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동안 아버지와의 약속 지킨 '따뜻한 진보주의자' 임인식

(올랜도) 김명곤 기자 = 사람들은 약속을 쉽게 한다. 그리고 쉽게 약속한 만큼 쉽게 잊고 헌신짝 처럼 버리기도 한다. 친구와의 약속, 금전이 오가는 거래 약속, 정치적인 약속은 말할 것도 없고 연인끼리의 약속, 평생 해로를 다짐한 부부간의 약속도 시세와 형편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가볍게 뒤엎어 버린다.

그런데, 여기 아버지와의 '약속'을 평생 붙들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 바로 시카고 금붕어 유치원 임인식(95) 원장이다.

"이재궁궁을을(利在弓弓乙乙)이다! 네가 앞으로 붙들고 살아가야 할 좌우명이니라."

혼란스런 해방 공간에서 위협을 느껴 혹한 추위에 고향을 뒤로하고 남하를 결심한 자식을 붙들고 아버지 임지현 옹이 세째 아들 임인식에게 남긴 유훈이다.

아버지가 말한 '이재궁궁을을'은 "이로운 것, 유익한 것, 좋은 것은 약한 것에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재 利在'는 '…속에' 또는 '… 아래'라는 뜻이고, '궁궁을을弓弓乙乙'은 약할 '약弱'자를 풀어 쓴 것이다.

아버지는 이 유훈과 함께 혈기 넘치는 아들에게 "돈벌이에 열중하지 말아라! 정당에 가입하지 말아라! 관리와 벼슬을 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덧붙였다.

임 원장은 당시로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인물이다. 평양 오산중학교와 숭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청산학원 신학부와 일본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고, 여기에다 숭실학교 재학시 학생회장을 하면서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주도한 '운동권' 경력까지 있었다. '성분'으로 말하면 해방정국에서 마음먹기에 따라 출세 가도를 달릴 수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임 원장은 모든 것을 포기한채 평생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며 살았다. 최근 여러차례의 만남에서 임 원장은 아버지와의 약속이 바로 어릴 적부터 끼고 살았던 성경의 '뜻'과도 정확하게 일치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강해지고 많이 소유함으로써가 아니라, 한 없이 낮아지고 물욕을 버리는데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고백이다.

"궁궁을을의 삶, 후회 없나?" "천만에!"

기자는 삼일절을 며칠 앞두고 평생 아버지와의 약속을 금과 옥조처럼 지키며 살아온 임인식 원장을 올랜도의 한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아내 홍인숙(89)과 '개인비서'이자 '사무장'인 큰 며느리 권영자와 함께한 자리였다. 임 원장은 25세 되던 때에 방년 19세 부잣집 외동딸 홍인숙에게 프로포즈하여 결혼한 이후 평생을 함께하며 또하나의 '약속'을 지키며 살았다.

이날 인터뷰에서 기자는 그동안 시간적 여유가 없어 마음 속에만 담아 두었던 속질문들을 따스한 올랜도 오후의 2월 햇볕을 창가로 맞으며 풀어 놓았다. 여러 질문들의 대략은 다음의 세가지로 집약된다.

혹 아버지와 약속을 붙들고 살아온 데 대한 후회와 여한은 없었을까. 일제시대, 해방정국, 육이오, 이어진 남북 갈등, 군사독재시절을 통과하며 기라성 같은 민족지도자들을 만나면서 어떤 생각들을 다져 왔을까. 한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아온 원로로서 임 원장은 한국의 현대사와 현재의 사회, 세태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험난한 세월을 '낮은 포복'으로, 그러나 '불같이' 살아온 임 원장의 삶의 족적에 담긴 후일담과 아울러 번뜩이는 고언들이 두시간 가까이 펼쳐졌다.

백수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지금, 평생을 '궁궁을을'로 살아온 임 원장에게 정말 후회는 없는지를 먼저 물었다.

"후회요? 천만에! 나는 한 번도 내가 살아온 방식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살면서 후회를 해 본 적이 있을 게 아니냐"는 기자의 다그침성 질문에 임 원장은 너털 웃음을 웃으며 "아니다!"고 손사레를 쳤다.

