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력 부족과 가족 붕괴 위기, 요양 산업 덮친 '완벽한 폭풍'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미국 요양 산업이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으로 외국인 돌봄 노동자들의 체류 자격이 위협받으면서, 수많은 가정이 생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미국 요양 시스템이 뿌리째 흔들리는 모양새다.

뉴저지 웨스트오렌지에 사는 16세 소녀 조세핀 세넥은 평생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다. 희귀 유전 질환인 '8번 염색체 사염색체 모자이크증'과 자폐증, 강박장애, ADHD 등 복합적인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이런 조세핀을 2년 반 넘게 보살펴온 이는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 알라니스 오르티스다.

오르티스는 조세핀의 식사와 목욕을 돕고, 바코드 스티커를 제거하거나 문을 닫아 불안을 잠재운다. 상황이 악화하기 전에 조짐을 알아채는 직관까지 키웠다. 하지만 그의 미국 내 체류 자격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로 위태로워졌다. 4월 7일, 행정부가 일부 베네수엘라인에 대한 임시 보호 신분(TPS) 종료를 결정하면서다.

법원이 일단 효력을 중단했지만, 정부가 항소할 경우 오르티스는 추방당하거나 구금될 수 있다. 조세핀의 어머니 크리스타 세넥은 "오르티스가 떠나면 우리 가족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세핀에게 오르티스는 단순한 돌보미가 아니라 자매이자 가장 친한 친구"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요양 시스템 붕괴

미국의 요양 시스템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약 600만 명이 가정이나 그룹홈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고, 200만 명은 요양원 등에서 도움을 받는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민자 노동자들이다. 2022년 기준으로 홈헬스 에이드는 40% 이상, 개인 돌봄 노동자는 28%, 간호조무사는 21%가 외국 출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 단속을 강화하면서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쿠바·아이티·니카라과·베네수엘라 출신의 인도적 사면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이에 따라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들까지 불안에 휩싸였다.

케이티 스미스 슬로운 리딩에이지(LeadingAge) 회장은 "누구든 합법적으로 체류하더라도 이런 단속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안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불안은 요양 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라고 덧붙였다.

돌봄 노동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향후 10년간 홈헬스 및 개인 돌봄 직종의 수요는 약 2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82만 개 이상의 일자리에 해당한다. 평균 연봉이 3만4000달러에서 3만8000달러에 불과한 탓에 미국 내 인력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레슬리 프레인 SEIU 부회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은 팬데믹 이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요양 산업에 완벽한 폭풍을 몰고 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정책으로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미국 대신 환영받는 나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

위스콘신에서는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이 중단되면서 요양 시설들이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현지 시설들은 위스콘신 보건부 및 학교와 협력해 영어, 스페인어, 몽어로 요양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콩고 출신 여성을 위해 스와힐리어 교육도 준비하고 있다.

외국인 돌봄 노동자들은 환자와 가족들의 삶을 지탱하는 존재다. 조세핀은 오르티스를 통해 배고플 때나 도움이 필요할 때 의사를 표현하고, 옷을 고르거나 스스로 머리를 손질하는 법까지 배우고 있다. 오르티스는 "조세핀의 세계에서 살아가며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찾도록 돕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TPS 종료 통보 이후 오르티스는 매일 체포될까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그는 "나는 추방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존재일지 몰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세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라고 밝혔다.

넬리 프리에토는 워싱턴주 야키마 카운티에서 알츠하이머 환자와 다운증후군 환자를 돌보며 일한다. 그는 "우리처럼 시민권이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지만, H-2B 비자로 일하는 동료들은 매일 두려움 속에 산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그들의 부모, 조부모, 자녀를 돌보며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라며 "우리 일을 알아주지 못하고, 우리가 필요하지 않다면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느냐"라고 강조했다.

조세핀의 부모는 의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사력을 다하고 있다. 트럼프를 지지한 친척조차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연방법원은 보호 종료가 수십만 명의 삶과 생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것"이라고 판시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