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화 되고 있는 '티니안'을 보고 정선 탄광촌을 떠올리다

사이판에서 약 30 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티니안' 이라는 작은 섬이 위치하고 있다. 비행기가 착륙할 즈음해서 한 눈에 들어오는 그 섬의 경관은 한 폭의 그림이다. 단아하게 섬 중심에 자리잡은 작은 산을 끼고 사방으로 은빛 파도가 넘실거린다. 기후는 무덥지만 남 태평양바람과 오후가 되면 한 번씩 내리는 스콜이라는 비 때문에 그다지 더위를 못 느낀다. 그러나 그러한 청정한 자연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슬픔의 역사가 세월에 밀려 웅크리고 있다.

배 선착장 옆 초록빛 색깔의 바다에는 2차 대전 말 미군 폭격기에 의해 격침된 전함이 반쯤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당시 전투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간다. 희생된 일본인들의 영혼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묵념을 하며 눈물을 적시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다. 일본이 패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원자 폭탄을 실은 두 대의 B-29가 일본 하늘을 향해 발진한 곳이라서 일본인들에게는 한이 맺힌 섬이다.

티니안 섬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약 8 만의 인구가 살고 있었던 그 섬을 현재 약 인구 4 천명 정도의 원주민이 지키고 있다. 섬 마을 입구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첫 눈에 들어오는 작은 한국인 교회와 신(申) 씨 성을 가진 검은 피부의 원주민들이 그 곳에 내려진 한인들의 뿌리를 느끼게 한다. 약 40여 가구의 한인들이 살고 있지만 전쟁말기 징용당한 많은 한국인 노무자들이 그 섬에서 희생되었다. 약 40여 가구의 한인들이 살고 있지만 전쟁말기 징용당한 많은 한국인 노무자들이 그 섬에서 희생되었다. 섬 한 가운데 안개가 자주 끼는 숲 속에 쓸쓸히 서있는 한국인 위령탑이 그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이 같은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티니안 섬에는 아직도 어두운 그늘이 도사리고 있다. 마치 화려한 라스베가스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음산함을 보는 것 같다. 미국의 직접 통치를 거부한 사이판 자치 정부는 경제 타개책으로 이 섬에다 도박산업을 90 년대 초에 시작하여 1개의 카지노 호텔과 약 20 군데의 스롯머신 장을 허가 하였다. 열악한 문화 환경으로 인해 주민들의 대부분은 여가 시간을 도박장에서 소비한다. 정선에 카지노 산업이 들어와서 그 지역 주민들이 일차 피해자들이 되고 있듯이 노름 산업은 이 곳 주민들의 주머니와 마음을 척박하게 하다 못해 삶 자체를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다. 도박산업은 이 곳 주민들의 주머니와 마음을 척박하게 하다 못해 삶 자체를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다.

남편 말리다 홧김에 도박 빠져 가게 날린 부인

노름에 빠진 남편을 설득하는데 지친 부인이 홧김에 노름을 하여 몇 년간 피 땀을 흘려 일구어 놓은 가게를 하루 아침에 날려 보내는 가하면, 배우자가 밤새우고 노름 장에 있는 사이 이웃 사람과 정을 통하다가 온 동네가 뒤 집어 지기도 한다. 노름 빛에 견디지 못해서 야반도주하는 사람도 간간히 발견되기도 한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늘 노름이야기였다. 외지에서 온 이방인이 돈을 갖고 있으면 빠른 시간 내에 친구가 되지만 돈이 다 털려 버리면 차갑게 외면하는 그 섬의 정서는 인간의 착한 본성마저 고갈 시켜버렸다. 그 섬에서 3개월간 머물었던 필자는 그 섬 주민들 가운데 돈을 따서 팔자를 고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와 티니안 섬이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도박 문화로 인해 삶 자체가 쉽게 메마를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노름이 생활화가 된 사람들에게는 대박을 한번 터뜨려 보겠다는 사행심보다는 그간 잃어 버린 돈을 찾자는 생각으로 습관적으로 그 곳을 찾는다. 그렇다고 익숙해진 노름 외에는 마땅히 재미있는 일이 없어 몸이 피곤할 때까지 밤새워 자리를 지킨다. 그것을 중독이라기 보다는 그냥 노름의 관성에 자기의 몸과 마음을 맡겨버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밖에서는 단돈 1불에도 벌벌 떨면서 노름장내에는 몇 백 달러를 아까와 하지 않는다. 마지막 동전 한 닢을 기계에 밀어 넣는 가운데서 느끼는 처절함은 인간의 감성과 이성을 바닥까지 고갈 시킨다. 희망이 실종된 채 삶이 우울한 잿빛 색깔로 다가 오기도 한다.

사행심 조장에 앞장서고 있는 지방 정부

DJ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선 지역등 탄광촌에 카지노 사업을 허용한 이후 한국의 지방자치 정부는 앞 다투어 노름 산업을 유치하려고 혈안이 되고 있다. 국민 전체를 사행심에 빠뜨리게 하는데 정부가 앞 장서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한 노름 산업이 라스베가스처럼 외지에서 온 관광객을 겨냥하여 마케팅을 하고 있지 못 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 온라인 기술의 발전으로 도심지 한복판 빌딩에서도 밤 세우며 경마 게임에 배팅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하루 벌어서 그날을 살아가는 도시 근로자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기도 한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 주위에 스며들고 있는 노름 공해를 막기는 역부족인 것 같다. 도박산업이 뿌리를 내리면서 이미 이권을 챙긴 기득권층과 정부관료 및 정치인들은 그러한 사회문제에 대해서 애써 모른척 하고 있다. 스스로 자기를 제어하는 엄격한 생활정신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여 막막하기만 하다. / 이훈주 박사 (본보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