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피해 허위보고 비일비재...27% 엉뚱한 곳에 지출

지난달 말 뉴올리언스와 미시시피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그동안 미국 사회안에 숨겨져 왔던 지역간 또는 인종간 부의 불균형 문제를 수면위로 떠오르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연방정부의 늑장대응과 허술한 재난대응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최근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집행하는 재난 복구지원금의 처리과정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집중화살을 맞고 있다. 일부 피해지역에서는 연방재난관리청 지원금이 눈먼 돈으로 치부돼 엉뚱하게 허비되어 온 반면, 이번과 같은 위기 시에는 자금부족으로 허둥댔다는 것.

마이애미 <선센티널>이 지난 19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지난 5년간 3억3천만달러의 돈을 지출했다. 이 돈의 혜택자들은 대부분 화재, 토네이도, 허리케인 등의 피해를 입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돈이 피해를 거의 입지 않거나 아주 적은 피해를 입은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까지 주어졌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령 2003년 반경 25마일을 불태웠던 로스앤젤레스 산불 화재 당시 비교적 소규모의 직접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지역 거주민들에게 520만 달러가 지급되었다. 또한 미시간의 디트로이트에서는 지역 시장이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의 소규모 폭우에 대한 복구보조로 거주자에게 1억6,850만 달러가 지급되었다.

오하이오 클리브랜드에서는 1인치 미만의 폭우로 인한 의류 손실 피해금으로 2,160만달러의 돈이 지급이 되었으며, 작년 허리케인 프렌시스 때는 별로 피해를 입지 않은 플로리다 마이애미 지역 주민들에게 3,100만 달러가 지급됐다.

마이애미 <선센티널>은 연방재해관리청의 재난 보조금 지급의 구조적 허점에 착안하여 1999년에서 2004년 사이 313개의 재해 중 20개에 대해 조사했다. 특히 신문은 감사들이 재해관리청을 상대로 한 대규모의 사기가 있었다고 말한 지역에 주의를 기울였다.

전체 재해복구 보조금중 27% 엉뚱한 곳에 '허비'

조사 결과 연방재해관리청에서 지급한 전체 재해 보조금 가운데 27%에 해당하는 금액인 약 12억달러가 미미한 피해를 입었거나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수잔 콜린스 공화당 상원의원(메인)은 “연방재난관리청을 상대로 한 이런 사기행각에 때문에 재난 복구에 많은 차질이 초래되고 있다"면서 "실제 피해자들에게 빠르게 복구보조를 해주어야 하는데 이런 사기행각으로 많은 돈이 허비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재난관리청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콜린스 의원은 마이애미 주민들에게 지급된 연방재해관리청의 복구보조금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은 복구보조금의 허비가 최근 뉴올리언스 지역을 휩쓴 카트리나 재해 대응에 차질을 빚게 한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이를 의회에서 문제 삼을 작정이다.

하지만 정작 연방재해관리청은 이런 지적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연방재해관리청 니콜 엔드류스 대변인은 e메일에서 “재해보조는 주지사의 요청에 따라 지급되며 현재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검사보완 중이다"면서 "연방재해관리청의 최고의 목표는 재해피해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있다”고 교과서적인 답변만을 내놓았을 따름이다.

재해가 많은 캘리포니아, 케롤라이나, 플로리다, 미시간 등의 빈민층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연방 재해 보조금은 소위 ‘공돈’으로 불렸고, 이들 사이에 돈을 타내는 방법이 공공연한 토론거리가 되기도 했다.

연방재해관리청은 무보험의 손실만 다루기 때문에, 보조금은 대부분 보험이 없는 가난한 지역의 사람들에게 지급된다. 이 보조금은 어떤 이들에게는 '횡재'로 여겨진다. 정부가 빈민층을 구제하기 위해 지급하는 푸드스탬프(Food Stamp)가 식품이나 지정된 물품 구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연방재해보조금은 아무런 제한이 없다. 연방재해보조금은 최고 2만5,600달러까지 수표로 지급된다.

