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6자회담 재뿌리기?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다시 '폭군'으로 불렀다고 7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오는 9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5차 6자 회담을 목전에 두고 나왔다. 원래 10월로 예상됐던 미 6자회담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방북이 미 네오콘을 중심으로 한 보수파들의 반발로 무산되는 등 최근 미국의 분위기가 강경해지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브라질을 방문중인 부시 대통령은 6일(현지 시각)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젊은 기업가들을 만나면서 "일본은 북한의 폭군에 대처하는 데 있어 동맹국이다"라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직접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폭군은 김 위원장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부시 대통령의 '폭군' 발언은 그의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과 싸웠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현재 "친구의 한 명으로 이는 일본이 '일본식 민주주의'를 확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부시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소수파도 의견을 밝힐 수 있으나 압정을 펼치는 국가에서는 폭군과 관계가 없는 한 소수파에게 권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는 북한의 상황을 비판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5차 6자 회담 이틀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 주목

이 같은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오는 9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5차 6자 회담을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9월 4차 6자 회담이 타결된 이후 10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이 예상됐다. 본인도 외신들의 이 같은 보도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거의 기정사실화됐다.

힐 차관보가 방북하면 6자 회담 공동선언문에서 애매모호하게 처리됐던 문제 가운데 상당부분이 북·미 담판으로 해결되고 5차 6자 회담은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마련하는 장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힐 차관보의 방북은 무산됐다.

"힐이 방북해봐야 북으로부터 받아올 선물이 없다"는 것이 미측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6자 회담 공동 선언문에 대해 미 행정부안의 네오콘들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되면서 힐 차관보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는 관측도 있다. 이 때문에 결국 힐 차관보의 방북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 장관이 올 1월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부르고 부시 대통령은 지난 4월 김 위원장을 '폭군', '위험한 사람' 등으로 비난했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전망대로 진행되나?

이에 대해 북한 외무성은 부시 대통령을 '불망나니'로 맞받아쳤고 여기에 미 언론들이 '북한 핵실험 임박설' 등을 집중 보도하면서 북핵 위기는 최고조로 치달았었다. 미국은 지난 7월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한 뒤로는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해왔다.

지난 9월 6자 회담이 타결된 이후 한국과 미국의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도 최종적으로 미국이 북한과 타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을 내놨다.

지난달 31일 방한한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강연에서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으로 국내 정치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였기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이루겠다는 뜻을 내비칠 수는 있지만, 그것의 진정성을 믿기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북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5차 6자 회담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지난 10월 7일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도 강연에서 "4차 6자회담 합의문은 종이조각 몇마디에 불과하다"며 "미국은 국제적 조약을 지킨 적이 없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지고 앞으로 사태를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입장은 아직 느긋하다.

미 행정부 일각에서 6자 회담 공동선언문에 개의치않고 계속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입장을 갖고있음이 외신들을 통해 계속 보도되자 지난달 31일 우리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6자 회담 본 회의장에서 한 말이 아닌 외곽에서 한 말은 중요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 김태경 기자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