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성서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성서의 말씀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성서 해석은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들은 주로 원어 분석에 주목한다. 무의미하지는 않다. 하지만 아무리 언어를 완전히 분석한다고 해도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 나는 언어가 근본적으로 가지는 한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완벽하게 원어를 분석한다고 해도 거기에 담겨 있는 원의,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발견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그 첫 번째는 성서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다. 성서는 연애편지와 비슷하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말씀에 담겨 있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다. 인간에게 사랑이란 버거운 정도를 넘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 사랑에 무모하게 도전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말씀에 담긴 의미를 깨닫게 해주신다. 그것을 성령의 조명이라는 말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두 번째는 원어를 분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신학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신학자들은 전문가들이다. 그런데 전문가라는 사실 자체가 말씀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짐을 의미한다. 그런데 신학자라는 인간의 정체성은 권위를 가짐으로써 필연적으로 그 겸손을 상실하게 된다. 신학자들의 앎은 지식이 되어 말씀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될 것을 명하셨다. 그러나 아무리 영성이 뛰어난 신학자라도 말씀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태도를 견지할 수 없다. 권위를 지니고, 그 권위를 내세우게 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신학자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모순과도 같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창 1:28)

나는 이 말씀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이해하는 대표적인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씀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 말씀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해처럼 가부장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막 10:42-45)

누가 높으냐를 놓고 다투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일깨워주셨다. 세상의 사고로는 다스리는 것, 세도를 부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질서이고, 제자들은 이런 세상의 사고에 따라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다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이런 세상의 사고와 전혀 다른 나라임을 말씀하심으로써 제자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신다. 하나님 나라에는 권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서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폭력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섬김은 이런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없애는 수단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이다. 섬김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는 모두가 평등한 평화의 나라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단번에 알아들었을까?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잡혀 돌아가실 때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어정쩡한 자리에 머물렀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부활을 목격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디베랴바닷가에서 만난 이후였다.

그래서 나는 요한복음 21장의 서술이 위 말씀과 더불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짧지만 그곳에는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들의 삶의 방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요 21:17c-18)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방식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통치한다는 것은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으로 알아듣는다. 하지만 이 말씀에서 보듯이 베드로는 주님의 양떼를 먹이는 사람,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로 임명을 받지만 그가 이전에 생각했듯이 세상의 통치자와 고관과 같이 자심의 마음대로 지배하고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두 팔을 벌리고 묶여서 남들이 끌고 가는대로 끌려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방식이다.

하나님 나라의 이와 같은 통치방식에 따르면 창세기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져서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지라는 것은 생명으로 넘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요 10:10b)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는 것은 땅과 모든 생물들을 섬기라는 것이다. 폭력으로 정복하고, 권력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순리에 따라 자연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라는 것이다. 땅이 원하는 대로, 모든 생물들이 원하는 대로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높으냐를 놓고 서로 다투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사고를 지닌 채 복음을 바라보면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 폭력으로 지배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정확하게 위 말씀을 그렇게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탐욕으로 망가진 지구를 만드는 일에 일조함을 넘어 주도하게 된 것이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롬 8:19-21)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는 것이 대수인 이유는 그들이 이끌리며 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땅을 섬기고, 모든 생물들을 섬김으로써 피조물들 역시 하나님 자녀가 누리게 될 영광된 자유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복음과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성서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복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