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나는 지금부터의 내 삶에 온 힘을 기울인다. 사실 가난해진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내게는 일을 할 수 있는 돈도, 돈 없이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어떠한 권위도 없다. 내게는 내 몸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나는 그래서 이전과 달리 내 삶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나는 안다.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처럼 무력해진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평화의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무엇이라도 남아있는 한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폭력으로 작동한다. 본인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그것 자체만으로도 그것은 폭력이 된다. 이것이 깨닫기 어려운 하나님 나라의 특성 가운데 하나다.

나는 오래 전 읽은 책에서 한 수녀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자신에게 남아있던 돈을 물속에 던져버렸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수녀는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일은 그렇게 그 수녀가 모든 돈을 버렸을 때 이루어졌다. 이런 일은 기적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일을 기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하나님 나라의 작동 원리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하나님 나라의 일상일 따름이다.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셨다. 많이 넣는 부자가 여럿 있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막 12: 38-40)

사람들은 이 기사를 읽으면서 많고 적음에 천착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의도로부터 멀어진다. 어떻게 은화와 불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의 동전 렙돈이 비교될 수 있는가.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억지주장을 하시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돈의 가치를 전혀 모르시는 것인가.

예수님은 지금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의 한 일에 놀라고 계시지만 그 과부가 한 일에 놀라는 이유는 그 과부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보셨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이 사실을 하나님의 '아킬레스 건'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것은 그분이 이 기사에 등장하는 과부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일하신다. 스스로 당신의 전능하심을 유보하시는 단 한 가지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 역시 분명하다. 그분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회적인 약자들이 구제의 대상이나 단순한 긍휼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동시에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강조하신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영원히 불쌍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심으로써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로서 가장 중요한 자들이 된다.

구제와 자선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수혜적 존재라는 틀 안에 가둘 뿐만 아니라 그들을 영원히 그 틀 안에 가둔다. 뿐만 아니라 구제와 자선을 행한 사람까지도 위선자로 만들거나 자신의 행위에 몰두하는 자기 의에 빠지도록 한다. 그런 곳에 모두가 평등한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과부의 이 기사는 다른 어떤 내용보다 소중하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다른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다. 이 가난한 과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는 모두가 평등한 평화의 나라인 평화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를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콜라보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무력한 사람과 하나님의 통치가 이렇게 하나님 나라에 꼭 필요한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을 나는 오늘날 그리스도교 안에서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내가 읽은 어떤 책에서도, 내가 들은 어떤 설교나 강의에서도 이 사실을 이처럼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은 없었다.

나는 이것을 내 가난을 통해 스스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며칠 전 내 연금안심통장의 기한이 다 되어 은행을 찾았다. 은행 직원은 내가 가지고 있던 카드와 같은 카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며 새롭게 체크카드를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내 지갑에 다른 체크카드가 있는 것을 보고 체크카드가 있다면 새로운 카드를 만들 필요 없이 그 체크카드를 사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던 체크카드는 딸의 이름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던 카드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신용불량자이기 때문에 딸의 명의로 된 체크카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대답을 했다. 직원은 웃으면서 새롭게 만든 체크카드를 내게 만들어주었다.

이 내용을 무엇 때문에 소개했는지 의아하신 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머뭇거리거나 숨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나는 신용불량자가 된 것이 부끄럽지 않다. 내가 가난한 것에도 위축되지 않는다. 이런 내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보시고 감동하셨다. 하나님 나라가 바로 그런 이들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바로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느끼셨던 감동을 나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돈에 경도된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상상할 수 없다. 감히 말하지만 그것은 언감생심이다.

모든 것을 서로 통용하며 제 재물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며 교회는 바로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기꺼이 가난해질 수 있는가? 가난을 기뻐할 수 있는가? 무력해지는 것을 감사할 수 있는가?

그러나 오늘날 이 사실을 알아듣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래서 힘과 영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와 결별한다.

하나님 나라는 위 기사의 가난한 과부처럼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을 기반으로 건설된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런 가난한 과부와 같은 사람을 찾으시고, 그런 사람을 찾아오신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