연방재해관리청은 보조금 지원자에 의해 손실을 보고 받고 감사 요원을 보내 이를 점검한다. 그러나 연방재해관리청은 일단 보조금이 지급되고 나면 이 돈이 어떻게 쓰여지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확인하지 않는다.

여기서 재해 보조금이 어떻게 허비되어 왔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기로 하자.

지난 2003년 클리브랜드에 폭풍이 닥쳤다. 클리브랜드 수질관리청 탐 마살리스 부청장은 “큰 범람은 없었고 평소와 다름없는 보통 폭풍 정도였다”고 말할 정도로 그리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은 호우로 인해 물이 지하실로 흘러 보관하고 있던 가구와 옷가지 등이 훼손됐다고 연방재해관리청에 보고했다. 지역 관리는 73가구의 피해를 확인해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다. 지역정부는 28,500명의 주민에게 4,140만달러를 지급했는데, 이중 2160만달러는 옷 구매를 위해 지급된 것이었다.

이 폭풍으로 클리브랜드 남동부 지역 주민들도 복구보조금으로 660만 달러를 지급 받았다. 그 지역에 사는 줄리 코브(37세)는 <선센티널>에 ”사람들이 버스속에서 연방재해관리청에서 돈을 타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서 알게 되었다"면서 "지하실에 물이 조금 이라도 들어오면 필요없는 물건들을 지하실에 던져놓은 후 연방재해관리청 관리를 불러 피해를 보여주면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말했다.

클리브랜드 북동부의 세드릭 피날리의 한 노동자는 “모두들 수표를 받았다. 그걸로 차를 사고 TV를 사고 와인을 사고 심지어는 대마초까지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당시를 설명했다.

"연방 보조금으로 차도 사고 대마초도 샀다"

이번 카트리나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루이지애나의 배이튼루지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같은 '우려내기'가 이용되었다. 2002년 허리케인 릴리는 배이튼루지 지역을 건들지 않고 강어귀의 내륙쪽 70마일 지점의 작은 마을에 피해를 입혔다.

배이튼루지 컨벤션 센터와 방문센터의 사장 겸 경영자 폴 아리고는“나는 배이튼루지 동부에 위치한 파리쉬 지역에 사는데 전혀 피해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방재해관리청은 1540만 달러를 파리쉬 주민 13,714명에게 지급했다. 배이튼루지 주민 에리아스 차니(49세)는 올랜도 센티널에 “그때 너무 쉽게 돈을 줬다. 그 돈으로 TV도 새로 사고 소파도 새로 샀다. 복구보조금 받는데 전혀 까다롭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복구보조금을 쉽게 준다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지자 배이튼루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일부러 집을 망가뜨리고는 재해관리청 직원을 불러다가 피해를 보고하는 방법이 성행했다.

차니라는 여인은 자신의 이웃들이 망가진 텔레비전 하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재해관리청 직원에게 폭풍피해라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윌리암스라는 남성은 재해관리청으로부터 600달러를 지급 받았는데 그는 이 돈을 '공돈'이라고 불렀다. 심지어는 22세의 한 개인관리보조사는 “그냥 재해관리청에서 대충 보고하고 살 집을 얻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2003년 로스엔젤레스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주민들은 '연기 피해금'을 받아냈다. 그들은 'TV가 연기 때문에 망가졌다' '옷에 연기가 배었다' 또는 '연기 때문에 차체의 페인트가 망가졌다'며 피해를 보고하기도 했다. 로스엔젤레스 와트 지역의 임퍼리알 코트 공공주택에 살고 있는 타샤 윌리암스(26세)는 “당시 말만하면 돈이 나왔다”며 "복구보조금은 정말 '공돈'이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긴급대책본부의 전 디렉터 달라스 존스는 당시 산불로 20만불 정도의 복구 보조금이 지급될 것을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520만 달러가 복구보조금으로 지급되었다고 밝혔다.

