진, 민족의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족속들하고 통일을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라는. 남측은 민족의식이 거세됐는데, 자신들만 계속 통일을 떠든다는 것 자체가 전쟁 위기가 임박한 상황 속에서 모순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측이 계속 자신들을 주적이라고 하니, '그래, 좋다. 남측이 계속 적대를 원하면 우리도 적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휴전 70년 만에 남북의 적대적 분단체제가 완벽하게 수립이 됐다.

'북한이 전쟁을 결심한 것 같다'는 분석을 좀 더 정확하게 설명을 하면 '전쟁을 피하지 않을 결심을 한 것'이다. 자신들을 건드리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먼저 시작하지는 않겠지만, 건드린다면 절대 피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전쟁은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것인데, 절대 피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기다리고 있다가 준비된 행동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미 북한은 작년 9월에 핵 무력 정책을 법제화하고 공개했는데, 남측을 동포가 아닌 미국의 일개 주로 보는 시각이면 어떤 행동을 못하겠는가."

- 최근 신원식 국방부장관은 "북한이 4월 총선을 앞두고 대남테러를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고, 김영호 통일부장관은 '자유의 북진정책'을 선언했다. 남북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그동안 한국의 보수세력은 선거 때만 되면 의도적으로 안보 위기를 고조시켜왔다. 그런데 올해 상황은 이전의 '총풍'이나 '북풍'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전에 남북은 완벽히 적대적인 교전국가가 아니었다. 한민족, 같은 동포라는 형제·자매적 관점이 있었다. 그래서 한 쪽에서 도발한다고 해도 확전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총선 이전에 사소한 무력충돌이라도 발생하면 감당할 수 없는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파국적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총선을 유리하게 만들려고 장난을 치는 순간 총선 자체가 없어질 수가 있다. 정말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

21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국회가 최소한 한반도 종전 결의안, 전쟁 결사반대 결의안이라도 좀 내놨으면 좋겠다. 시민사회도 눈앞으로 다가온 전쟁을 직시하고, 온 힘을 동원해서 평화의 여론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모든 국민들이 비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난 종교인은 아니지만, 요즘 매일 아침 기도를 한다. 돌아가신 문익환 목사님, 김대중 대통령님, 노무현 대통령님을 부르면서 8천 만 민족을 지켜줄 지혜를 달라고 기도 한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4년 3월 12일, 화 3:1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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