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군사정전위 회의록 단독입수 보도…미군 개입 정황도 드러나

1969~72년 북파공작원의 북파 과정과 규모가 자세히 기록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록이 30여년 만에 공개됐다. 경향신문은 21일 과거 남한에서 북한에 공작원을 보낸 사실은 생존자 증언 등으로 일부 알려졌으나 정전위 회의록을 통해 문서로 드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20일 경향신문이 단독 입수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록(291~330차)에 따르면 북파공작원은 69년 8월~72년 5월에만 81명이 비무장지대로 침투해 42명이 생포되고, 39명이 사살됐다고 북한측은 밝혔다.

북한측은 정전위 본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제기하며 유엔군에 항의했으나 유엔군은 내용의 신빙성이 없다며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북파공작원의 실체에 대해 공식적으로 시인도 부인도 않고 있으나, 1951년 이후 94년까지 양성된 북파 공작원이 1만3천여명이며 이 중 7,800여명이 사망 또는 행방불명된 것으로 간주해 희생자 유족에 대해 일정한 보상을 해주고 있다.

정전위 회의록에 기록된 북한측 주장에 따르면 공작원들은 ‘동북산업사’(강화도교육대), ‘대한축산협회’(광주교육대) 등으로 위장된 부대에서 수일~수개월 군사훈련을 받은 뒤 첩보수집 및 요인암살 등의 임무를 부여받고 북파됐다.

신문에 따르면 북측은 막노동과 매혈(賣血)로 연명하던 청년들이 ‘4급 공무원 대우’(324차 정전위 회의록), ‘월급 3만원’(319차), ‘대통령 직속 특수부대 배치’(323차) 등의 유혹에 빠져 강제동원됐다 고 주장했다. 이들은 임무를 완료하면 포상금 1백50만원을 받기로 돼 있었으나, ‘체포되면 자폭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북측은 밝혔다.

북한군은 특히 296차 회의에서는 강모군 등 미성년자 2명을 데리고 나와 거세게 항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신문은 북파공작원 선발에 미군이 개입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71년 7월29일 319차 정전위에서 북한은 공작원을 선발한 곳이 한·미연합첩보대(South Korea-U.S. Joint Intelligence Corps)라는 생포자 진술을 공개하며, 주한미군이 북파공작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한국외대 법학과 이장희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전협상 당사자가 미군(유엔군)이었음을 감안하면 미군의 관여없이는 이같은 침투행위가 이뤄질 수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북파공작원 유족·동지회(유족회)는 신문에 당시 생포자들 연령이 20대였으므로 이들 상당수가 아직도 북한 지역 내에 살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 밝혔다.

유엔군은 당시 북한측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내용의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거나 북측이 특수 간첩들을 남파해 온 증거를 대겠다 며 반박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군사정전위 회의록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다가 작성후 30년 의 비공개 연한이 지나면서 최근 북파공작원 유족회에서 정보공개를 청구해 빛을 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