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시대의 필독서,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 대중의 반역 >

현대사회에서 대중만큼 자주 쓰이는 어휘도 많지 않을 것이다. 대중은 민중이나 시민, 국민 등에 함유된 사회-정치적인 의미보다 한결 광범하고 포괄적이다. 오늘날 여러 사회계급이나 계층을 아우르면서 문화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개념으로 대중을 이해하면 편할 것 같다. 왜냐면 우리는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에 익숙한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주저 <대중의 반역>(1930)에서 대중의 개념을 매우 명징하게 설명한다.

"대중이란 특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에 대해 선악의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동일시하면서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 모두를 의미한다." (20쪽)

이 에스파냐 철학자가 지적하는 '특정한 기준'이란 절차, 규칙, 예의, 간접적인 방식, 정의, 이성 등을 가리키며, 그것을 그는 '문명'이란 단어로 요약한다. 하지만 대중은 문명을 거부하고 '지금'과 '여기'에 함몰된 채 자아만족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문명의 원리와 이론에 전혀 무관심한 대중이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사실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무식한 식자'와 대중, 그리고 '뛰어난 소수'

여기서 특기할만한 것은 현대사회의 전문가집단에 대한 저자의 통렬한 비판이다.

"전문가는 자신이 연구하는 우주의 지극히 미세한 어떤 분야는 잘 알지만, 나머지 분야는 전혀 모른다.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영역과 무관한 것은 모르기 때문에 유식한 자도 아니고, 과학자로서 미세한 전공분야는 매우 잘 알기 때문에 무식한 자도 아니다." (153쪽)

<대중의 반역> 저자는 그런 전문가를 '무식한 식자'라고 규정한다. 그들은 자기의 전문영역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 대해서도 전문가를 자임하며, 해당 분야 전문가의 견해를 경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정치와 예술, 사회관습 등과 같은 분야에서 대중이 취하는 자세와 입장을 고스란히 되풀이함으로써 대중의 지배를 가중 시키고 있다.

그런데 사회 안에는 대중과 함께 진정한 의미에서 '선택된 소수'가 존재한다. 선택된 소수는 우수한 인간과 동의어로, 그들은 끝없는 긴장과 힘겨운 훈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탁월한 것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바치며, 질서와 법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다. 하지만 바로 그들이 인류의 미래를 담보하며 상층권위를 형성한다.

문제는 무식한 식자를 포함한 오늘날의 대중이 선택된 소수를 거부하는 현상이 발생하였으며, 저자는 이것을 대중의 반역 이라 부른 것이다.

"대중은 자신의 삶을 우수한 소수로 구성된 상층권위에 맡길 필요가 있다. 우수한 자들이 없다면 인류는 본질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대중이 독자적인 행동을 시도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일이다. 진실로 반역이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거스르는 경우다." (157~158쪽)

과거와 미래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현대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한 대중은 육체적인 경험만을 통해서 배우고, 그것만을 절대적인 진리인 것처럼 믿고 말한다. 문제는 그들이 문명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문명의 진척과 연결되어 있는 역사지식 혹은 역사문화가 실종된 위기상황을 지적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우매한 대중을 질타하는 것이다.

"문명의 진보는 문명의 배후를 열심히 배우고 많은 경험을 하는 것, 즉 역사를 배우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역사지식은 새로운 상황에 처한 삶의 갈등에 적극적인 해결책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시대에 범한 순진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한다. 대중의 행동은 즉흥적일뿐 아니라, 오랜 기억도 역사의식도 없는 사람들에 의하여 좌우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125~127쪽)

인간은 과거를 배움으로써 미래를 예견하고 준비한다. 과거가 사라지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우면 필연적으로 미래는 과거에 패배한다. 과거는 망각하고 파괴하며 폐기한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극복되지 않는다. 과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를 버리지 않고 과거에 유의하면서 날카로운 역사의식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층권위를 확보한 선택적 소수, 혹은 토마스 칼라일 방식으로 말하면 '영웅'의 안내와 인도를 받고 전진하는 대중의 존재가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대중의 반역>에서 저자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은 상층권위를 수용하지 않고, 방종과 타락에 젖어 허위의식에 빠져버린 비역사적인 대중에 대한 질책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대중의 반역은 계속되고 있다. /김규종 기자 (오마이뉴스 축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