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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통일
 
트럼프의 충격 발언... 뉴욕타임스는 왜 한국 사례 언급했을까
[김종성의 히,스토리] 애치슨라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금 진행 중인 공화당 경선은 물론이고 대선 본선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지난 10일(현지 시각) 유세 중에 던진 발언은 서방 동맹국들을 화들짝 놀라게 만들었다.

유세 현장에서 트럼프는 과거의 일화를 소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의에서 '큰 나라의 대통령들 중 한 명'과 했다는 대화의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는 "만약 우리가 돈을 내지 않고 러시아의 공격을 받으면 당신은 우리를 보호해 주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트럼프가 "난 당신네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는 일이 나토 회의 중에 있었다고 전했다.

그날 회의 때 트럼프는 "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내키는 대로 모조리 하라고 격려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나토 회원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지 않으면, '원하는 대로 하라'며 러시아를 부추기겠다는 말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 불상사를 겪지 않으려면 "당신네가 갚아야 할 대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돈을 더 안 내면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을 공격하도록 부추기겠다는 이 발언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더 많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청신호를 주려 한다"고 비판했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그 발언이 "동맹국이 서로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가 될 수 있다는 서면 성명을 발표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엑스(트위터)를 통해 "나토의 안보에 관한 무모한 발언"이라고 비판했고. 독일·체코 외교부와 폴란드 국방부 등도 직간접적인 비판에 가세했다.

한편, 11일 자 <뉴욕타임스>의 '친구보다 적을 좋아하는 트럼프, 국제질서 뒤집겠다고 위협(Favoring Foes Over Friends, Trump Threatens to Upend International Order)'이란 기사는 이런 전직 대통령은 처음 봤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비판론을 전개했다.

이 기사는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동맹국들을 공격하도록 선동할 것이라고 시사하는 일은 이전에 없었다"라고 한 뒤 "푸틴과 중국 시진핑 같은 사람들을 대담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 뒤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사건 하나를 소환했다.

"역사는 이것이 더 많은 전쟁을 낳을 것임을 시사한다. 1950년에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남한을 포함시키지 않는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을 말했을 때, 북한은 5개월 뒤 남한을 침공해 미국을 끌어들이는 유혈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 바깥에 놓인 한국

애치슨 국무장관은 알래스카에 인접한 알류산열도에서 시작해 일본열도-오키나와-필리핀을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으로 공표했다. 애치슨은 이 정도면 미국 안보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UP통신 기사를 옮겨 실은 1950년 1월 12일자 <동아일보> 1면 중간은 "애치슨 국무장관은 10일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두하여 미국은 일본·충승(沖繩)·비율빈(比律賓)을 토대로 하는 난공불락의 태평양 방위선을 가지고 있다고 증언했다"라고 보도했다.

한국과 대만을 태평양방위선에서 배제한 애치슨선언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1949.10.1)하고 패자인 국민당이 대만으로 천도(12.7)한 직후에 나왔다. 12월 30일에는 미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일본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조됐다. 믿었던 국민당이 패배한 데 따른 충격과 더불어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에 휘말리지 않고 일본을 더욱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의중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선언이다.

이 선언은 38도선 인근에서 군사 충돌이 잦던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넣는 데 일조했다. 그렇듯이, 방위비를 더 내지 않으면 나토를 돕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언명은 나토 회원국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지적이다.

그런데 한국과 대만의 안보를 불안하게 만든 애치슨 라인은 미국의 안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 손해될 것이 없었다. 애치슨 라인 하에서도 미국인들은 '난공불락'의 안도감을 느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는 대규모 국가가 없어서 군대 이동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이는 미국이 서부 방위선을 태평양 동쪽 연안이 아닌 서쪽 연안에 설정하는 배경이 됐다. 태평양 서쪽 대륙이 아닌 태평양 서쪽 섬들에 이런 라인을 그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구체화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마이클 그린 부소장이 2015년 8월 13일 이 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한 '1945년 8월 미국의 태평양 해양전략의 요약(August 1945: A Snapshot Of American Maritime Strategy In The Pacific)'은 어니스트 킹 해군작전사령관이 1943년 7월 24일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고 소개한다.

