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00만 명 이상이 찾는 집단 기억의 장소, '월 매직'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사이공 함락 50년이 지난 지금, 워싱턴 D.C.에 위치한 베트남 참전 용사 기념비는 '더 월(The Wall)'은 여전히 전쟁의 상처와 기억, 그리고 치유가 교차하는 미국의 상징적 장소로 남아 있다.

<뉴욕타임스>는 2025년 5월 26일자 기사에서, 이 기념비가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검은 화강암 기념비는 매년 5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으며, 전쟁의 상처와 치유가 교차하는 장소로 남아 있다. 1958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아우른 전쟁에서 숨진 5만8000명이 넘는 미군의 이름이 이 벽에 새겨져 있다.

<뉴욕타임스>는 “기념비 중앙의 꼭짓점에 서서 벽을 마주하면, 전사자들의 이름이 처음 전사한 병사로부터 시간 순으로 나열되어 있으며, 동쪽 벽 끝에서 서쪽 벽으로 이어져 다시 중앙으로 돌아오게 설계돼 있다”러고 설명했다.

기념비에 새겨진 이름 옆에는 작은 다이아몬드 또는 십자가가 표시되어 있다. 시신이 수습된 이들에게는 다이아몬드, 아직 찾지 못한 이들에게는 십자가가 새겨지며, 유해가 발견되면 십자가는 다이아몬드로 바뀐다.

"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어요"

해병대 장교 출신 작가 칼 말란테스(Karl Marlantes)는 1990년대 초 어느 겨울 아침, 전쟁 중 사망한 부대원 93명의 이름을 보기 위해 기념비를 찾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레이 델가도(Ray Delgado)라는 병사의 이름을 만지고 있었는데, 뒤에서 한 여성이 ‘레이 델가도를 아세요? 제 삼촌이에요’라고 말하더군요. 5만9000명 가운데 같은 시간에 그 조카가 나타난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에요. 뭔가 에너지가 있거나, 어쩌면 그게 레이였을지도 모르죠”

기념비를 찾는 이들은 이름을 어루만질 뿐 아니라, 다양한 물건을 두고 간다. 하루가 끝나면 자원봉사자들이 유품을 인근 방문자 센터로 옮기며, 일부는 창고에 분류해 보관된다.

기념비 건립을 위해 모금 활동을 벌였던 참전 용사 얀 스크러그스(Jan Scruggs)는 이곳을 1982년 개장 이후 약 1000번 이상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어린이들이 남긴 손편지와 그림에 감동한다고 말했다.

“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 영혼을 담아 쓴 손글씨가 진짜 이야기처럼 다가와요. 읽을 가치가 있고, 남길 가치가 있어요.”

이름을 남기고, 기억을 가져가다

일부 방문객은 기념품을 남기지만, 다른 이들은 추억을 가져가기도 한다. 노란 모자와 셔츠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이름이 새겨진 곳의 위치를 안내하고, 연필과 종이로 이름을 복사할 수 있도록 돕는다.

28세의 케이트 티알디(Kate Tealdi)는 메모리얼 데이를 앞두고 처음 기념비를 찾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절친이자 생명의 은인이었던 윌리엄 크레인(William R. Crane)의 이름을 찾기 위해 방문했다.

“아버지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리고 윌리엄이 어떻게 여러 번 생명을 구해줬는지를 이야기해주셨어요. 두 사람 중 한 명은 살아 돌아왔고, 다른 한 명은 그렇지 못했죠.”

크레인은 1969년 12월 18일, 베트남 빈롱에서 전사했으며, 아내와 어린 자녀를 남겼다. 티알디는 매체에 “이런 방식이 그들을 다시 살려낼 순 없지만,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라고 말했다.

기념비는 오늘도 수많은 이름을 새긴 채, 전쟁의 아픔과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을 조용히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