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동료 택배기사들, 달달한 커피로 맺어진 끈끈한 사이

(서울=오마이뉴스) 구교형 기자 =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연재 첫 글에 한 분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종교인이 직업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종교인 눈에는 종교인이 그냥 놀고먹는 사람처럼 보인다.'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지만, 일단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 알기에 동감이다. 실제로 기독교인으로서, 목사로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생산에 직결되지 않는 일이라고 다 '놀고먹는 사람'은 아닌 듯하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생산과 성장에 직결되지 않아도 의미를 찾는 존재라서 일 것이다. 종교뿐 아니라 철학이나 예술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큰 힘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럴듯한 논리를 앞세워 뜬구름 잡는 얘기나 하고 힘든 일을 기피하는 것은 우리 같은 종교인이 늘 조심해야 할 일이다. 나 역시 단지 목사라고 택배(현장) 일하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나 되는 양 여겨지는 것이 탐탁지 않다. 상황에 따라 '투잡' '쓰리잡' 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목사라고 못할 이유가 뭔가?

그래도 현역 목사로서 택배(때로는 대리운전)를 하며 새롭게 느낀 소회는 적지 않다. 2015년 처음 택배를 시작했을 때 마음은 두 가지였다. 우선 목회와 직업 운동을 같이하는 사람으로서 부실한 가장 역할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부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의미'를 찾는 일보다는 좀 더 땀 흘리고 고생하며 '더럽고 아니꼬워도 먹고 살아야 해서 참아내는' 일을 찾았다.

생활정보지를 뒤적이고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시간제 알바(써줄지는 모르지만) 외에는 배달밖에 없었다. 몇 개를 동그라미 치고 전화를 돌려봐도 이래저래 맞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택배.' 집에서 가깝고 근무일과 조건을 상담 가능하다고 해서 용기 내어 전화했다. 전화로 용건을 밝히니 점장이라는 분을 바꿔줬다. 점장에게 내 신분을 밝히고 목회 중이라 매일 하기는 어렵고 주 4회만 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무조건 오란다.

다음 날 사무실로 찾아가 점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서로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어디서 봤는데'를 연발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20여 년 전 청년 시절 친구를 통해 알게 되어 몇 번 만났던 동갑내기 지인이었다. 원하는 대로 일을 줄 테니 내일부터 나오란다. 사실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됐는데, 내뱉은 말이 있어 일단 나가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가족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니 별로 힘쓰며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힘든 일을 할 수 있냐며 반대가 심했다. 가족이 걱정하지 않도록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며 '일단 해보겠다'고 하고 다음 날부터 나갔다.

지도 한 장 달랑 주고 혼자 배송하라고

첫날 어느 젊은 택배 기사를 따라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의 철공소 많은 동네로 가서 처음으로 택배를 배웠다. 이틀 정도 따라 나가고 셋째 날부터는 지도 한 장 달랑 주고는 혼자 배송하라고 한다.

분명히 이틀이나 같이 따라 나간 곳인데 왜 그렇게 생소한지 골목도 거기가 거기 같고 지도를 아무리 이리저리 돌려봐도 한 집 찾기가 그렇게 힘들 수 없었다. 마치 부대도 전우도 다 철수한 전쟁터 한복판에 혼자 낙오된 병사 같았다. 무겁고 힘든 건 둘째 치고 집 찾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지금은 지도 같은 것 없어도 어디든 조금만 돌아다녀 보면 어렵지 않게 배송을 한다).

결국 가리봉동에 정착해 그렇게 1년 가까이 배송을 했다. 초보의 구역치고는 너무 어려운 곳이었지만, 자꾸 헤매니 더 빨리 익힐 수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교인들도 내 일을 환영하고 응원해 주었다.

교회 목회를 쉬고 있던 2020년 초 점장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다시 하면 어떻겠냐고. 경험해 봤기 때문에 더 부담이 됐다. 제대한 지 몇 년 만에 재입대하는 심정으로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식 기사로 다른 이들과 동일한 주 6일 근무였다. 가리봉동, 구로동, 가라는 곳에 다 갔다. 참 신기했다. 몇 년 만에 다시 시작했는데도 몸이 기억한다는 말이 딱 맞았다. 몇 개월 고생하니 금세 익숙해졌다.

