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로 모은돈 3만불로 드라이 클리닝 인수

(지난호에서 이어짐) 극장은 언제나 마지막 상영이 끝나는 밤 12시가 지나야 작업이 시작된다. 이렇게 짜여진 스케줄에 매일같이 반복 실시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직업이 되어 버렸다.

새벽 먼동이 틀때까지 내 손에는 자루 긴 빗자루가 잡혀져 있고 아내의 손에는 물젖은 마포 자루가 쥐어져 있다. 그래도 비즈니스를 다시 해 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우리가 시간을 절약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과 같고 인생에 있어서 남보다 두배의 삶을 더 사는 것이고, 마음에 큰 보배로운 재산을 풍성하게 쌓아두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집에 돌아와 훤한 대낮에 잠을 청한다. 그러나 자동차 소음과 동내 쪼무래기들의 우당탕 날뛰는 소리에 도저히 숙면은 불가능했다.

문제는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었다. 더 큰 고통은 내가 미국 사람들의 말을 충분히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 시작 할 때는 청소만 깨끗이 잘하면 되지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싶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같은 어려움 가운데서 악몽처럼 스치고 지나간 첫 비즈니스가 문득 떠오르며 괴롭혔으나 세월이 지나니 조금씩 상처도 가라 앉게 되었다.

"말처럼 뛰고 소처럼 일했다"

그러던 1989년 4월, 우리는 드라이 클리닝 비즈니스를 해 볼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공장내 시설되어 있는 모든 기계 장비와 인벤토리를 포함한 가격이 15만달러였다. 그동안 애써 모은 것이 겨우 3만달러. 크레딧 카드 2개 1만달러를 합해도 4만달러 밖에 되지 않아 턱없이 부족한 자본이다.

나는 비즈니스를 선트러스트 뱅크에 담보물로 저당하고 11만 달러의 융자를 받기로 하고 드라이 클리너를 인수했다. 아내와 나는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이번만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남다른 비즈니스로 만들기 위해 온 가족이 일치 단합하였다.

이제부터 우리는 12만달러의 빚을 갚을때까지는 뛰어야 했다. 뛰다 쓰러지고 넘어져 진탕에 나동그라지더라도 다시 벌떡 일어나 말처럼 뛰어야 했고 소처럼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세탁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우리 한국인의 가족 구조와 기질에 아주 적합한 업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탁소내에서 종업원이 감당할 작업을 가족의 일원이 참여하여 소화해 낼 수도 있으며 전통적인 가족 구조에 의존하여 세탁소를 운영하면 그만큼 생산성에 있어서도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처음 영업을 시작한 후 얼마 동안은 잦은 사고와 실수로 손님의 옷을 바꿔주기도 하고 남의 옷을 바꿔간 손님이 다시 가지고 오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종업원은 주인이 바뀌었다고 말도 잘 안듣고 깔보았고, 툭하면 장비들이 고장이 나서 기술자를 부르면 기본이 1백달러였다.

이렇게 온가족이 1년동안 운영을 해보니 16만 달러 매상이라고 하던 수입은 겨우 12만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세탁 부분에 전혀 경험이 없었던 나로선 속았다는 생각보다는 참기 어려운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미국 시민이라고 해서 모두가 일등 국민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과 사기성 범죄는 이곳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토록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미국에 대한 선입견이 순간적으로 무너져 버렸다. 그러나 때늦은 후회를 백번 해 봐도 소용없고 그렇다고 하늘만 바라보고 두손들고 물러 설 수도 포기 할 수도 없는 입장이 되었다.

'품질 제일' 세탁소, 매년 15%~25% 매상 증가

우리는 비장한 각오를 다시하고 '절망의 늪에서 그래도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해보자, 죽지 않으면 살아남는다'는 각오로 열심히 더욱 알차게 일을 하여 매상을 올리고 가게를 살려 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새벽부터 밤 늦도록까지 가게 문을 닫고 뒤에서 이것 저것 한참 일을 하고 치우다 보면 밤 9시 10시가 보통이다.

그리고 손님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친절과 온 정성을 들였고 세탁물은 품질을 제일 위주로 우리집이 아니면 근방에서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신경을 쓰고 공을 들였다. 그러자 차츰차츰 소문과 함께 해마다 매상이 15%-25% 정도씩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15년동안 계속 성장하여 지난해는 연매상 36만 달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노력한 것에 대한 대가를 보상받는 기쁨이 컸다.

세탁소를 처음 인수받아 저지른 실수 때문에 셀수 없이 많은 돈을 변상해 주기도 했다.

한번은 단골 손님이 흰색 바탕에 목과 칼라 그리고호주머니 덮개가 밤색 가죽으로 된 고급 점퍼를 가져왔다. 레이블에 표기된 대로 드라이클린을 했는데 세탁 과정에서 벌겋게 가죽염색이 번져 흰색 점퍼가 알록달록 엉망으로 되어 버렸다. 아무리 온갖 방법으로 있는 기술을 다해 스팟팅을 해 보았으나 이미 버려진 부분은 원상 회복이 절대 불가능했다. 나는 서투른 영어지만 나름대로 또박또박 문제를 설명하고 구입한 곳에 가서 반품을 하라고 했더니 그는 나의 엉터리 영어를 알아 들었는지 이해를 해 주었다.

그 외에도 여러번 문제가 발생하여 모두 변상해 주었다. 이런 사고가 있을 때 마다 세탁소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아내는 그럴때마다 '그렇게도 모르느냐'고 따지고 들며 '이렇게 날마다 돈을 물어 주다가는 망하겠다'느니 '당신은 세탁업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느니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세월은 흐르고 흘러 1996년 큰 아이가 버클리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큰 아이가 버클리 대학 합격통지서 받고 울었다는 말에 나도 눈시울을 적시던 게 엇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라니! / 신동주 (탬파 거주 동포) -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