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문제 국가'로 강등된 한국... 성명서가 부끄럽다 [print]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민주주의의 중요한 척도' 언론 환경과 세계언론자유지수


▲ 지난 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오마이뉴스) 임상훈 기자 = 민주주의는 현대의 대부분 국가가 거의 절대 수준으로 믿는 정치적 가치다. 그럼에도 그 함의와 구현 방법에 대한 해석은 체제마다 제각각이다. 다수의 민의가 체제 운용을 결정하는 방식을 민주주의라 부른다면 지구상의 대부분 국가는 이미 민주주의일 것이다.

지난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의 다섯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지난 3월 대선에서 그는 88.48% 득표라는 경이적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지구상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다수의 민의를 등에 업고 있는 셈이다.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는다고 해서 현 러시아 정부를 모범적 민주주의 체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제도적 의미의 공화제가 반드시 민주주의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과두체제나 전제주의체제가 아니라고 해서 민주주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민중이 선거라는 최고 권력을 행사함에도 러시아가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체제를 운용하는 '다수의 민의'가 극도로 제한된 정보 환경과 강요된 침묵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제도적 장치라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시민의 능동적 참여라는 소프트웨어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그때 시민은 양적 다수뿐 아니라 질적 다양이 보장돼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유로운 언론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2년이 넘는 전쟁 속에서 러시아 대부분의 민영, 독립언론은 활동이 금지 또는 정지돼 있다. 허용된 언론은 예외 없이 모두 군 당국의 검열을 받는다. 유로뉴스, BBC 등 외국 언론은 철저하게 차단됐다. 소비에트 당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러시아의 현실이다.


▲ 2024년 세계언론자유지수 ⓒ 국경없는기자회

2024년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러시아는 180개 대상국 가운데 162위를 차지해 '심각' 판정을 받았다. 상대적 순위도 낮지만 절대평가 점수도 최하위다.

러시아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인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는 러시아 내부에서 유통되는 모든 뉴스 정보를 검열한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유통이 불가능하다. 국영을 제외한 모든 언로가 검열의 대상이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가름하는 여러 척도 중 세계언론자유지수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정보 접근의 자유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로 이르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자기결정권에서 나오고 자기결정권은 자유로운 정보 접근에 대한 권리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뿐 아니라 최근 지구촌 언론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전반적 민주주의의 후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2022년 세계자유보고서'에서 최근 10여 년 동안 전 세계 민주주의는 후퇴를 거듭해 1986년 수준으로 하락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5년 만에 '문제' 국가로 강등된 한국


▲ 2014~2024 세계언론자유지수. 180개 대상국을 위에서부터 '좋음 - 양호 - 문제 - 위험 - 심각'으로 구분해 세계언론자유지수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임상훈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의 추이도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한다. 세계언론자유지수는 180개국을 대상으로 언론 자유 정도를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순위로 나타나는 상대평가뿐 아니라 다섯 등급의 절대평가도 발표하고 있다.

180개 대상국은 다섯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좋음(good) - 양호(satisfactory) - 문제(problematic) - 위험(difficult) - 심각(very serious)으로 판정된다. 특정 국가가 이듬해 같은 순위에 머물렀다 해도 절대평가의 기준에 따라 언론자유의 정도가 상향평가 될 수도 하향평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2014년 세계 언론자유지수 23위를 차지한 벨기에의 경우 절대평가에서도 최고 수준인 '좋음(Good)'을 받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올해 순위는 16위로 뛰어 올랐지만 절대평가 기준에서는 '양호(Satisfactory)'로 한 단계 떨어졌다. 전 세계 평균 언론 수준이 악화됐음을 의미한다.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4년 14위에서 올해 10위로 올라섰지만 절대평가 기준은 '좋음'에서 '양호'로 하락했다. 2014년 세계 49위로 '양호' 평가를 받았던 이탈리아는 올해 46위로 3단계 올라섰지만 절대평가에서는 '문제' 단계로 하락했다. 이처럼 전반적 지구촌 언론자유 수준은 10년 동안 점진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좋음' 평가의 국가들이 줄어든 만큼 가장 열악한 언론환경을 가진 '심각' 수준의 국가들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14년 '심각' 수준의 국가가 19개였던 반면 2024년에는 36개로 크게 늘었다. 파키스탄의 경우 10년 사이 순위는 6계단 상승했지만 '위험'에서 '심각'으로 하향 평가됐다.

대륙별로 보면 유럽의 국가들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8년째 1위를 기록 중인 노르웨이를 비롯해 올해 '좋음' 평가를 받은 8개국이 모두 유럽 국가들이다. 이들 중 포르투갈을 제외한 7개국이 북유럽에 있다. '양호' 평가의 37개국 가운데는 절반에 가까운 18개국이 유럽에 속해 있다.