그러나 자신은 아버님 말씀대로, 기독교인으로 성경에 나오는 대로 살았지만 자식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깊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임 원장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희망 소년원을 운영하면서 '소년원 아이들도 자식'이라며 자신의 자녀들을 그들과 동일하게 대하기 위해 힘썼는데, 그게 늘 마음에 걸린다고도 했다.

"아이들은 그 시대에 맞게 살도록 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살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애들은 애들이고 나는 나인데…"

임 원장은 슬하에 2남 1녀, 그 밑으로 8명의 손자와 2명의 손녀를 두었지만 이제껏 하나도 잃지 않고 건강하게 자란데 대해 "아버지와 장인 어른의 기도 덕분"이며 "조상님의 음덕"이라고 했다.

"남은 소원은 통일되어 고향 '삼등'에 가는 것"

이후로 임 원장과의 인터뷰는 식사를 하면서 진행됐다. 질의 응답 식으로 엮어 본다.

- 험난한 시대를 통과하면서 후회 없이 사셨다고 했지만, 그래도 남은 소원이 있을 것 같은데… 꼭 해보고 싶은게 있다면?

"통일이 되어 고향 가고 싶다. 한살 위인 황순원(소설가)이 찾아와 시심(詩心)을 달랬던 내 고향 삼등에 가고 싶다. 비오던 날 조선 36경 가운데 하나인 삼등의 앵무지에서 배를 띄워놓고 황순원이 "나는 예가 좋아, 산좋고 물좋은 예가 좋아!"라며 즉흥시를 읊어주던 장면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 조광동 기자가 쓴 평전 '긍긍을을'에 보면 아버지 얘기는 많이 나오지만, 어머니 얘기는 잘 안나오는데…

"(웃으면서) 지금 우리 며느리가 어머니를 닮았다. 우리 어머니는 새벽 네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일을 시작했고, 부엌에서 하는 얘기가 사랑으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조심했다. 자식 사랑도 각별했다. 중학교때 아버지께서 "방학때 어디 가지 말고 금강산에 가서 사서삼경 배워야 겠다. 명심보감 공부하자"고 강요한 일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 분이 나서 물에 빠져 죽으려고 물가에 섰더니 갑자기 목에서 피가 나왔다. 겁이 더락나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금덕이(어렷을 적 임인식 이름) 이제 죽게되었습니다"고 고했더니, 어머니께서70원을 주면서 "도망가라"고 말씀하셨다."

- 90 평생을 살면서 수 많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 그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우리 아버지이다. 오히려 아버님 만큼 인품과 인격을 갖추지 못하고 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다. 시간이 흐를 수록 아버님은 내가 해방정국에서, 말세와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잘 가르쳐 주셨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좀 쑥스러운 얘기지만 아버님은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다. 젊었을 때에는 오히려 그걸 깨닫지 못했다."

임인식에게 어머니는 가슴 깊게 묻어둔 화톳불 같은 존재라면, 아버지 임지현은 사상적으로 행위적으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 비쳐진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자기 부모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삶의 '첫단추'가 잘 끼워져서 인지 임인식은 청소년기부터 아버지 같은 인물들을 직 간접으로 무수히 만난다. 그들은 모두가 임인식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며, 나라 없는 시대에 '임'과 같은 존재들이다. 때로는 우연히 만나기도 했지만, 민족의식에 목말라 있던 임인식이 직접 찾아 나서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는 후일 '변절자'로 꼽힌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젊은 시절 임인식에게는 우러러볼 만한 인물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대략만 꼽아 보면, 고당 조만식, 남강 이승훈, 도산 안창호, 윤치호, 우당 이승만, 춘원 이광수, 송창근, '북간도 대통령' 정재면, 길선주, 김교신, 안서 김억, 황순원, 문익환, 마포삼열, 조지 맥퀸, 백선행, 홍사익, 조진만, 김두한, 손창환, 이범석…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썩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한탄이 새어 나오고 있는 요즘이고 보면, 난세에 기라성 같은 스승들을 두고 살아온 임인식 원장이 부러울 지경이다. 이번에는 해방 전후에 임인식 청년이 만난 몇몇 민족 지도자들에 대해 물어 보았다.

