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걱정을 하는 노숙자들의 삶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어서 금수강산이 더욱 아름다운 우리나라.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계절의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변화에 적응하며 준비하고 감사하는 마음까지 갖는다.

그러나 그 계절의 변화가 두려운 사람들이 있다. 특히 겨울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다. 월동준비가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도 두렵기야 하겠지만 노숙자들만큼이야 하겠는가. 지난 11월 24일 밤 초겨울 바람이 싸늘한 서울역 지하도를 찾아보았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지하도로 나섰으나 웬일인지 노숙자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서너 명씩 몇 군데에 노숙자들이 보인다. 대우빌딩으로 나가는 지하도 입구에서는 술에 취한 노숙자 한 명이 누구에겐지 모를 상대를 향하여 욕설을 하며 콘크리트 벽을 발로 차고 있을 뿐이었다.

올해는 노숙자가 좀 줄어들었는가 싶어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남대문 쪽으로 향하는 지하도에 노숙자들이 가득하였다. 그것도 질서정연하게 줄을 지어 나란히 앉아 있는 것 아닌가. 2백여 명쯤은 될 것 같았다.

앞 쪽으로 나가 보았다. 한 기독교 교회에서 나온 목사가 노숙자들을 향하여 설교를 하고 있었다. 설교하는 목사 뒤쪽으로는 음식 나눌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조용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 냄새보다 지독한 노숙자들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지하도를 가득 메우고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코를 감싸 쥐고 걷는다.

그래도 음식을 담은 통 앞에 서서 배식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측은한 눈길로 노숙자들을 바라보고 서 있다. 한 젊은 봉사자에게 어느 교회에서 나왔느냐고 물으니 자신들은 모 기업에서 배식을 돕기 위하여 나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목사 뒤쪽에 서 있는 다른 두 명의 여성에게 물으니 자신들은 아현동의 작은 개척교회 신자들인데 이 곳 음식 나눔 봉사를 돕기 위하여 나왔을 뿐 음식을 제공하는 교회 이름은 모른다고 한다.

그 사이 짧은 설교가 끝나가고 있었다. "여러분 내가 하는 말을 따라서 해보세요." 노숙자들은 목사의 말을 잘 따랐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정성이 담긴 한 끼의 밥은 그만큼 절실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곧 배식이 시작되었다. 역시 안내하는 사람의 말을 잘 따른다. 몇 명씩 차례차례 식판을 들고 나가 반찬과 밥을 받고난 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측은하다.

다시 뒤쪽으로 돌아 나오다가 보니 한 사람이 의자와 탁자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서는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니 노숙자들이 식사 끝난 후에 감기약 같은 간단한 상비약을 나누어 줄 예정이라고 한다.

식사를 제공하고 약을 나누어주는 교회는 경기도 양주에 있는 교회라고 하였다. 한 달에 서너 번씩 이렇게 초저녁에 나와 노숙자들에게 식사와 약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그와 얘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아현동의 작은 개척교회에서 왔다는 여성 두 명이 왔다. 식사 배식하는 곳은 봉사자가 많아서 약을 나누어주는 일을 돕기 위하여 왔다는 것이다.

자기네 교회는 작은 개척교회여서 이렇게 많은 음식을 제공할 능력이 없어서 전도사와 함께 도우미 봉사를 나왔다는 것이다. 이제 2개월째라고 한다. 노숙자들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그냥 불쌍하지요. 나름대로 사연이야 있겠지만 그 사연은 알 수 없고. 추운 날씨에 춥고 배고프고 얼마나 힘들겠어요?"

4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이 여성은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체험을 해보게 하려고 나올 때마다 젊은 사람 한 명씩을 꼭 데리고 나온다고 한다. 같이 나온 젊은 여성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여 보았다.

"솔직히 좀 그래요. 아직 일할 만한 나이의 사람들도 많던데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아야지 저 꼴이 뭐예요?"

그런데 이렇게 도우려고 나온 것은 또 무슨 마음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래도 암튼 가엾잖아요. 똑같은 사람들인데."

꼭 마음에 들어야 돕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통로 벽 쪽 신문 가판대 위에 걸터앉아 있는 작고 파리한 얼굴의 노인 한 사람이 오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왜 식사하러 안 가시고 여기 서 계세요? 벌써 저녁 드셨나요?"
"저 사람들 먼저 먹고 난 다음 천천히 먹지요."

이 노인은 올해 73세라고 하였다. 말씨를 들으니 영남쪽 말씨다. 언제부터 노숙을 하였느냐고 물으니 벌써 몇 년 되었다고 한다.

"아들 딸은 몇이나 두셨는데요?"

아들만 셋이라고 하였다. 할머니도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아들집에서 함께 살고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왜 혼자만 이렇게 노숙을 하느냐고 물었다.

"자식들도 다 살기 어려워서. 이렇게 나와 사는 것이 더 편하니까."

혹시 젊었을 때 자식들을 돌보지 않아서 그러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정말 그렇다는 것이다. 방탕하거나 딴 짓을 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몸이 쇠약해서 자식들을 돌 볼 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식들은 할머니가 돌봤다는 것이다.

노인은 지금도 작고 하얀 얼굴이 파리한 모습이어서 상당히 쇠약해 보인다. 그러나 어디 아픈 곳은 없다고 한다. 자식들 셋이 모두 서울에 살고 있고 아버지가 어디선가 노숙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제 겨울인데 아들 집에 연락해서 들어가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한숨을 푹 내 쉰다.

"아들 집에는 들어갈 수 없고. 걱정입니다. 올 겨울은 또 어떻게 견딜지."

아들들이 가난하다고 하여도 노인 한 분 더 모시는 것이 마음이 문제지 큰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성격도 맞지 않고,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거지요, 뭐."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같이 사는 동안 다툼이 많았다는 말일 것이다. 어느 교회에서 제공한 저녁식사를 하는 노숙자들 중에는 노인들도 상당히 많아 보였다.

날씨가 추워져가는 서울역 지하도에는 춥고 배고픈 노숙자들의 서글픈 삶과 겨울을 걱정하는 노인 노숙자의 딱한 모습이 있었다. 그래도 그들을 돕는 작지만 따뜻한 손길들이 있어 조금은 포근하다. 덕분에 이번 겨울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해보았다. 이승철 / 시인-오마이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