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할 이유

최근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다는 인터넷 패러디 신문에 나오는 글 한 편을 읽고 저는 옆구리가 결릴 정도로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습니다. 조선시대 박규라는 사람이 표류하다 미국에 도착하여 미국을 복속시키고 속국으로 삼았다는 엉뚱한 내용에다 외설스러운 표현이 섞인 패러디입니다.

한시(漢詩) 형태로 문장을 엮어낸 글쓴이의 재치도 재치려니와, 그 해석 또한 포복절도하게 만들 정도로 압권이었습니다. 그 중 한 구절만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距離數吐芙 骨陰夫帥(거리수토부 골음부수)
朝溫麻煖色氣(조온마난색기)

소리 나는대로 그럴듯한 한자로 구성된 이 글의 재치있는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길 오며 수차 토하여 연꽃처럼 약하고 피골이 음하게 된 남자로구나. 아침마다 온수로 목욕시키고 삼으로 따뜻한 옷을 지어주어 얼굴색이 기운을 차리게 하라."

"미국은 한국의 속국이었다" 의 해학

너무 웃다가 눈물까지 찔끔거리게 되었는데, 엉뚱하게 가슴이 맺히고 코끝이 시큰해지고 말았습니다. 약자의 서러움을 이런 식으로 나마 해소해야 하는 우리네 처지가 한탄스러웠고, 기성세대의 바보짓에 대한 우리땅 젊은이들의 기지에 찬 뒷벽치기가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문부식과 김현장 등의 미 문화원 '앙탈' 점거가 새삼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요즈음 한국인들은 부시와 부시 행정부, 그리고 이를 전폭 지지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행태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계올림픽에서 오노라는 선수가 교활한 액션으로 우리 선수의 실격판정을 유도해 내는 장면에서 갖게 된 반감에다, 한 토크쇼 진행자의 '한국선수가 화풀이로 개를 발로차고 잡아먹을 것' 이라는 등의 망언을 지켜보며 감정이 최고조에 달한 것 같습니다. 어떤 보도는 해방이후 반미감정이 최악이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최근 부시의 행태를 보면서 한국에서 '이단' 교주로 유명한 정모씨를 떠올렸습니다. 언젠가 한국의 유명 TV 고발 프로그램에서 정씨와 그 집단이 행하던 기이한 행태가 부시와 그를 무작정 추종하는 미국인들의 행태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들어도 전혀 얼토당토 않은 정씨의 교설에 수많은 신도들이 '아멘' '할렐루야' 로 화답한다거나, 자신을 추종하다 비판하고 떠나는 신도들을 끈질기게 추적해 가혹하게 처벌하는 행위, 부와 파워에 대한 무리한 집착 등이 현 부시집단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국의 방어를 위해 무리하게 국제사회에 MD(미사일 방어체제) 지지를 요구한 점, 자국의 기업체를 살리기 위해 도쿄기후협약을 탈퇴한 일, 국제인권기구 회의에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두둔하며 퇴장한 일, 이러한 연이은 유아독존적 행태에 대한 악화된 국제사회 여론을 등에 엎고 일어난 9/11 테러사태에 뒤이은 '전쟁 게임' 등에 섬뜩할 정도의 전체주의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집단!

더더욱 사담후세인, 모부트, 마르코스, 뒤발리에, 노리에가, 최근에는 탈레반 정권 등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는 아무리 사악한 독재자도 눈감고 후원하던 미국이 어느날 자신의 국가이익에 반하고 명령에 불복종한다 해서 '악' 으로 몰아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이중성을 미국민들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모든 볼은 교주님께로!

제가 앞서 소개한 그 프로그램에서 저를 가장 기가 막히게 했던 장면은 축구경기였는데, 모든 사람이 교주 정씨에게 계속 골 찬스를 만들어 주어 30여분 경기에 정씨 혼자 무려 16골을 넣게 만드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번 동계 올림픽이 '미국이 벌인 난장' 이라는 비판이 국제사회로부터 있었던것은 바로 이 같은 '혼자만 골 넣기' 식 행태 때문이었다고 여겨집니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지구촌 건설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의 발로였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러시아의 푸틴이 비 정치분야인 스포츠 행사에 이례적으로 강한 대미 비판 발언을 한 것이나, 유럽언론의 비판 논조 등은 이런 맥락이었음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모든 볼은 교주님께로' 몰아가는 이런 세상에서 북한은 '조건없이 언제 어디서든 대화하겠다' 는 미국의 제안을 '언제 어디서든 전쟁하겠다' 는 말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너희는 애당초 나쁜 놈이다. 믿을 수 없으니 핵미사일 개발 중단해라, 남한의 협상 책임하에 있는 WMD(재래식무기)감축도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고 공언했던 터입니다. 더더욱 부시가 북한을 상대로 '무기를 감축하라. 수출을 중단하라' 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크게 무리인 것 같습니다.

미국은 99년 현재 국방예산 순위 2위부터 7위까지의 다른 국가들의 국방예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국방예산을 갖고 있고, 올해 국회에 내놓은 국방예산 증액대로 한다면 전 세계 국가들의 국방예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국방예산을 갖게 됩니다. 무기수출에 있어서는 다년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2000기가 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물간 무기를 갖고 '쳐들어오면 너죽고 나죽겠다' 고 버티고 있는 북한이 딱하기만 합니다.

북한, 나와라!

미국의 억지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빨리 대화의 테이블에 나와서 대화를 하는 흉내라도 냈으면 좋겠습니다. 배고파 우는 사자처럼 미국은 지금 전쟁의 명분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계속 대화의 테이블에 나오라고 종용했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을 살리기 위해 북한에 쌀도 듬뿍 실어 보냈다. 그런데 김정일 정권이 대화를 거부하고 '핵핵' 거린다. 그래서 우리는 탈레반 후세인 떼려잡듯 북한을 치겠다. 북한주민을 위해서..." 이것이 미국의 속셈으로 보입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분명 미국은 소수의 사상자만 남길 것이고, 남북 모두는 일순간에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미국이 국익을 위해서 남도 북도 원치 않는 전쟁을 유발해 남북이 쫄딱 망하는 전쟁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어떤이는 이를 놓고 '미국이 쳐들어 오는 전쟁' 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미국은 예상했던 대로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9/11이후 전쟁을 치르면서 군수산업이 크게 일어나고 있으며 여타 산업도 이에 힘입어 활기를 되찾고 경기회복에 가속이 붙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한반도에서 올 가을 전쟁이 일어난다면 아프간전쟁, 이라크 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국인들은 푹신한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프레첼을 즐기며 리모콘 버튼으로 풋볼 구경하다 한국전쟁 구경하다 그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층 더 좋아진 경기에 'God bless America!' 아니 'America bless God'을 외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이 어서 빨리 남북대화· 미국과의 대화 테이블에 나오기를 촉구합니다. 지금은 미국이 선악을 판단하는 세상입니다.

모든 볼은 교주님에게로! / 김명곤 (2002.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