민족 지도자 고당 조만식 "고향을 묻지 맙시다"

- 고당 조만식을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

"고당 조만식은 해방 전후 국내에서 가장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다. 우리는 교회와 학교에서 늘 조만식 선생 얘기를 했다. 조만식은 "민립대학 세우겠다"는 말을 늘 했고 "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 한라산까지, 압록강, 한강, 낙동강까지 그 안에 우리에게는 무수한 동지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일제말엽으로 기억된다. 내금강에서 기독교 청년 대회를 열었는데, 경찰 입회하에 양주삼, 김활란, 윤치호, 조만식 등이 왔다. 이때 조만식이 "청년아 농촌으로 돌아가라, 서울의 큰 빌딩 안에 좋은 의자에 앉아 빙빙 돌아가며 살기를 원하느냐? 민중에게로 돌아가라"고 외치던 말이 생생하다.

집회가 끝난 후에 우리끼리 모여 "누가 가장 인상적이냐"고 질문했더니 전주 신흥학교 대표를 비롯한 모두가 "조만식 선생의 그 말씀이 뼈에 사무친다"고 말했다.

조만식의 또다른 유명한 말은 "고향을 묻지 맙시다" 였다. 조만식은 손을 펴 보이며 "우리 나라는 손 뼘과 같은데 어디에 산다 한들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외쳤다."

조만식은 당시에도 지역 감정이 있는 것을 알고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할 것을 호소한 것이다. 조만식은 이런 면에서도 선각자였다.

임 원장은 당시 대회에서 윤치호의 말도 기억난다고 했다. 윤치호는 "여러분이 여기까지 오는데 기차타고 하루만에 오지 않았느냐. 정말 놀랍게 편리하고 발달한 세상이다. 그런데, 무엇이 진정한 발달이냐. 편리해 지기는 했지만 정신적으로 타락하고 있는게 아니냐. 이건 발달한 게 아니다"고 했다.

- 전문가들 가운데는 해방후 조만식이 북에 남지 않고 남으로 내려와 정치력을 발휘했더라면 민족사에 더욱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남으로 내려 왔으면 그때 상황에서 시기하던 자들이 어떻게든 흉을 잡아서 일을 못하게 했을 것이다. 미소 공동위원회가 북에서 열렸을 당시, 미군정의 아놀드 소장이 "조만식에게 남으로 가자"고 했더니 조 선생이 "북쪽의 800만 놔두고는 못간다"고 버텼던 일이 유명한 일화가 되었을 정도로 조만식 선생은 민중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분이시다."

- '북간도 대통령'으로 명성을 떨치며 문재린 목사(문익환 목사 부친)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정재면 목사에 대한 기억은?

"정대위(전 건국대 총장)하고 나하고 이버지 고향인 원산에서 '아동 성경학교 지도자 강습'에 갔다가 밤에 애들 모아놓고 암암리에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모임을 열었다. 그런데 정대위의 아버지 정재면이 불러 "경찰이 해산시키겠다고 했다. 안되겠다, 그냥 돌아가야겠다"고 말렸다. 대위하고 내가 울면서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부른 후에 모임을 파했다. 그때는 명망있는 목사들이 대부분 독립운동에 투신해 직 간접으로 일하고 있었다. 길선주 목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포기한 이상촌… "그때는 내 가슴이 너무 뜨거워 몽땅 타 버릴 지경이었다"

- 임 원장님의 청년기 활동 가운데 가슴을 뛰게 만드는 얘기가 하나 있다. 발해 왕궁터에 '이상촌'을 건설하려 한 이야기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런 '엉뚱한' 일을 도모했나.

