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절대적권위는 옛말, 환자들 다양한 치료 선택에 갈등도

불과 한세대 전만 하더라도 미국 환자들은 담당 의사 한사람의 진단에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야만 했다. 의사가 진단한 대로 그리고 그가 내려준 처방을 '생명끈' 으로 생각하고 따랐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정보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더이상 한 의사의 진단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의학에 대한 각종 정보가 넘쳐남과 동시에 치료방법들 또한 다양해 졌기 때문이다.

14일 뉴욕 타임스는 난소암 진단을 받은 두아이 엄마를 들어 이같은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치료결정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가

최근 멕 게인스(39·여)를 진찰했던 세명의 암 전문가들은 멕이 당장 방사선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또 다른 두명의 전문가들은 암종양에 먼저 질소 화합물질을 주입해 크기를 최대한으로 줄인 다음 방사선치료에 들어가라고 멕에게 권유하고 있다.

멕의 갈등은 이제 "어떻게 암을 치료할 것인가?" 보다는 "어느의사의 충고에 따를것인가?" 에 직면하게 됐다. 의사들 또한 멕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방식에 따르라고 권하진 않았다. 대신 당신의 판단아래 결정하라는 말만 할 뿐이다. 이제 결정은 의사가 아니라 멕이 해야 한다.

이미 세차례 항암 치료로 모든 머리칼을 잃은 멕은 "나는 변호사이지 의사가 아니에요!" 라고 따져 보기도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담당 주치의에 의존하던 시대는 지나

멕 케이스와 같은 경우는 현대 환자들이 흔히 경험 할 수 있는 것으로 축복이자 동시에 갈등거리이다.

사실 한 의사에 의존했을때만 해도 환자들은 자신의 병에 대해 더 많은 정보와 선택을 원했다. 그러나 이같은 요구가 채워지자 이제 환자들은 다양한 치료방법 중 어떤 것을 택해야 할 지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일부에선 질병 치료방법이 다양해졌다는 데 내심 안심하기도 하지만, 막상 치료에 들어가야 하는 환자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멕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지니고 있을때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전립선암 환자들은 일정기간 지켜보면서 치료해 가는 수동적인 방법을 택하기도 하지만 일부환자들은 방사선 치료나 수술을 받기도 한다. 이들 치료방법은 각각 위험요소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을 동반한다.

유방암 환자들은 종양부분만 잘라내는 럼팩토미나 혹은 유방 전체를 제거해야 하는 매스텍토미 사이에서 무엇을 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또 심장병환자에 대해선 어떤 의사는 바이패스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가 하면, 또다른 의사는 동맥확장수술인 앤지오플라스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세번째 의사는 약물치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진단한다.

만약 임신이 안돼 고민하는 환자라면 수많은 옵션을 두고 고민에 빠질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들은 환자 멕 게인스는 치료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자신의 주치의에게 돌아 가지 않았다. 결국 멕 자신이 선택한 치료방법에 그녀의 생명을 건 것이다.

건강관리는 의사의 특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권리로

이처럼 담당 주치의와 환자간의 신뢰의 끈은 점차 가늘어지고 있다.

보험의 다양성은 환자들이 의사를 쉽게 바꿀 수 있도록 한 몫하고 있다. 의사들 또한 각 환자들에게 쏟는 시간을 현저히 줄이고 있다.

오래 전에는 질병을 진단하는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방법 또한 많지 않았다. 만약 환자가 암에 걸렸다면 담당 주치의가 치료방법을 쉽사리 결정했고 환자는 그 방법이 최선의 것임을 의심치 않고 따라야만 했다.

달라진 사회 분위기 또한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1960년대까지만해도 의사들은 거의가 백인 남성들이었다. 이들의 말은 절대적 권위가 있었으며 환자들은 자신의 주치의가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시대가 점차 변하면서 여성들의 위치가 변하고 인권과 소비자 권리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면서 이같은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성들도 전문적인 대화에 끼어들었으며 그동안 감히 넘보지 못했던 남성의사들의 벽을 넘게 됐다. 그리고 분만이나 자궁질환 혹은 유방질환 치료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1965년엔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등 건강관리제도가 도입됐다. 이때부터 건강관리는 의사의 특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권리로 변해갔다. 환자들은 의료분야의 소비자로써 가능한 많은 정보를 원했고 건강 관련 단체들이 생겨나 건강 정보 제공과 함께 의사에게 질문할 수 있는 환자의 권리를 일깨웠다.

이제 많은 환자들은 한 의사의 충고에만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됐다. 대신 멕 게인스처럼 다양한 선택 앞에 자신 스스로가 중대한 결단을 해야만 하는 갈등에 부딪치고 있다. / 최정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