"제국주의에 대한 비난을 받든 않든, 이 전쟁 후에 우리는 위임된 섬들, 심지어는 솔로몬제도까지 차지하고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태평양을 지배해야 한다."

이 글은 섬과 섬을 연결하는 '섬 사슬' 혹은 도련(島鍊線)을 통해 태평양 지배권을 굳히는 전략이 루스벨트 행정부 내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고 설명한다. 이 전략에 따르면, 한국 같은 대륙국가는 서태평양 방위선의 바깥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애치슨 라인의 등장이 이 시기에 이미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 섬 사슬 전략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는 한국전쟁 발발 소식을 들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첫 반응에서도 나타난다.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첫 반응은 '한국이 안전할까?'가 아니었다. '일본이 안전할까?', '섬들이 안전할까?'였다. 위 기고문은 애치슨선언 발표 뒤의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그해 6월, 북쪽이 남쪽을 공격했다. 이 소식을 들은 트루먼의 첫 반응은 일본과 연안의 섬 사슬에 대한 위협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

미국(미군정)이 제주 4·3항쟁(4·3사건)을 잔혹하게 진압한 핵심 동기 중 하나는 그리스와 더불어 한반도를 세계 냉전의 기지로 만드는 데 있었다. 제주도민들을 대규모로 학살하면서까지 한반도 지배에 애착을 보인 미국이 한국을 애치슨라인에서 배제한 것은 언뜻 보면 모순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는 섬 사슬에 배치된 해·공군 병력으로 섬 사슬 서쪽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기초한 것이었다.

미국 극동전략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회동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9년에 <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30집 제2호에 실린 신복룡 건국대 교수의 논문 '군정기 미국의 대(對)한반도 점령정책: 1945-1948'은 이 당시 미국의 극동정책이 "급박한 전시가 아닌 한 가급적 육전대의 상륙을 기피"하는 것이었다며 "만약 극동(한국)에서 군사적 위험이 발생한다면 해·공군 전력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전통적인 전략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논문은 미국이 동아시아 대륙을 '늪'으로 생각했으며 늪에 빠지면 '접촉성 피부염'이 생길 수 있으므로 가급적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섬 사슬'에서 미국 안보를 지키다가 부득이한 경우에만 사슬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일본은 '늪'이 아닌 '섬 사슬'의 일환이다. 이런 곳은 미국 안보를 위해 적대국가가 침입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다. 반면, 한국은 '늪'이었다. 섬 사슬의 바깥인 이런 데서 전쟁이 발발하면 섬 사슬의 해·공군 전력으로 공략하면 된다고 미국은 인식했다.

애치슨라인은 그런 인식의 산물이었다. 15년 전에 나온 신복룡 논문은 "이러한 원칙은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한다.

애치슨라인 당시의 트루먼 행정부는 '일본에서는 전쟁이 나지 않게 하고 한국에서는 전쟁이 나면 도와준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뉴욕타임스>가 트럼프 발언의 위험성을 설명하면서 예시한 애치슨라인 속에는 그처럼 무책임한 면이 들어 있었다. 이런 측면을 접하게 되면. 트럼프 발언에 화들짝 놀랐던 서방 국가 지도자들은 한 번 더 기겁할 수도 있다.

애치슨라인의 밑바탕에 깔린 미국 극동전략의 기조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 및 기시다 총리의 사이에 끼어들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한미관계가 미일관계에 근접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차하면 미일 양국이 한국을 희생양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시사한다. 유사시에도 미일은 한국과의 군사협력을 유지하려 하겠지만, 한국전쟁이 증명하듯이 한국이 입는 피해와 미일이 입는 피해는 현격히 다를 수밖에 없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4년 2월 13일, 화 7:2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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