"일제 막바지였다. 내가 존경하던 송창근 목사 등 민족 지도자들이 세칭 '105인 사건'으로 전원 예비검속을 당하게 되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청산학원에서 많이 울었다. 우리만 편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에 돌아와 버렸다.

방황하던 어느날, 도산 안창호가 꿈꿨던 이상촌을 건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황해도 안악 친구 김군식과 이 일을 추진했다. 기차역에서 떠날 때 80명이나 되는 지인과 친구들이 배웅 나와 "정말 잘 해 보라"며 장도를 빌어 주던 일이 생생하다. 일을 추진하며 재정을 마련하다 아버지의 극구 만류로 그만 두었지만 그때는 내 가슴이 너무 뜨거워 몽땅 타버릴 지경이었다. 너무 열정적이었다."

- 일제 말엽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변절하거나 체포되는 등 지리멸렬된 상태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빨치산 독립운동가들이 잔류해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지역에서 살며 이에 대한 소식을 들은 적은 없나?

"너무 엄격하여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소식은 종종 듣고 있었다. 일제시절 가장 높은 육군 직급에 오른 조선인 홍사익 중장의 아들 홍국선이 무장 독립군들의 소식을 전하며 "함께 독립운동하러 가자"고 한 적이 있었다. 좀더 생각해 보자고 했는데, 다음날 해방되었다."

- 평전 '궁궁을을'에 김두한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나오는데, 김두한에 대한 임 원장님의 인상을 말해달라.

"희망소년원 할 때였다. 소년원의 새 보금자리로 영친왕의 8촌 이해승 후작 소유의 죽전궁을 사용하는 문제로 김두한과 시비가 붙었다. 이해승 측 대리인 격인 김두한이 비서를 세번이나 보내와 "안 오면 재미없다"는 식으로 협박해 담판을 짓기 위해 직접 김두한의 거처를 방문했다. 으시시한 처음 기분과는 달리 대화를 하면서 '역시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김좌진이 누구인가. 토지문서를 모두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인물이 아닌가. 김두한은 그냥 '깡패 두목'이 아니었다."

- '궁궁을을'에 보면 조진만 법무장관과 손창환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차관 한번 해 보라"고 권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중에 장관까지도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거절했다. 이후로 전혀 후회 안했나?

"전혀 안했다. 그때도 '벼슬을 하지 말라'는 아버지 말씀이 다시 떠 올랐다. 이후로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 아버지가 앞을 내다 본 훌륭한 분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그런 자리에 올랐다면 그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어떻게든 함께 타락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임인식 원장은 아버지의 유훈대로 평생 낮은 곳을 향하여 살았다. 억지로 그렇게 산 것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뜨겁게 살았다. 단지 약한자를 '위하여(for)' 살았다기 보다는 '약한자의(of)' 삶을 살려고 애썼다. 이런 낮은자의 삶이란 사회에서는 예기치 않게 진보주의로 분류되기 마련이다. 마치 세리, 창녀, 병자들의 자리에 내려와 산 예수가 당대의 기득권자들의 눈에는 세상을 소란케 한 '진보주의자'로 인식되었던 것 처럼.

조광동은 '궁궁을을'에서 이런 임인식을 '작은 자의 삶을 산 큰 사람'이라고 했고, 인간과 세상을 향한 끝없는 열정을 가진 '늙지 않는 진보주의자'라고 썼다.

"남북 모두 '사상'보다는 '민족'을 먼저 생각했어야"

수년간 임인식 원장을 접해 온 기자는 그를 '온정주의적 진보주의자'로 이름 붙여 보았다. 그의 '진보성'의 저변에 세상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깊게 깔려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임인식은 춘원 이광수를 단순한 잣대로 '친일파'로 모는 것에 반대하는가 하면, 김일성을 한국전쟁을 일으킨 원흉이기에 앞서 독립투사와 애국자로 지칭하기도 한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그의 세상과 인간을 향한 열정과 애정을 보도록 하자.

- 해방 후에 김구, 김규식 선생 등이 남북합작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임 원장님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었나.