전무 후무한 대형 속임수 몰고 온 미시간 주 폭풍

지난 2000년 9월 미시간 주에서 있었던 폭풍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형 속임수'를 야기시켰다. 당시 폭풍이 몰아쳐 디트로이트 남부 교외지역의 수 천채의 집이 침수 피해를 입었으나 디트로이트 시 당국은 이를 주요 재해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지역 수도관리청은 하수도 보완이나 하수범람에 대한 지역주민의 보고조차 받지 못했을 정도로 피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보조금 지원 요청이 밀려들어 왔는데, 연방재해관리청은 디트로이트 거주민 87,624명에게 무려 1억 6850만 달러를 지급했다. 이 액수는 미시간 주의 상황보고서에 “미국 역사상 개인 복구보조금 중 가장 큰 액수”로 기록되었다.

디트로이트 수도관리국 조지 엘랜우드 대변인은 “연방재해관리청이 지급한 복구보조금만을 놓고 볼 때 마치 엄청난 피해가 있었던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피해에 대해 기억조차 할 수 없다”고 고백했을 정도.

가장 최근인 지난해 9월 허리케인 프렌시스가 플로리다를 지나 캘리포니아 서부의 산기슭을 쳤다. 비는 최고17인치가 내렸고 집은 파괴되었고 산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피해 지역에서 200마일이나 떨어진 6개 지역의 주민들에게 전체 2100만달러의 복구보조금 중 거의 반이 지급되었다. 이 지역은 평야지대로 알려져 있어 산사태가 일어나거나 비가 17인치씩 내릴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캘리포니아 로버슨 지역의 긴급대책과 디렉터 데이비드 카터는 “복구보조금에 대한 사기가 정말 많다"면서 "95퍼센트 이상의 복구보조금은 그때 피해가 아닌 몇 해 이전의 피해에 대한 것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당시 연방재해관리청이 쓸데로 써서 버려질 정도의 폐차에 대해서도 보조금을 지급했다고 전했다.

브라든 지역 옷가게나 중고차 가게에서는 “FEMA(연방재해관리청)수표 받습니다”라는 사인을 내걸렸다고 한다. 당시 지역주민들은 재해 보조금을 받아 크리스마스 쇼핑으로 차를 사거나 유흥비로 써버렸다.

배이튼루지의 거주민 차니는 "연방재해관리청의 보조금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축복"이라며 “몇몇 사람들은 이런 기회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피해 보조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축복?

지난 4년간 연방재해관리청은 사람들이 이같은 기회를 이용한다는 사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2001년 조 알버그는 연방재해관리청 장관이 되기전 연방재해관리청이 복구보조금을 너무 많이 지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관리들에게 이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알버그의 후임으로 마이클 브라운이 재해관리청 장관이 되었고, 지난해 허리케인 프랜시스로 마이애미 주민 16명이 복구보조금 사기죄로 고발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상원과 연방 감사요원이 재해관리청에 감독 소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으나 마이클 브라운 장관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다. 지난 7월 브라운은 <시앤앤>방송에 "사기죄로 고발된 것이 그렇게도 굉장한 일인가?”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결국 그는 지난9월 12일 카트리나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여론의 비난을 받은 끝에 직위 해제되고 말았다.

지난 8월 상원은 재해관리청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건축과 성공' (Building and Success)이라는 제도의 시행을 발표했다. 이 제도는 마이애미 주민 16명의 사기사건과 같은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이에 따라 켈리포니아의 복구보조금 사용 등에 대해서도 재조사를 할 예정이다.

노스 캘리포니아의 블레든 블랭스 시장은 “단지 복구보조금을 타기 위해 허위진술을 할 정도로 복구 보조금 사기가 너무 많다"면서 "연방재해관리청이 이렇게 악용된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 김명곤-신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