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체감지수에서 느끼는 세대차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아주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엄마, 근데요… 총으로 어떻게 라면을 끓여요?"

난 어이없는 얼굴로 "뭐? 총으로 라면을 끓여? 총으로 어떻게 라면을 끓이니?"라고 반문했고 아이는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에요. 둘리만화에서 마이콜이 그랬단 말이에요.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제 맛이라구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나는 방바닥을 치며 웃었고 연신 웃어서 나오는 눈물을 찍어내야만 했다. 생각할수록 웃음을 참기 힘들어 한참을 웃고 난 후, 난 아이를 붙들고 "구공탄은 총이 아니라, 연탄이라는 거야"라며 연탄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아! 그런거구나. 난 구공탄은 총알이 아홉 개 들어가는 총인 줄 알았어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나름대로는 구공탄이 총인 줄 알았으니 총으로 어떻게 라면을 끓일까 무척이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 이후 난 지금까지 심심하면 아이를 붙들고 "현아, 너 구공탄이 뭔지 알아? 총이지?"라며 놀리곤 한다. 그 때마다 아이는 "이제 확실히 알아요. 그거 연탄이잖아요. 본 적도 있어요"라며 볼멘소리를 하곤 한다.

1990년생인 아들아이는 올해 16살이다. 나는 1989년에 결혼을 해 남편 건설현장인 전라도 광주에 단칸방을 하나 얻어 20개월 정도 살았다. 연탄아궁이가 하나밖에 없는 곳에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10개월이 되던 92년, 시어머니가 혼자 사시는 상계동 무허가 판자촌으로 이사를 왔다.

사실 난 결혼 전까지 그런 달동네를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연탄보일러는 있었지만 화장실은 집 밖에 있었고 그것도 푸세식이었다. 부엌이라는 곳은 수도마저 연결이 안 됐고 배수구도 없어 설거지통을 들고 마당으로 나와 설거지를 하며 2년여를 살아야 했다.

솔직히 난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그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끔찍한 환경에서 94년 정도까지 살았다. 특히 연탄 가는 일은 나 몰라라 했기에 그것은 오로지 남편과 시어머니가 책임을 졌다.

그러다 상계동 재개발 바람을 타고 판자촌들이 철거되어 우리는 자그마한 연립으로 이사를 왔고 도시가스로 난방과 취사를 하게 되어 연탄과 영원히 이별을 했다. 놀이방도 유치원도 도시 가스나 기름보일러였을 테니 아이에게 연탄에 대한 기억이 있을 까닭이 없다.

연탄을 본 경험이 없던 탓에 구공탄이라고 하니 그저 제가 가지고 놀던 비비탄 총 같은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프랑스 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마리앙투아네트 왕비가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절규하는 민중들을 내려다보면서 "빵이 없으면 과자나 케이크를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절대 빈곤이나 배고픔, 진정한 결핍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한다.

초등학생들에게 쌀이 없어 밥을 못 먹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열에 아홉이 "그럼, 라면이나 빵을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대답을 한다고 하니 말이다.
이것이 빈곤을 몸으로 느끼는 체감지수에서 조차 엄청난 세대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증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어머니는 겨울이면 여름내 말려 두었던 누룽지를 삶아 점심으로 드시곤 했다. 한참 먹성이 좋은 나이라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누룽지를 끓여 드시며 "아, 구수하고 따뜻하다. 너도 먹을래?"하시면 교복도 안 벗은 채 한 그릇씩 먹어대고 했으니 참 철이 없었다.

엄마는 아침과 저녁에만 밥을 하고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 보내니 당신은 누룽지로 대충 점심을 때우셨다고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했던 시절이라 명절이면 송편이나 가래떡을 하나라도 더 먹고 자려고 졸음을 참으며 기다렸고, 과자 종합선물세트 같은 걸 받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현대 청소년들이 느끼는 결핍감은 너무나 풍요로운 가운데 느끼는 결핍이기에 상대적인 핍절감은 더 클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결핍이 먹을거리에서 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은 더 좋은 휴대폰, MP3, 최신형 컴퓨터, 명품 신발이나 가방, 용돈의 액수에서 결핍감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도 연탄을 때는 무허가 판자촌에서 산 경험이 있지만 부끄럽게도 아이는 구공탄이 뭔지도 모른다. 또 좌변기가 아닌 변기에도 적응을 못해 학교에서는 단 한번도 큰 볼 일을 보지 않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요즘 아이들에게 생존과 연관된 절대 빈곤 체감은 아이들 몫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아마 부모들이 '내 아이에게만은 내가 어린시절 느꼈던 빈곤함을 경험하게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이명옥 (오마이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