2년 가까이 일하다가 코로나에 걸려 2주간 호되게 앓았다. 마침 교회를 다시 시작할 마음이었기에 정식 기사는 2021년에 그만두고 지금은 '펑크 전문'으로 누가 아프거나 그만두어 일시적 공백이 생기면 원하는 대로 구멍을 메워준다. 5~7월 사이에도 수년 동안 맡아왔던 기사가 그만둔 구로디지털단지 부근 구역을 맡아 배송했다가 후임 기사가 와서 인계하고 그만두었다.

모두 잘 알겠지만, 코로나 이후 고객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나는 2015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동료기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힘을 쏟았다. 좋으나 싫으나 매일 아침 물품 정리 3시간 안팎을 무조건 함께 있어야 한다.

아침에 물품을 정리하기 위해 내가 서는 자리는 뱀 꼬리처럼 길게 이어진 컨베이어 벨트 연결망 제일 끝이다. 마치 우리나라 지도에서 보면 동쪽 해안선 끝자락에 꼬리처럼 튀어나온 포항처럼 우리만 따로 5명이 위치해 있다. 우리 독수리 5형제는 정말 친했다. 30~50대로 나이는 내가 제일 많았다.

힘든 아침 시간이었지만, 매일 우리는 갑질 고객 욕도 함께 하고, 농담하고 장난치며 웃기도 하고, 무거운 물건 불평도 함께 하고, 간식도 나눠 먹고, 그러다가 다투고 삐져 며칠 말을 안 하기도 하며 지냈다.

코로나도 서로 나누는 동료

일단 밖에 나가 배송을 시작하면 마칠 때까지 식사를 거르기 일쑤다. 그래서 특히 코로나 때는 물품 정리 마치자마자 우리 5형제는 3층 구내식당에 우르르 몰려 올라가 정신없이 밥을 먹었고 정오 가까이 배송지로 흩어졌다.

가끔은 지하 3층에서 함께 일하는 우리 대리점 40~50명쯤 되는 전체 기사에게 간식을 돌렸다. 약과, 초코파이, 밤빵, 건빵, 요구르트처럼 여러 개 들이 한 세트처럼 당분 많고 한입에 쏙 들어가는 것들이다. 건강식품과는 거리가 멀지만 우리같은 사람들은 땀 흘리고 지칠 때 당분 보충이 꼭 필요하다.

내게 우리 독수리 5형제는 항상 1순위였다. 간혹 "뭐 없어요?" 하며 먹을 것을 찾아 오는 기사도 있다. 그러면 나가서 먹으려고 운전석에 두었던 걸 찾아 주기도 한다. 몇 푼 안 되는 것이지만 함께 나눠 먹으면 정말 즐겁고 많이 친해진다. 나보다 10살 이상 연하인데 젊어서부터 이 답답한 지하(겨울의 추위보다 여름의 덥고 축축한 느낌이 더 힘들다)에서 매일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짠할 때가 많았다.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인 자판기 커피 공급이었다. 최근에 없어졌으나 지하 3층 구석마다 몇 대의 커피자판기가 있었다. 왕창 땀 흘리고 마시는 달달한 커피 한 잔은 정말 맛있고 순간적으로 힘이 솟게한다. 지하 세계의 기쁨 중 하나였다.

오직 100원짜리 동전밖에 안 들어가기 때문에 동전이 없으면 입맛만 다시는 기사들이 많았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씩 회사 앞 은행에 가서 100원짜리를 5000원어치씩 바꿔왔다. 내 트럭 적재함 앞 종이컵에 넣어놓고 맘대로 가져가 커피를 마시게 했다. 대개는 그냥 가져가지 않고 지폐나 500원짜리를 바꿔갔으니 환전상이 된 셈이다. 내 위치가 제일 끝이고 자판기에서 가까워 누구나 거쳐 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2021년 내가 떠나고 나니 예전처럼 몰고 다니며 웃겨주는 사람이 없다면서 섭섭해하며 다시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곤 한다. 내가 말한 적도 없는데 어찌 알려져 사람들이 나를 '목사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중에 기독교인이 많아 때로는 신앙 상담 같은 걸 해오기도 하고, 아픈 사람은 기도해 주기도 했다.

어느 날 동료 하나가 안 보여 찾으니 운전석에서 끙끙 앓고 있었다. 같은 기독교인이라 기도해 주었다. 다음날 내가 아파서 검사해 보니 코로나에 옮았다. 우리는 코로나도 서로 나누는 동료가 되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4~15)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