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8개 도시 순회하며 통일의 해법과 재외동포의 역할 강조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통일은 제도나 권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사단법인 평화의 김성곤 이사장(전 4선 의원)은 4월 11일부터 28일까지 LA, 샌프란시스코, 애틀랜타, 플로리다, 시카고, 뉴욕, 워싱턴 DC 등 미국 8개 지역을 돌며 '분단 80년, 한반도 평화통일과 재미동포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대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이제는 사랑과 박애의 정신을 바탕으로 통일을 준비해야 하며, 특히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들이 남북과 북미를 잇는 중요한 다리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플로리다 올랜도 제일장로교회에서 열린 4월 20일 강연에는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 박형순 회장, 박석임 이사장을 비롯한 전·현직 한인단체장과 60여 명의 지역 동포들이 참석했다. 김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역사, 외교, 종교, 통일정책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통일 담론을 풀어냈다.

"일제 36년 사망자보다 한국전 3년 사망자가 10배 더 많아"

김 이사장은 강연 서두에서 형인 로버트 김 사건을 언급하며, 재외동포로서 겪었던 혼란과 깨달음을 이야기했다. 로버트 김(김채곤)은 1990년대 중반, 미국 해군 정보국 근무 중 한국 관련 기밀을 한국군 관계자에게 전달한 혐의로 수감되었고, 이 사건은 미국 사회는 물론 한미 관계에도 충격을 줬다. 김 이사장은 "이 사건을 통해 재외동포로서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는 분단의 원인을 외세에만 돌리지 않고, 일제강점기 시기의 좌우 이념 갈등과 해방 이후 정치지도자들의 권력욕, 그리고 민중의 무지함까지 포함한 '마음의 병'으로 진단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것"이라며, 자본주의의 자유와 사회주의의 평등을 조화롭게 이해하고 통합하려는 도산 안창호의 사상에 주목했다.

또한 그는 1948년 김구 선생이 "남북 각각 정부를 수립하면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던 7거두 공동성명을 인용하며, "이미 한국전쟁을 예언한 셈이었고, 중도 세력이 사라지면서 극단의 충돌이 현실이 됐다"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으로 남북에서 사망한 160만 명은 일본에 의해 죽은 이보다 10배가 많은 숫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라고 탄식하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반성해야 할 역사"라고 했다.

'북한 붕괴론'에 날아간 교차 승인... 북핵 문제로 이어져

김 이사장은 1979년 이후 냉전의 완화와 함께 시작된 남북 화해 및 북방 외교의 흐름을 짚었다. 1989년 미소 냉전 종식 선언, 1990년 독일 통일, 그리고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한소·한중 수교 등 일련의 흐름은 한반도 평화의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남북 간 교차승인은 결국 무산됐다며, 그 실패의 원인을 보수진영의 '북한 붕괴론'에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남한이 중공과 소련과 수교했듯, 북한도 미국과 일본과 수교했어야 했다. 그러나 '북한은 곧 망할 것'이라는 오만한 인식이 이 기회를 날려버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시기를 놓친 결과가 오늘날 북핵 문제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는 "공격용이라기보다는 체제 안전을 위한 억제력 확보"라고 설명하며, 이는 결코 정당화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북핵 문제의 해법은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 북일 수교를 통한 북한의 안보 불안 해소"라며, 이는 러시아 외교 전문가들도 반복적으로 제안해온 방향이라고 소개했다.

'적대적 2국가론'을 '우호적 2국가론'으로... 새 통일 전략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북한은 남한을 더 이상 동족이나 통일의 대상이 아닌 '적대국'으로 규정했다. 북한은 통일 관련 부서를 해체하고, 교과서에서 통일 서술을 삭제하는 등 사실상 분단 고착화로 나아가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이를 우려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직접적인 남북 대화는 한동안 어렵고, 미국·중국·러시아를 통한 간접 대화가 현실적인 수단"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미 1991년 유엔 동시가입과 2000년 이후 남북 정상회담은 사실상 두 국가 체제를 인정한 셈이며, 이를 기반으로 '우호적 2국가' 모델을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이는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제안했던 국가연합안, 독일의 동방정책, 상호 주권 존중과 외교 대표부 교환 등을 바탕으로 하는 점진적 통일 전략이다. 그는 "헌법과 충돌하더라도 현실을 기반으로 출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250만 재미동포가 한반도 정세 움직일 결정적 힘"

김 이사장은 강연의 말미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외부 국가는 미국이고, 미국 내 한인 250만 명은 그 정세를 움직일 수 있는 결정적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미동포들은 남북 모두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양측과 동시에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재미동포들이 북한을 '악'으로만 보지 말고, 인간으로서 이해하려는 노력과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재미동포들이 먼저 주도하고, 민간 외교, 문화체육 교류, 경제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자"라고 제안했다.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유라시아 철도 연결 등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개성공단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남북 공존 공영의 상징"이며, 저렴한 북측 노동력과 남측 자본·기술의 조합으로 중소기업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준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글, 역사, 문화교육을 통한 차세대의 통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왜 통일이 필요한가에 대해 자녀 세대가 이해해야 한다. 통일은 곧 민족의 미래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통일을 논할 수 없다"

김성곤 이사장은 강연을 마무리하며 성경의 구절을 인용했다.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구절을 들어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서 평화와 통일은 출발한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자유'를 강조하는 우파적 관점, '평등'을 강조하는 좌파적 관점을 지양하고, 양쪽의 가치를 조화한 제3의 가치 '사랑(박애)'을 지향하자는 주장이다. 다분히 종교적이기도 한 김 이사장의 사랑 통일론은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그는 재미동포들이 미국 정부, 의회, 언론을 설득해 여론을 만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끈질기게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통일은 먼 일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