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니 강'을 부르며 월남에서 돌아온 형님을 그리다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입니다. 큰애가 피아노를 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노래입니다. 애잔함이 넘쳐 흐릅니다. 저는 살짝 큰애 방으로 갑니다. 피아노 치는 뒷모습을 지켜봅니다. 큰애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입니다. 저는 슬며시 악보를 훔쳐봅니다.

"머나먼 저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저는 큰애 방을 나옵니다. 거실로 갑니다. 아내가 거실에서 울긋불긋한 천으로 지갑을 만들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손가방도 만들었습니다. 아내의 바느질 솜씨가 나날이 좋아집니다. 저는 아내 옆에 다리를 틀고 앉습니다. 아내가 미소 띤 얼굴로 저를 쳐다봅니다.

"더 주무시지 그랬어요?"
"아니오. 아주 달게 잤소."
"뭐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없소. 바느질 계속 하시구려. 우리 어머니도 바느질을 참 잘하셨소. 그런데 말이오. 그날은 아니었소. 어머니께서는 손가락을 몇 번이나 찔리었소. "

아내에게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머니가 호롱불 밑에서 옷을 꿰매고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괴었습니다. 소록소록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소리에 쪽문이 덜컹거립니다.

어머니는 내내 말이 없으십니다. 바늘에 손을 여러 번 찔리십니다. 그때마다 아버지께서는 헛기침을 하십니다. 재떨이에 곰방대를 툭툭 털기도 하십니다. 어머니는 바느질을 멈추십니다. 머리에 바늘을 꽂습니다. 무릎에 괴인 제 머리를 살짝 내려놓습니다. 저는 짐짓 잠든 시늉을 합니다. 어머니가 방문을 엽니다. 찬바람이 휙 들어옵니다. 어머니가 혼잣말을 하십니다.

"오늘 눈 때문에 못 올라나?"

아버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십니다. 저는 눈을 살짝 뜹니다. 아버지가 문가로 가십니다. 어머니와 함께 밖을 내다보십니다. 눈이 펑펑 내리고 있습니다. 함박눈이었습니다. 두 분은 지금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는 그게 누구일까 생각해봅니다. 혹시 큰 형님이 아닐까. 큰 형님은 자랑스러운 월남파병용사였습니다.

아버지가 문을 닫습니다. 어머니도 다시 바느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눈을 감습니다. 그런데 쉬이 잠이 오지를 않습니다. 큰 형님 생각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군복을 입은 모습입니다. 어깨에 소총도 메었습니다. 얼굴이 검게 탔습니다. 큰 형님 모습이 뿌옇게 멀어져갑니다. 그때 무슨 소린가가 들립니다. 저는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뽀드득, 뽀드득. 그러나 꿈이 아닙니다. 분명 사람 발자국 소리입니다. 점차 발자국이 빨라집니다. 어느 순간 뜀박질로 바뀝니다. 어머니! 누가 어머니를 부릅니다.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십니다. 방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날 큰 형님이 월남에서 돌아오신 거요."

아내가 바느질을 멈춥니다. 천 조각들을 한곳에 모읍니다. 아내는 큰 형님 얘기만 나오면 마음이 아픈가 봅니다. 얼굴이 침울해집니다. 큰 형님께서 돌아가신 지가 벌써 14년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큰 형수님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십니다. 돌아보면 모두 아픈 추억들뿐입니다. 애잔하지 않은 것들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큰애의 피아노 소리에 제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고 있습니다. 저는 피아노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릅니다. 저만 부르는 게 아닙니다. 아내도, 작은애도 노래를 부릅니다.

"머나먼 저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 날 사랑하는 부모형제 이 몸을 기다려 / 이 세상에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 / 아 그리워라 스와니 강물 멀고먼 옛 고향"

오늘 저는 짙은 향수에 젖었습니다. 멀고먼 옛 고향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먼저 가신 큰 형님을 만났습니다. 큰 형님은 활짝 웃고 계셨습니다. / 박희우 (오마이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