"물론 김구, 김규식 선생님 입장에 동조하고 있었다. 당시 왠만한 지식인들은 이에 동조했고, 소위 애국한다는 반동분자들이 이들의 애국적 행위를 막은 것이다. 한국 역사에서 참 안타까운 일이다."

50여년 후 또다른 형태의 '남북합작' 시도가 있었다. 이번에는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김대중 선생이 김 위원장 만난다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정치적으로 값싼 감정을 가지고 비판하는데, 김 선생은 정말 깊은 뜻이 있어 간 것이다.

김일성이가 누구냐. 일제시대 생명 내던지고 무장 독립투쟁하던 사람이다. 우는 아이들도 김일성이 온다면 뚝 그쳤을 정도로 무서운 김일성이요, 애국한 사람이다. 김위원장이 바로 그 사람의 아들이다. 김대중 선생도 이걸 본거다.

민족이 전부 반동으로 갈 때에 대통령으로 그곳에 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이북에서도 놀랜 것이다. 김정일인들 마음에 뜨거움이 없겠나. 그 당시에는 안돼도 이 분위기가 점진적으로 무르 익으면 통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뭘 좀 안다 하면서 남북 화해 반대하는데… 이거 모두 반동이다."

- 해방 후 남북의 혼란한 상황을 직 간접으로 체험하면서 느낀 점은?

"남쪽은 남쪽대로 외세에 너무 의존하고 자본주의를 추구하면서 자신들의 이득만을 추구했다. 특히 부패에 깊게 물들어 있었다. 북한도 자기네 사상보다는 민족의 이익을 더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요즘 왠만한 것 아는 분들 가운데 아직도 '무조건 공산당은 죽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고, 공산주의자들은 '남쪽 자본주의 죽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남북이) 서로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조상 때 부터 내려오던 그 무엇(극단적 분파주의)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우리 민족의 비극이다."

남북 통일과 관련하여 남북의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독일의 통일을 본 받았으면 한다. 서로간에 조금씩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해야 한다."

- 남과 북에 살면서 험난한 시절을 통과하신 분으로 우리 민족이 어떤 형태의 통일 국가가 되기를 원하는가.

"우리 민족이 좀 흥분하지 말고 지적으로 좀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신체로 보면, 우리 나라는 신체의 맹장 부위에 있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모두가 노리고 있다. 이런 형편에서는 어느 한쪽에 붙어서는 늘 누군가에게 붙어서 살아가는 불안한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게 우리가 겪어온 역사다.

이제는 어느 능력있는 지도자가 나와서 민족의 장래를 위해, 우리 후손을 위해 스위스와 같은 영세 중립국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소련, 미국, 중국, 일본 어는 누구도 어떻게 하지 못하게 말이다. 미국이나 중국이 우리 민족을 생각해서 뭘 하겠나. 자기 이익으로는 뭘 못하겠는가. 옛적에 친일파, 친미파, 친로파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짓 하지 말고 정신들 바짝 차려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기독교는 타락한 것이다"

- 최근 들어 한국 기독교가 사회의 지탄 대상이 되고 있다.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아 왔고, 장로 직분자로 현재의 한국 교회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다시 격앙된 목소리로) 조용기, 곽선희, 김홍도, 김선도… 작은 교회 목사들이 그자들을 우러러 보고 부러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면 안된다. 요즘 돈 있는 목사들 무슨 일을 못하겠나. 한국 현대사에서 암적인 존재들이다. 목사에게 3억짜리 차, 호화주택, 이게 말이 되나? 일반인들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기독교가 타락한 증거로 보인다.

간디가 뭐라했나. "예수님 오면 달려가서 맨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 그러나 기독교는 싫어한다. 기독교는 희생, 십자가가 없다."고 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기독교는 타락한 것이다. 여기서 '자기'란 죽으면 썩어 없어질 것들을 말한다. 새벽기도는 그렇게들 열심히 하는데, 무얼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기독교가 개혁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을 해롭게 할 뿐이다."


* 본 기사는 지난 2003년 임인식 원장 인터뷰 기사 '약한 것에 생명이 있다' http://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326 의 후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