가장 언론환경이 열악한 대륙은 아시아로 평가됐다. 상위 45개국(좋음+양호) 가운데 아시아 국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6.6%로 가장 낮고, 하위 36개국(심각)의 69.4%를 아시아 국가들이 차지했다.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국가는 동티모르(20위, 양호)였고 그 뒤를 타이완(27위, 양호)이 따르고 있다.

올해 한국은 62위를 기록해 2018년부터 유지해 오던 '양호' 국가에서 5년 만에 '문제' 국가로 강등됐다. 한국은 2014년 이후 2017년까지 '문제' 국가 평가를 받았지만 2018년부터 '양호' 국가로 상향된 바 있다. 북한은 2014년 이후 5차례에 걸쳐 꼴찌를 기록하다 올해 세 계단 올라 177위를 기록했다.

한국 언론이 처한 상황 돌아봐야


▲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개선문 앞에서 국경없는기자회 회원들이 중국 내 언론인 투옥을 규탄하기 위해 재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에 세워둔 차량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건배하는 사진과 함께 "119명의 언론인을 구금한 중국 정부… 방문을 환영한다"고 쓰여있다. ⓒ 연합뉴스

올해 '국경없는기자회'의 '세계언론자유지수' 발표와 관련해 일부 한국 언론인들이 내놓은 논평이 우려를 넘어 개탄스러운 수준이다.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가 내놓은 성명이 대표적이다. 공언련은 13일 성명을 통해 '국경없는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 보고서가 "설득력이 눈꼽만큼도 없는 찌라시"라고 혹평하고 있다.

맞춤법까지 여러 곳 틀릴 정도로 급하게 작성한 듯한 성명을 통해 공언련은 '국경없는기자회'가 "좌파 정부엔 우호적"이라면서 "찌라시 만들기 중단을 촉구"했다. 이어 "이따위 짓을 계속하다간 세계적 망신을 받고 간판을 내려야 할 상황에 반드시 직면할 것"이라고 맺었다. 구성원의 상당수가 언론 종사자로 보이는 이 단체의 성명은 북한을 연상할 만큼 논조가 섬뜩하다.

이들은 성명에서 자신들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경없는기자회' 설립자의 과거를 소환하고 있다. 올해 71세의 로베르 메나르가 "중학생 때 소련 트로츠키를 추종하는 혁명공산주의동맹에 가입했다"는 것이다.

유럽 문화와 현대 정치사에 문외한으로 보이는 작성자의 거친 논리 전개에 일일이 설명을 달자면 논점이 흐려질 것이다. 다만 메신저를 비판하기 앞서 메시지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라는 수사적 원칙은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경없는기자회'의 신뢰성을 논쟁거리로 삼기 전에 한국 언론이 처한 상황을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적어도 언론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의 언론 환경이 많이 낙후돼 있다는 점은, 올해 들어 상황이 더 악화됐다는 점은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언론인이라면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혹여 메시지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경없는기자회'라는 메신저를 신뢰하기 어렵다면 '프리덤 하우스'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를 참고할 수도 있다. 이 단체는 미국에 기반하고 있고, 설립자가 트로츠키와는 아주 거리가 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조카, 엘리너 루스벨트다.

2017년이 마지막 발표였는데 그 자료를 보면 한국은 199개 대상국 가운데 66위로 올해 '국경없는기자회'의 보고서와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고 다수의 남미 국가들, 동유럽 국가들, 필리핀, 몽골 등과 함께 '부분적 자유' 국가에 속해 있다.

굳이 말하자면 '국경없는기자회'나 '프리덤하우스'의 보고서에서 모두 북유럽, 서유럽 국가들이 상위에 속해 있고, 북한과 일부 중앙아시아 국가들, 에리트레아 등이 최하위 그룹의 터줏대감들이다. 공언련의 주장대로 서유럽 국가들이 좌파정부가 장악하고 있어 높은 평가를 받았을까?

마지막으로 공언련이 '국경없는기자회'의 신뢰성을 문제 삼으려다 범한 또 하나의 오류를 지적하자면, 나미비아, 가나 등은 원래 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의 정도가 높은 국가들이다. 이들이 한국보다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는 이유로 이 보고서의 신뢰성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가나의 경우 2021년까지만 해도 언론지수 세계 20위권으로 한국보다 상위에 있던 나라다. 그러다 2022년 30계단이나 하락하면서 한국보다 뒤처졌지만 올해 다시 한국보다 12계단 위로 올라섰다. 언론 환경은 정부의 역할, 자본과의 관계, 언론인의 상황 인식, 언론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척도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4년 5월 15일, 수 11:1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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