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과 갈등, 시위와 권력의 긴장 속에서 되묻는 미 합중국의 정체성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2025년 6월 중순,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는 상반된 두 장면이 일주일 간격으로 펼쳐졌다. 미국 사회의 갈등과 다양성을 상징하듯, 완전히 다른 두 행사가 같은 공간에서 진행된 것이다.

8일에는 수천 명의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이 '월드 프라이드(World Pride)' 행진에 참여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다양성과 연대를 외쳤다. 행사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정치적인 성격도 강했다. 최근 몇 달 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이 LGBTQ 커뮤니티를 향해 거침없는 공격적 발언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항의와 저항의 의미가 이 행진에 담겨 있었다.

행진에 나선 필라델피아 출신의 58세 게이 남성 데이비드 베글러는 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백악관에 보내야 할 메시지는 서로를 끌어올리자는 겁니다." 축하를 넘어, 하나의 정치적 요구이자 권리 옹호의 목소리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7일 뒤, 같은 장소인 내셔널 몰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미 육군 창설 250주년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가 그것이다. 퍼레이드를 하루 앞둔 6월 14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강경한 메시지를 던졌다.

<뉴욕 타임스> 등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그는 “시위자가 나타나면 매우 강한 무력으로 맞설 것”이라며 “이 나라를 증오하는 자들에겐 무거운 대가가 따른다”고 경고했다. 퍼레이드는 군사력, 애국주의, 질서를 강조하는 대규모 제전이었다.

이렇게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 한가운데서 단 일주일 사이에 극단적으로 다른 두 메시지가 교차했다. 하나는 포용, 다른 하나는 힘의 과시였다. 이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이 충돌하고 있는 현실이 한 장소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이런 장면은 미국 역사 속에서도 반복되어 왔다. 1960년대,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은 경찰과 군대에 맞서 싸웠다. 1970년 오하이오의 켄트 주립대에서는 주방위군이 시위 중이던 학생 4명을 사살하는 참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은 국가 권력이 시민의 자유를 얼마나 강하게 억압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로 남았다. 그 후, 지미 카터 대통령은 20만 명이 넘는 병역 기피자들을 사면했고, 결국 베트남전은 종결됐다.

2025년 6월의 풍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민자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군이 정의 앞에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외쳤다. 멕시코 국경에 인접한 텍사스에서는 그렉 애벗 주지사가 '노 킹스 데이 오브 디파이언스(No Kings Day of Defiance,권위 반발의 날)' 시위를 앞두고 주방위군 5000명을 투입했다. 이민 단속 작전을 강화하겠다는 강경 조치였다.

▲ 6월 16일 올랜도 다운타운 시청 앞에서 반 트럼프 시위대가 집회를 열고 있는 광경을 지역 NBC(Wesh2)가 방송하고 있다. ⓒ Wesh2 유튜브 화면 캡처

이처럼 미국은 지금도 ‘권력’과 ‘시민의 목소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고민 앞에 서 있다. 이상과 현실이 맞부딪히는 곳, 그 최전선이 바로 워싱턴 D.C.다.

워싱턴은 단지 정치의 중심지라는 의미를 넘는다. 이곳은 수십 년간 미국의 역사와 기억, 상징이 켜켜이 쌓여온 무대다. 1932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이 ‘보너스 아미’를 이끌고 보상금을 요구하며 행진했던 사건,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 1995년 흑인 남성들의 권리와 책임을 외친 ‘밀리언 맨 행진’, 그리고 2017년 트럼프 취임 직후 열린 여성 행진까지. 이 모든 역사적 순간들이 이 도시에서 일어났다.

워싱턴 곳곳에는 전쟁기념비, 대통령 기념관, 스미소니언 박물관 같은 상징적인 장소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프라이드와 군사 퍼레이드도, 전혀 다른 성격을 띠었지만 결국은 같은 무대에서 벌어진 하나의 미국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은 이렇게 썼다. "나는 거대하다, 나는 다중을 품는다." 이 시 구절은 미국의 다중 정체성과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문학적 표현으로, ‘다중성’에 대한 미국의 이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지금 워싱턴은 그 다중성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하는 중이다.

요즘 미국 시민들의 가족 식탁에서도 정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민 정책, LGBTQ 권리, 국제 정세까지.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시민들은 묻고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공동체인가?"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2025년 6월, 워싱턴 D.C.는 미국의 불안과 역동성을 전 세계에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프라이드와 퍼레이드가 같은 공간에서 연이어 열린 이 상징적인 장면은, 미국이 앞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 아니면 더 깊은 분열로 나아갈지를 예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터이다.

▲ 6월 16일 올랜도 다운타운 시청 앞에서 반트럼프 시위대가 집회를 하고 있는 광경을 지역 NBC(Wesh2)가 방송하고 있다. ⓒ Wesh2 유튜브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